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떠난 녀석은, 꼬리가 무척 아름다왔다.
하얀 분수처럼 위로 솟구쳐 사방으로 활짝 펼쳐져서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편 것처럼..
나이 들어선 털에서 윤기가 사라져서 한창 때만 못했지만
어릴 땐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독특한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대개가 꼬리로 공포를 표현한다.
전에 아는 성당 언니가 기르던 치와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땐 내가 강아지에겐 전혀 관심이 없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 늙은 치와와는
언니만 보면
갑자기 위로 삐죽 올라선 귀가 납작해지고,
역시 반짝 위로 치켜올라간 뾰족한 꼬리가
그야말로 절묘하게 엉덩이에 달라붙어선
거의 배근처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난 그게 웬지 몹시 거슬려서
이유를 물어보니
그 치와와는 언니를 무지하게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이후로
시간이 흘러
우리도 시츄를 기르게 되었고,
녀석과 10년 가까이 살았지만,
난 한번도 녀석의 귀나 꼬리에서
공포의 낌새를 본 적이 없다.
우선
녀석의 귀는
시츄의 어떤 종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지라
애초에 귀로 공포를 표현할 수도 없었겠지만,
그 꼬리도
적어도 다른 강아지들처럼
밑으로 말려내려간 적이 없다.
다시 말해서
녀석에겐 공포심이란 것이 없었다.
주인이 화를 내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면
대개의 강아지들은
누가 들으면 몽둥이로 때리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만큼
괴성을 지른다.
혹은
그 치와와처럼
하다못해
꼬리라도 내린다.
그러나
떠난 녀석은
우리가 야단치거나 때리는 시늉을 해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고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문지로 때려줄라치면
그 신문지를
아예 아작을 내버릴 정도로
대단한 성깔이었다.
평소엔 무뚝뚝하고 무심하며
대체로 조용한 성격이지만
성질이 나면
그 누구에게도 지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내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 녀석이 항복할 때까지
신문지로 두들겨팬적이 있다.
그 녀석은 끝내 대들다가
결국엔 항복했는데
그때도 꼬리는 내리지 않았다
그냥 나를 피해서 퇴각했을 뿐이다.
가끔은 그렇게
강아지와도 기싸움을 펼쳐야한다.
왜냐면
강아지들은
아주 교활해서
조금이라도 상대가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기어오르고,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테리는,
처음 왔을 땐
그 치와와처럼
털이 전혀 없는 꼬챙이같은 꼬리를 달고 있었다.
그 꼬리가
툭하면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이었다.
녀석은 심약하고 겁도 많았다.
무지하게 예민하고 감성적이다.
난 우리 강아지에게서도 드디어
말려들어간 꼬리를 보는구나
이상한 일로 감격을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요즘들어선
슬슬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전엔
신문지로
바닥을 내리치기만 해도
잽싸게 꼬리를 말고
달아나더니
요즘엔
달아나는 시늉만 하곤
눈치를 본다.
어차피 금새 다시 돌아올 텐데
굳이 숨는 게 귀찮아진 것이다.
ㅋㅋ
어이가 없다.
개쉐이까지 저렇게 잔머리를 굴리는 세상이라니..
하튼,
이제
털이 자리잡기 시작해서
요크셔테리어 특유의
환상적인 웨이브가 테리의 몸을 덮기 시작하고,
꼬챙이 꼬리에도
근사한 웨이브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떠난 녀석의 분수 꼬리에 대해서
찬탄을 금치 못했던 우리는
테리가 꼬챙이 꼬리를 하고 있는 게
영 마땅치 않았던지라
웨이브가 너무나 반가운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마..
계속 꼬챙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던 차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가끔은
저 혼자
이유도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꼬리를 내려말고는
온 집안을 마구 내달리는데
시속 400킬로쯤 되는 속력으로
한번 집안을 뺑뺑 돌기 시작하면
우린 저러다
어딘가 부딛혀서
그대로 뻗어버리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면서도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
녀석의 공포의 근원을 알 수 도 없고
막을 도리도 없어서
그냥 아연하게 지켜본다.
난
그때마다
도대체
테리가 느끼는 공포의 실체는 뭘까
궁금해진다.
적어도
그 이유는 우리가 제공한 건 아니니까.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그런 증세를 보이니
겁이 나는 것이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자기만 알아듣는 어떤 소리를 감지한다나 뭐라나..
글쎼..
물론
강아지들의 청력은 사람의 수백배쯤 될 것이다.
가끔은 불쌍할 지경이다.
도무지가
온갖 소음 속에서 살고 있을
그 넘들이 딱한 것이다.
우리 귀엔 들리지도 않을
어떤 소리들이
모조리 들린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이젠
꼬리가 내려말리면
웃기기보단
겁부터난다.
또 저 녀석이
빛의 속도로 온집안을 미친 듯 질주하는 건 아닐까..
인간이 공포를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꼬리를 내려말수도,
귀가 납작해지지도 않는다.
안색이 편치 않을 순 있겠지만
적어도
인간은 외관상으론
공포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역시 인간은 그런 점에서
무서운 존재이다.
지금 내게
꼬리와 귀가 있다면
아마도
둘 다 납작해져서
말려 들어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