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찰미안과 신 찰미안
찰미안은
부마처형사건으로 알려진,
포청천을 우리나라에 알린 첫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개인적으롬 말하라고 하면
포청천 시리즈 중에선 제일 혐오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소재도 불쾌하지만,
배우들 덕이 크다.
우선
그 조강지처역을 한 배우,
삼격고나 추낭에서도 나오지만
우라지게 짜증나고 따분하게 생겼고
연기도 그러하다.
난 강인한 여인상을 좋아하는데,
물론
진향련도 실은 외유내강의 전형이긴 하다.
그러나
그 배우의 연기는 웬지 굉장히 짜증스럽다.
게다가 그 부마역의 배우...ㅠㅠ
난 그 사람이 정말 정말 정말 싫다.
굳이 말하라고 하면
기괴하게 생겼다.
더 심하게 말하라고 하면
재수없게 생겼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으니
다양한 성격을 연출하기 좋은 용모이다.
다시 말해서
그 얼굴은 매우 불쾌하게 생겼지만
한편으론 선과 악이 공존하는
묘한 얼굴이다.
이목구비로만 보자면
잘생겼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에 요상하게 생겨서
내 눈엔 괴물처럼 보인다.
대신에 연기하기엔 적합한 얼굴인 것이다.
그래서
구 찰미안은 배우의 역,
다시 말해서 부마역을 맡았던 그 요상하게 생긴 배우의 힘이
매우 컸다.
그 극을 이끄는 힘이
거의 그 배우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용모에서 가장 나쁜 점,
즉 비열하고 교활하며 나약한 면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그래서
처자식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부정하고
더 나아가 죽이려고 안달하면서도,
한편으론 연민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역시 자신을 위해선
역시 저버리려고 하며,
나중엔 미치도록 증오하기까지하는
부마 역을 잘 해내는 것이다.
그 배우에 대해서 좀 더 말하고 싶어서
떠든다면
그는
단순하게 잘생겼거나
단순하게 못생겼거나
단순하게 악하게 생겼거나,
혹은 그 반대라면
표현하기 힘든 역들을
잘 소화하는 편이다.
그가 출연하는 포청천 시리즈에서 맡은 역들이
대개가 그렇게 이중적이고
심리적인 나약함을 잘 드러낸다.
이를테면
원앙호접몽이 그렇고,
또
구도본이 좋은 예이다.
둘 다
복합적이고
선악이 범벅이 된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그가 연기하는 배역은
대개가
선과 악 사이.
도덕적인 가치관에 있어서
세상의 잣대와 자신의 잣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나약함으로 인해
결국은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고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원앙호접몽에선 지지리 못나빠진 역을 하는데
그것도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ㅋ
한대 때려주고 싶은 인물상이었다면
내가 인상적인 건
찰미안보단 차라리
구도본이다.
거기서도
선과 악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복잡한 인물을 연기한다.
매우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친동생도 아닌 동생을 위해서
인간성도 스스로 말살해버릴 정도로
극진하다.
아니
그가 범하는 모든 악은 바로
그 동생을 위한 것이다.
물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욕망이 이면에 있고,
그게 바로 그의 맹점이지만,
거기서도 얄밉고 재수없긴 마찬가지이지만
다르게 보면 연기력의 승리라고 하겠다.
사랑하는 여자마저
동생을 위해 죽이는
그 이상한 애정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만일 따로 사랑하는 여자가 없다면
그가 정말 사랑하는 게
바로 그 의동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곽괴와 비슷한데,
다른 것은
곽괴에게 사심이 없었다면
구도본에서의 그는 사심 그득한
그냥 그런 놈이라는 것 정도이다.
배우 얘기를 굳이 길게 하는 건
원판 포청천의 찰미안과,
신포청천의 찰미안을 비교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
원판 포청천에서의 부마는
바로 그 배우의 역이 참 크기 때문이다.
그는
그 외모가 주는
선과 악이 묘하게 범벅이 되서
극악하게 보인다기보단
비열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생긴 외모를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마음 속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이전의 가치관과,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
즉 부마라는 지위를 놓치고 싶지 않은,
아니
그보단 자신의 생존이
처자식의 그것보단 더 중요해지는
인간의 처절함이 돋보이는 연기를 하기에
적합한 외모인 반면에,
신포청천의 찰미안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이유가
바로 그 배우의 연기력,
혹은 외모에서 주는 느낌이 큰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하나 문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타당성이다.
원판 찰미안에선
그야말로 부마에게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보는 사람이
죽이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추악하고 극악하다.
따라서
포청천이 그를 어떻게든 처벌하려고 하는 이유가
타당성을 갖고
우리도 포청천의 그런 심리에
호응하게 된다.
그러나
신포청천의 부마는 어떠한가~!
그는 우선
외모부터가 매우 준수하다.
좋게 말하면 준수하지만
반면에 그만큼 개성이 없고 희미하다.
그런 외모를 배경으로
그가 범하는 죄악들도
조금은 힘이 약하다.
마치 이묘환태자와 타룡포를
뒤집어놓은 것 같다.
이묘환태자에서 실제로 중심 인물은
태후가 아니라 곽괴이듯이,
신포청천의 찰미안에서의
실제 범죄인은
부마가 아니라
내관이기 떄문이다.
그는 그저
그 내관이 시키는대로
마지못해 움직이는 꼭두가시일뿐이다.
이묘환태자의 주인공이
곽괴라면
후찰미안의 주인공도
바로 내관인 것이다.
이묘환태자에서 유태후가 상대적으로
타룡포에 비해 약했듯,
따라서 우리가 유태후에겐 그다지
반감을 가질 수 없었고,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말의 동정심까지 느끼게 되었듯이
후찰미안에서의 부마에게도
유태후에게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
약간의 동정심과 경멸 같은 것 외엔
이렇다할 증오를 느끼기가 힘든 것이다.
그는
자기 주관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처음 부마가 되는 과정부터
내관의 협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되며,
이후로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도
정작 그들을 죽이려하는 건
부마가 아니라
내관이다.
계속 그런 식이다.
그러다보니
포증이 말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인'
이라는 느낌이 없다.
그저 한심한 놈이라는 생각 정도만 든다.
또한
전조가 펄펄 뛰면서
강호식으로 해결하겠노라고 하는 것도
조금 오버스럽게 보인다.
원찰미안에서야 그렇게 나왔다면
이해했겠지만,
후찰미안에서의 부마는
그렇게까지 대단해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냥 한대 쥐어박으며
왜 그러고 사니?
라고 물어보고 싶어지는 정도의
인간일 뿐이다.
그냥 지지리 못나빠진 남자구나
이런 생각만 드는 것이다.
그래서
포증이나, 전조의 분노에
동참하기가 힘들다.
물론,
내관이 하랜다고 하는 부마가
잘한 건 아니지만,
그 자신의 의지로 한 짓은
결국 하나도 없는 셈이니
늘
협박 비슷한 것을 받고
어정쩡하게
이도저도 아니게
그러다 체념 비슷하게
허락도 동참도 아닌
무언의 동의, 내지는
포기 같은 것만 되풀이하는
못난 남자에게
그렇게 화낼 가치가 있을지..
그래서
신찰미안은
조금 맥빠진 작품이 되고 말았다.
신포청천 시리즈가 대개 그렇듯이
찰미안도
매우 길고
지루하며
주인공이 맥아리가 없고,
그래서
박진감이 부족하다.
그러나
포청천 시리즈가 단순히
권선징악이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청천의 범인들은
하나같이
참으로 비극적이다.
전에도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유를 했지만,
햄릿의 숙부나 그의 아내가 되는 왕비,
리어왕에서의 웃기지도 않는 아버지,
맥베스나 오델로까지..
그 인간군상들이
고대로 재현되는 게
바로 포청천이다.
전엔 천륜겁의 주인공을 비유했지만
자세히 보면 천륜겁만이 아닌
많은 작품에서
그러하다.
찰왕야나 뇌정노처람
자기 성찰이 매우 부족한
정신적으로도 피폐하고 성장이 덜 된
인간들,
즉 타고나길 특권층인 황족으로 자라나서
도무지가 무지하기가 그지 없는 인간들의
범죄를 제외하곤
대개가
성격적 나약함과
그 나약함으로 인해
점점 더
죄악으로 빠져드는
인간상들을 보여주는 게
포청천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건
어찌 보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포증이나, 전조, 그리고 공손책같은 인물들이
거의 완벽한 인간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죄인들은
오히려 인간적이고
그 인간적인 나약함과 자기 편의주의로 인한
엄격함의 부족이
죄악을 부르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예로는
음양판에서의 범인이나
심친기,
쌍생겁
등등을 들 수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