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스타들
내가 보는 드라마는
주로 옛날 것들이다.
이를테면
내가 즐겨보거나
감동받은 작품들은
주로
90년대 작품이 많다.
혹은
21세기 초반의 작품들이다.
그 무렵,
모두 신선했다.
이병헌은 한류스타가 아니었고,
배용준도 그저 그랬으며,
최지우는 아직 젊고 이쁜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다녔다.
송혜교는 혜성처럼 나타나서
연기는 비록 못하지만
정말 젊고 이쁘다.
심은하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배우도 있었다.
김희선도 20대 초반을 넘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었고,
이영애 역시 그러했다.
송승헌이니 소지섭이니 조인성이니
지금 폼잡고 있는 거물급들
당시엔 어리고 막 자라나는 새싹들이었다.
특히 소지섭은 남자 이영애였다.
온갖 드라마에 닥치는대로 주인공을 맡으면서도
별로 인지도가 없는
잘생겼지만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그런 탈렌트.
이승연은 내가 본
최고의 아름다운 여자 중 하나였다.
하다못해
권상우까지..
그렇다.
지금 이른바 톱스타라고 행세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
그땐 아직 젊고
그렇게까지
대단한 척할 이유가 별로 없는,
그저 그런 위치에 있었다.
그들의 그 당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난 갑자기
시간이란 것이
스타에겐 참 쥐약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지금 어느 위치에 다다라 있는가~!
대단한 위치에 올라서서
갑자기 철의 장막 속에 가려진 인물도 있고,
반대로
더이상 뻗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 앉거나
추문으로 인해
잊혀져가는 사람들도 있다.
대단하다는 인물들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기사화된다.
요즘 난 비에 대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난 비를 좋아한 적은 없다.
노래도 들어본 적 없다.
춤추는 것도 본 적 없다.
내가 비를 본 건
상두와 풀하우스
딱 두 작품이다.
풀하우스에서 엄밀하게
이영재라는 캐릭터는
사실
우스꽝스러운 인물이다.
그러나
논리 밖에서
그는 매력적이다.
비라는 인물의 매력으로
그럭저럭
말이 안되는 여러 상황을 무마한다.
그리고
그게 통한다.
그는 월드스타니 뭐니 하면서
잔뜩 거품이 낀 상태에서
거물 행세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젊고 아직은 미완의 대기였다.
송혜교는 어떤가.
당시 그녀는
정말 이쁘다.
맑고 투명한 피부에
막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화사하다.
난 송혜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풀하우스에선 정말 귀엽고 매력 있고
제법 연기도 잘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모두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 시절보다
지위는 높아지고
위치도 공고해졌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보다
퇴보를 해도 엄청나게 했다.
비는
요즘 뭔 드라마에 나오더만.
보고 깜짝 놀랐다.
저게 풀하우스에서 그래도 귀엽던 이영재라는 인물을 연기했던,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그 처연한 인물을 연기했던
그 비인가?
제이튠엔터인지 뭔지
코스닥 개잡주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잡음들..
그게 결국 터진건지
드라마가 방영되는 요즘
검찰 조사 운운하는 소리도 들린다.
아..
그게 무슨 꼴인가?
신인을 막 벗어날 무렵의,
그 싱싱하고 어리며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지금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어떻든 그는 진정성을 내뿜었으니까.
권상우..
우연한 일이지만,
난 21세기 초반,
그러니까
권상우가 아직 무명이었을 무렵에
어느 잡지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차태현은 잘 나가는 배우였고
최고의 스타였다.
나이는 기껏 20대 중초반..
그런데
바로 그 때 무명이었던 권상우는
'제2의 차태현을 꿈꾼다
어쩐다'
하는 기사와 함께 사진이 실리는..
그러나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연이나 하는 인물이었다.
화산고에서 그를 보곤 뒤로 넘어갔다.
생긴 것도 이상했지만,
무엇보다
그 음성과 발음이라니..ㅠㅠ
그는
꿋꿋하게
그 음성과 발음을
고수한다.
발성 연습을 하거나
발음 교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은 채
갑자기 대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사실,
난 권상우를
제대로 본 것이
동갑내기 과외하기이다.
그 전까진
이름만 얼핏 들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동갑으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난 그렇고 그런,
인터넷 소설을 기반으로 한
코미디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라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작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엽기적인 그녀가
엽기적인 흥행 성공을 하며
전지현이란 배우를
여왕으로 만들어주자,
그때부터
작품은 안하고
줄창 광고만 찍어대서,
해피투게더에서의
전지현에게 향수를 품게 만들더니,
권상우가 그러했다.
난 우연히
티비에서 해주는
동갑을 보았는데
음..
제법 재미 있더만.
적어도
엽기적인 그녀보단 나았다.
우선
배우들이 나았다.
전지현이나 차태현보단
이쁜 척 하는 걸 그만두고 망가지기로 결심한 것이
대견한 김하늘과,
권상우..
그때
난 권상우가
뜻밖에도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미남이었고,(성형 미남이라는 소리도 얼핏 들었지만)
발음만 아니라면
연기도 뭐 그럭저럭..
무엇보다
곱상하게 생겨서는
액션 하나는 끝내준다.
난 액션 잘하는 배우에게 매우 약하다.
이병헌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인데
권상우도
액션은 정말 다이나믹한 것이다.
그만하면
몸매 좋고,
용모도 그럴싸하고
키도 크다.
그러니
발성과 발음만 좋았다면
괜찮은 배우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작품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난 작품을 안하는 배우는
제아무리 거물인체 언론에서 떠받들어줘도
배우로 안치니까.
이병헌은 그런 점에서
내가 높이 사는 것이다.
난 그가 작품을 안하고 넘어가는 해가 없다는 걸 안다.
물론
지금의 이병헌보단,
해피투게더의 서태풍을 연기하던 이병헌이 너무나 그립지만,
그는 내가 보기에 굉장히 멋있게 나이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지론대로
진화는 퇴보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발전이라는 이름은,
타락의 또다른 얼굴인 것이다.
그만큼 복잡해지고
그만큼 지켜야할 것이 많아지며
그만큼
깊은 수렁처럼
음험해지니까.
아무튼
권상우는
동갑과 천계라는 두 작품으로 일약 대스타가 되는데,
난 그가 싫지 않았다.
발음이나 음성은 심히 괴롭지만,
그래도 꾸준히 작품을 하는 것도 좋았고,
말죽거리나 야수라는 영화는
인상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슬픈 연가라는 드라마에서
그는 정말 아름답다.
물론
남자가 가진 건 사랑뿐인지
줄창 사랑에 목을 매며
울고짜는 건
맘에 안들었지만
그래도
어떻든
그가 가장 매력적으로 나온게
슬픈 연가가 아닐까?
그러던 그가
갑자기
온갖 추문에 휩싸이며
바람 잘 날이 없다.
난 신부수업에서
그 청순한 신부역을 하던 권상우를 그리워한다.
왜
대스타가 되면
다들
그렇게 복잡해질까..
왜 초심을 잃어가는걸까..
아니
그게 인지상정이겠지?
그래서
난 문득 주배우를 생각하는 것이다.
주지훈..
난 그가
하루 빨리 자리잡아
다시 말해서
지금 내가 비판하는 그런 사람들 같은
지위에 오르길 바라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궁이나 마왕,
앤티크나
주주앙에서 보여준
그 모습들을
그는 유지할 수 있을까?
그는 아직까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참으로 기적적으로
많은 고초를 겪고 파란을 겪은 사람치곤
여전히
그는 아름답다.
난 그것을 기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게
결국 주배우에게서도
바로 그 발전과
성공이라는 이름의
퇴보라면
어떻게하지?
주배우는
초심을 잃지 않을거라고
믿지만
그러나.
그 세계가 어쩌면
사람을 그렇게 몰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톱이라는 지위에 오르면
그걸 유지해야하고,
자신이 없는 사람들,
스스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연기 철학이 없는
배우로서의 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유지할 자신감 부족으로
타락해가는지도 모른다.
주배우가 말한
진정한 배우..
그것에 희망을 건다.
그는
아무쪼록
배우가 되어서
항상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으로
우리와 교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