주지훈/궁

궁 16부-그들의 독선

모놀로그 2011. 2. 16. 11:12

 

효린은 그나마 율에 비하면 그래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로 율군을 꼽는다.

하지만 난 율군의 불가사의함의 본질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거기에 대해선 나중에 율이란 인물에 대해서 따로 쓸 때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효린의 자살 시도를 지켜본 율의 언행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효린의 자살 시도 이후,

 

채경은 심란하다.

원래 채경같은 타입들이 그렇다.

그녀들은 오지라퍼이기에

누군가 자기로 인해 상처받는 꼴은 절대 못본다.

 

(적어도 이때의 채경은 그랬다. 아직은 캐릭터가 온전하게 유지될 때이니)

 

채경의 가치관으로 볼 때, 효린이 한 행동은 사실 납득도, 이해도,

용서도 안된다.

 

 

그런데, 마음이 뒤숭숭해서 고민하는 채경에게 언제나처럼 다가와서

율군이 하는 말들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그는 자기가 늘 돌을 던지는 신군보다 백배쯤은 독선적이다.

 

채경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혼인을 무효화한 후에

채경과 자신이 혼인하겠다는 꿈을

당사자인 채경 앞에서 태연히 늘어놓을 때도

난 놀랐지만,

 

효린의 사건 이후에

채경에게 하는 말들도 또한 그러하다.

 

그는

어찌보면 정말 전지적인 시점에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인물이다

불행히도 전부 자신의 독선에 가려져서 맞는 게 하나도 없어서

그게 문제일 뿐..

 

그는

 

신군이 언젠가는 효린에게 돌아갈 거라고

신군에게 묻지도 않고

단언하는가 하면,

 

채경에겐 효린에게 신군의 옆자리를 내어주라고 명령까지 한다.

 

또한 신군의 마음은

채경이 아니라 효린에게 있으며,

 

채경에 대한 마음보다 효린에 대한 마음이 훨씬 깊다고

못을 박는다.

 

그런데 대체 그런 독선적인 단언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걸까?

 

그는 도무지가 모든 것에 대해서,

아니

타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잠재의식까지

어찌 그리 전지적인 시점에서 모조리 간파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하나도 맞추지 못하는 서툰 점쟁이처럼 전부 들어맞지 않게 말이다.

 

그는 정말 독선적인 인물인데,

신군과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독선을 남에게 강요한다.

 

그게 어쩌면 무조건적으로 방치하는 신군보단

당하는 입장에선 좀 니은건가?

 

 

아무튼 율군은 그의 엄마인 혜정전과 참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못할 일이 없는 혜정전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황후가 피력했듯이

 

율군 또한 그러한 어머니의 성격을 고대로 물려받았다.

 

신군보다 더 막중한 책임을

효린의 자살 시도에 져야할 인물이 바로 혜정전이라는 걸

율군은 모르는가?

 

혜정전은

한 인간의 깊은 슬픔,

그것도 어린 여자애의 아픔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부추겼고,

 

그로 인해 당치도 않은 꿈을 꾸다가

좌절하고 그 결과로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한 것에 일조하였으며,

 

어른들의 욕망을 위해

젊은이의 순수한 고뇌를 자신의 집념같은 욕망과 같은 위치로

승격(?)시키고,

이제 그것으로 인한 부산물인 자살을

그저 좋은 패로 여길 뿐이다.

 

그런데 효린의 자살 시도에 아픔을 느낀다는 율군은

그런 꿈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의 엄마에겐

아무런 혐오감도 보이지 않는다.

 

난 율군에게 늘 그것이 불만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엄마가 하는 짓거리에 대해서

혐오감을 보여준다면,

 

그가 내뱉거나 행하는 모든 독선을

어린 탓이려니 하고 눈감아주겠지만,

 

그게 참 힘들다.

 

 

율군에겐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이라는 효린의 자살시도를,

그 엄마는 지금 신군에게 타격을 입힐 좋은 패 정도로 여기는데,

그는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은 채

 

이번엔 엉뚱한 제2의 독선을 보여준다.

  

율군 왈,

 

너무 늦게 만나는 바람에 모두가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 불행해진 이유는,

그가 채경을

너무 늦게 만난 게 아니라

 

자신의 엄마의 그 끝없는 욕망과 허영심이 근원이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는 그걸 알 리가 없다치고,

 

그렇다면

두번째로

 

대체 누가 그렇게 불행하다는 걸까?

 

불행한 건

단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는 율 자신과,

이룰 수 있는 꿈을 버린 효린뿐이다.

 

그에겐 자신의 엄마도 불행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황제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꿈은

그저 서글프고 안쓰럽게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까진 나무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부모나 자식은 애틋한 법이고,

그들을 심판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성적인 왕자님이라면,

 

주변 상황이나 사태 파악과

뭐가 옳고 그른지 정도는 마음 속 깊숙히에서라도 알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마주 앉아서

효린의 사건을 좋은 패라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혜정전과,

그 말을 들으며

효린이 불쌍하고 그녀가 이해간다며

모든 사람이 불행해졌다고 단어하는 그의 아들은

내겐 우스꽝스러운 판토마임을 하는 서글픈 광대처럼 보인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는 어느 순간까진 분명 분별력이 있는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아둔하기 그지없는 독선을 함부로 내두른다.

 

그는 어째서

신군을 맘대로 예단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저 자신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오만하고 냉담하고 이기적이며 싸가지 없는

신군이라는 이미지말고 그가 알고 있는 게 뭔가~!

 

그런데 그는 자기가 본 그런 이미지만으로,

전지적인 인간이라도 되기라도 한 듯이

모든 인간들의 심리를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다.

 

그것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단호한 확신을 심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율군은 정말 동키호테가 아닌가 싶다.

 

 

채경이 신군도 이젠 나를 좋아한다는 말에

신이가 너에게 마음을 열었는진 모르지만

그건 별거 아니라고 단언하고, 2년이나 사랑했던 효린에 대한

감정이 훨씬 더 그에겐 중요하다고 못을 박는 것도 화가 나는데

진심으로 그걸 믿기까지 한다.

 

난 그런 캐릭터는 듣도보도 못한 것 같다.

그는 무슨 근거로 남의 마음을 지레짐작하여 추측하는 게 아니라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까?

 

그냥 내 생각엔...이럴 것 같아..

 

가 아니라

 

이렇다!!

고 단언하지 않냔 말이다.

 

 

신군과 채경은 바보인가?

왜 그들 모자는 신군과 채경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으며,

그들만의 관계가 있다는 걸,

그들도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주지 않는가~!

 

신군은

혜정전에겐 그저

자기 아들이 황제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 정도의 의미밖에 없으며,

율군에겐 일찌감치 규정지어진 물체일뿐,

 

신군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사람은 도무지가 없다.

 

황제야 말할 것 없고,

그의 어머니에게도 신군은 황제가 되서 자신의 한을 풀어줘야할 인물이다.

 

그런데

친구들조차 그러하다.

 

효린을 문병간 그 f4의 일원..중에서 제일 내 맘에 드는 인물,

그와 효린은 대체 신군에게 뭘 원한 걸까?

 

난 왜 그들에게 신군이 비난받아야하는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

 

신군이 효린을 위해서 기꺼이 황태자 자리를 물러나

그 혼인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황태자로서 혼인을 결정해야했을 때

효린에게 청혼했고,

그녀가 거절하는 바람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혼인을 감행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후로도 그 혼인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혼인의 대상자인 채경에게 점차 마음이 끌려서?

 

혼인을 한 채로

마음 속으론 계속 효린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데 왜 신군에게

혼인을 했을망정

마음은 효린에게 있어야하고,

더 나아가 효린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그들은 요구하는걸까?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효린의 기대는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걸까?

 

 

왜 효린에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효린은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는데

 

신군은 그렇게 많은 걸 다 이행해야하고

그걸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하냔 말이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일국의 황태자가,

황실에 대한 의무가 있는데,

 

자신의 여친과 결혼하기 위해

황태자 자리를 물러나야한다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대체 뭔지

그들이 왜

무더기로 신군을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다.

 

그래서

효린과 그 친구의 그런 마인드조차 내겐 또다른 독선으로 보인다.

 

가장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신군보다

그들이 훨씬 더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그들은

왜 신군도 살아 있는 인간이며,

아플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는 19세의 청소년이며,

그럼에도 황태자이며,

그래서

누구보다 더 힘들 수 있는

인격체라는 걸 인정해주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서

독선적이라고 일찌감치 규정지어진 신군에게 주어진

부당한 판결을 내린

 

또다른 무수한 독선들이 난무하는

16부의 인간들이 날 화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