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
내가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갖게된
가장 큰 공헌을 하게 된 작품이 있다면
그 첫걸음이 아마도
'미술관 옆 동물원'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난 심은하를 이름만 들었지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분명 어떤 시절을 풍미한
미모와 각종 스캔들의 중심인물이었고,
많은 드라마에 출연한 걸로 안다.
유감스럽게도
난 그 중 단 하나의 작품도 보지 못했고,
그녀가 일으킨
각종 스캔들도 알지 못했다.
난 배우들의
사생활 관련한
소란엔 별 관심이 없다.
배우가 무슨 성직자도 아니고
도덕적이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유난스런 도덕에 대한 강박증,
특히나
가장 평범한 사람들조차
일상적으로 길들여져 있는
각종 도덕 불감증에,
깊숙한 유흥 문화로 인한
갖가지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현재 스코아,
왜
유독
연예인들에게
성직자에게나 요구할만한
도덕적인 정결함을 들이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특히 그것이 사생활과 관련된 것일 경우
난 하품이 나온다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지겹다.
연기 못하고 깨끗한 배우보단
매력 있고
배우로써 열심히 하면
그 외엔
관심밖이다
하지만
심은하는
배우로서나 그 외 다른 면으로나
내 관심 밖이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드디어 그녀에게 눈길을 주게 되었으니
바로
백야 3.98이라는
드라마이다
전에도 몇 번 거론한 드라마인데,
드라마 자체는
좀 잘못 만들어졌지만
한편으론
매우 아름다운 장면들과,
가슴저린 음악들이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 특이한 작품이다
매우 컬트적인가하면
한편으론 지겹고
심금을 울리는가 하면
구태의연하고
아무튼지간에
뭐라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는 묘한 작품인데,
그 작품을 그나마 살린게
바로
권택형이라는 캐릭터와
(최민수가 연기했지만 배우보단 캐릭터의 매력...)
바로
심은하라는 배우이다.
(캐릭터보단 배우의 매력...)
난 작품을 보기 위해
기다려왔고
그래서 열심히 봤고
녹화까지 했으며
당연히 수없이 봤다.
그러다보니
심은하라는 여배우를
보기 싫어도 봐야했다.
마치 이병헌을 그 작품에서 처음 봤듯이,
난 심은하도 처음 제대로 봤다.
어떤 작품이 관심 있어
배우를 보게 되고
그러다가 재발견하는 수가 있다.
반대로
배우를 보기 위해
작품을 보다가
그 배우까지 싫어지는 경우도 있다.
참 미묘복잡한 일인데
심은하는
전자의 경우이다.
최민수보단 그가 연기한 캐릭터
권택형이 심금을 울렸다면,
심은하는
그녀가 연기한 아나스타샤보단
배우의 매력이 날 사로잡았으며
이병헌은
그 두 사람의 강렬한 개성에 치어서
캐릭터며 배우가 모두
묻혀버린 케이스이다.
심은하..
난 그녀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다.
그건
용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이목구비가 이쁜 걸 말하지 않는다.
이쁘게 생긴 것과
아름다운 건
다르다.
이를테면
난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옛날 배우를 볼 때마다
참 이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비비안리는
아름답다.
그 미묘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아름다움이란,
용모의 잘생김이 아니라
느낌인 것 같다.
용모가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용모가 완벽해도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내게..
그래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우리나라 최고의 미남들이
내겐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주지훈은
내게 가장 아름다운 배우일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느낌이지만,
그 사람과 나의
소통일 수 있고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으며
따라서 주관적일 수 있다.
내가 원하고
내가 이해하고
내가 추구하는
뭔가가 상대에게 있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심은하가
백야에서 그러했다.
우선
그녀의 용모가
러시아에 어울렸다.
그 드라마가 만들어진 97년은
줄곧 나의 어린 시절을 압박하던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과 팽팽하게 양대산맥을 이루며
세계를 지배하던
또다른 강대국이었던
이른바
소련이라는 나라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국제 질서가 흐트러지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러나
무대는
아마도
처음 소련이라는 나라의 체제가 허물어지면서
제일 먼저
군의 기강이 망가지고
너도나도
무기를 팔아먹으며
어떻게든 돈이나 챙기고 보자는
국가의 체제가 갑자기 무너질 떄
나타나는 망국적인 현상이
러시아를 강타하던 무렵이다.
드라마의 큰 줄기는,
러시아의 붕괴 와중에
그들에게서 핵무기를
대량 입수하여
뭐시기라는 작전을 수행하려는
북한의 어떤 세력이
그것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앞잡이로 사육한 킬러
권택형,
그가 사랑하는.
망명한 북한의 과학자의 딸인
아나스타샤
그리고
한국에서 파견한
비밀요원 이병헌
등등이 얼키고 설킨
스케일 큰 작품이다
심은하는,
그런 배경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러시아라는 나라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러시아하면 떠오르는
그 뭔지 모를
스산하면서 고풍스럽고
어두운 듯 하면서
신선한 세계에
그녀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오밀조밀한 심은하의 개성적 미모와,
그녀의 하얀 피부는
러시아에 정말 잘 어울렸다.
그녀가 맡은 역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배우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이끌어간다.
캐릭터 자체는 좀 지겹고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백야를 좋아한만큼
난 심은하를 재발견했고,
곧이어
미술관옆 동물원이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그 이후에
청춘의 덫으로 일약
이름을 떨치더니
갑자기 은퇴해버린다.
난 청춘의 덫에서도
심은하를 무지하게 좋아한 만큼
그녀의 은퇴를 아쉬워한 사람 중 하나이다
왜 은퇴를 했는지,
그 이면에 뭐가 있는지
나완 무관하다
단지
아름답고 연기 잘하는 여배우로
잘 성장한 심은하가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나 아쉬웠을 뿐이다
하지만
배우가 더이상 연기하기 싫다면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무튼
심은하를 정말 좋아하게 된 계기는
바로
미술관옆 동물원일 것이다.
영화 자체는
자그만 소품이다.
꼭 영화로 안하고
그냥
베스트 극장으로 해도 좋은
그런 작품들이 있는데
미술관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따라서
그 영화에서도
심은하와 그녀의 캐릭터만 빼면
그다지 볼 건 없다
아기자기하고 재미도 있지만,
흔히 벌어지는
잘 모르는 남녀간의 동거와
그로 인한 티격태격,
그리고
차츰 정들어가는 과정
알고보니 사랑이었다네..
뭐 그런 과정을 충실하게 밟는다.
굳이 영화로 안찍어도 될 것 같은 소재이다.
그러나
심은하가 맡은 역보다
그 역을 연기하는
심은하가 참 매력 있다.
또한
이성재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그 영화에선
심하게
심은하에게 밀린다.
역시
상대역에 따라
이성재는 많은 영향을 받는 배우가 아닌가 싶은데,
예를 들어
김희선과 찍은
자귀모인지 뭔지하는
욕나오는 영화에선
그는 무척 돋보인다.
연기도 차분하지만
무엇보다
워낙에
조악해서
비교적 준수한 그가 돋보이는 것이다
김희선이라는 유명 미모의 여배우..
미모면 뭐하는가~!
연기가 안되면
미모는 별 도움이 안된다.
게다가 김희선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련 용모는 아니다
말하자면
그 외모에 카리스마가 없다
그래서
연기를 못하거나
시시한 작품에선
그녀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재는 어떻든 돋보였다
그러나
미술관옆에선
심은하에게 완전히 묻힌다
심은하가 눈부시게 아름답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 반대인데
그녀의 연기와 카리스마로
그쪽으론 비교적 약한 이성재는 묻히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은
심은하의 독무대이다
거기엔
안성기씨도 나오고
송선미도 나온다
말하자면
두 개의 스토리가 번갈아 펼쳐지는데
하나는
그들이 쓰는 시나리오이자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인
독특한 구조이다
다른 쪽의 주인공들인
안성기와 송선미는
실제로
현실에서
그들이 짝사랑하는 인물들이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이 투영된
환상적인 인물인데
이상하게도
별로 두드러지지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심은하가
영화를 살린다
오로지
심은하만 보인다
이렇다할 스토리도 없고
영상미도 없고
그저 그런데
오로지
심은하의 연기와
배우의 매력,
캐릭터의 힘으로
끌고 가는
묘한 영화이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가 대단한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대단해보이는 영화이다
그 영화는
심은하라는 배우를 발견하게 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내가 재미있게 본
최초의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그 맥은
공공의 적과,
달콤한 인생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