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닦아주는 강아지
테리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것은
녀석이 떠난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 아닌가 싶다.
떠난 녀석도 그랬지만,
사람이나 하다못해 강아지조차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 법이다.
녀석이 떠난 후
다시 강아지를 키우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연이 있으면
지가 우리에게 오겠거니 하면서 막 포기하려는 찰나에,
마침
병원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시츄 새끼 강아지를 원했던 나는
요크셔테리어라는 말에
내키지 않았지만
얼결에 데려와선
벌써 두달이 다 되어간다.
두 달..
그 시간이
테리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이제야 이해한다.
테리는 순하고, 싹싹하고
사교적이다.
재롱도 잘 부리고
영리하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어둡고 습한 곳을 찾아
웅크리고 있곤 했다.
우린 그 이유를 몰라
화를 내고 야단을 쳤고,
그런 이유로
몇 번이나 키우는 걸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젠 안다.
테리는 두려웠던 것이다.
5개월짜리 새끼 강아지는,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이 무서웠던 것이다.
천성이 사교적이라
처음부터 우리를 따르고
장난을 치며 잘 지내는 듯 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테리에게 관심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내가 돌봐야했는데
난 그게 좀 귀찮았다.
테리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구석을 찾지 않게 된 것이
바로 엄마가
테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테리를 비로소 이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테리는
이상할 정도로 민감하고 눈치가 빠르다.
테리어의 특징이 아닐까?
가족들 모두가 이젠
자기를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며,
절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사실 어떤 경우에도 우린 강아지를 버릴 사람들은 못된다)
더이상
이곳이 낯선 곳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라는 걸 믿게 된 순간부터
테리는 돌변했다.
세상에 그렇게
영리하고
그렇게 장난심한 강아지가 또 있을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겐
떠난 녀석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생생하기에,
그렇게 천진하고 맑은 유아견의
재롱이 위로가 된다.
게다가
테리는 정말 재밌다.
그래서
우린 '개그독'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녀석이 발동걸리면
우린 데굴데굴 굴러야한다.
무뚝뚝하고
재주는 커녕
자기 몸에 손대는 것도
귀찮아했던 녀석관
정 반대로
사람을 좋아하고,
장난이 심하며
굉장히 민첩하고 영리하다.
테리어의 특성이리라.
게다가
시간이 흘러 두 달이 지난 요즘엔
테리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요키 특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
요키 중에서도 보기 드문 견종인지라
온 몸이 여러가지 파스텔톤의
환상적인 빛깔의 털로 뒤덮여가면서
너무나 귀엽고 이쁘다.
이제
마음을 놓자
테리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조금씩 개긴다.
강아지나 사람이나
눈치봐서
괜찮다싶으면 기어오르는 것이다.
순딩이라고 불렀는데
순하긴 커녕, 이건 완존 개판이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잠든 강아지를 들여다보는 게
내 취미이다.
떠난 녀석도 그랬지만,
테리도 그러하다.
어느덧,
떠난 녀석이 자던 바로 그 자리,
엄마의 옆자리에
떡하니 누워서
활개를 펴고 잠들어 있는 테리를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장소,
똑같은 어둠...
그러나
강아지는 달라져있다.
동글동글했던 시츄가 아니라
길쭉하고 털이 비단같은 요키가
대신 그 자리에 있다.
오늘,
여느 때처럼
녀석의 잠든 모습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떠난 녀석이
수술한 후에
힘없이 누워 있던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때,
녀석의 앞발을 꼭 잡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났다.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이 아팠었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아니
죽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바보처럼...
난 테리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요키 특유의 아름다운 털이 이제 굽실거리며
자라기 시작해서
점점 멋있어지는 테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내 손은 테리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그러나
내가 쓰다듬는 건
테리가 아니라
녀석이었다.
난 늘
그렇게 잠든 녀석을 쓰다듬고,
안아주곤 했었다.
그럼 녀석은 짜증을 부렸다.
병이 난 후엔
기운이 없어
내가 아무리 만져도
꼼짝도 못햇다.
아니
어쩌면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불쌍한 강아지야..
무서웠니?
아팠니?
떠나게 될 걸 알고 있었니?
지금 무지개 다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니?
너에게도
테리처림
빛나는 시절이 있었지.
그 시절로 돌아갔니?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답던 너의
모습을
우린 잊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최후의 2주..
죽음을 기다리던
너의 마지막 모습들이다.
그렇게 갈 줄 알았다면
목욕이나 시킬걸..
온몸이
소변에 쩔고,
소독약에 쩔고,
그 아름답던 꼬리가
그저 소변에 쩔어서
거추장스럽기만 했었지.
그 아름답던 긴 머리가
덕지덕지 먼지 투성이로
붙어서
아무리 닦아도
소용이 없었지.
앞발은 풀려서
늘어졌고,
아무리 기를 써도
똑바로 누울 수 없었지.
우리 이쁜 강아지야..
너에게도 있었던 빛나는 시절을
테리를 통해서
우린 본다.
그래..
그 녀석도
이랬지.
어렸을 땐
그 녀석도 저런 짓을 했었지.
이러면서
테리를 본다.
우린 테리를 통해서
널 재발견한다.
늙고 병들고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시들어가던,
그럼에도
너무나 맑고 아름답던 검은 눈..
난
테리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쏟아진다.
자고 있던 테리가
놀란 듯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우냐고 묻는 것처럼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갑자기
내 눈에 잔뜩 고인,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테리는
핥기 시작한다.
난
잠시
테리의 부드러운 혀가
애기 강아지답게
아직도 야들야들한 혀가
내 눈과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에
나를 맡기고 있었다.
테리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아니
마치 떠난 녀석의 영혼이 깃든 것처럼
날 위로하듯이
그렇게
내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