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요크셔테리어

모놀로그 2010. 9. 30. 11:25

이번 명절에 우리 테리는 스타였다.

 

사실 테리는 요키치곤

가장 못생긴 견종이다.

 

대개의 요키들은

인형같이 작고 이쁘게 생겼다.

 

털도 환상적이고

내가 본 중엔

아마 가장 럭셔리하면서 빛나는 견종이다.

 

하지만,

 

난 요키를 싫어했었는데,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요키에 대한 마인드를

명절에 모인 형제들이 한 마디로 규정한다.

 

'싸가지가 없자나'

 

ㅋㅋ

 

실제로 싸가지가 없는진 모르겠지만,

웬지 그렇게 생겼다.

 

그리고

 

실제로

주인에게야 안그러겠지만

 

그동안 봐온 요키들은

대개 얄밉게 군 건 사실이다.

 

테리는

그 요키 중에선 제일 못난 견종인데

 

거기에 관해선

형제들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귀엽고, 이쁘진 않지만 싸가진 없지 않다'

 

사실

우리 테리는

요키치곤 굉장히 사교적이다.

 

집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백년지기라도 되는 듯

달려들어 마구 매달린다.

 

떠난 녀석도

그랬지만

 

테리는 유별나다.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애교를 떤다.

 

영리하고 눈치도 기막히게 빠르다.

 

요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건,

 

영국 출신이며,

귀족들이 사냥할 때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몸집이 작은 애완견치곤

실제로 사냥개의 피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우리 테리를 보면 느낀다.

 

민첩하기론

눈부셔서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장난기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동시에

주인을 무서워해서

조금만 잘못했다고 느끼거나

우리 기세가 심상치않다고 감지하는 순간

벌써

자기의 성안으로 퇴각한다.

 

하긴

그 성안이라는게

전혀 방어가 없는

기껏 방구석이지만.

 

엄마가 간만에 여행을 갔다.

 

떠난 녀석이 늙어가면서

엄마는 일체 여행을 그만두었다.

 

난 그 심리를 알고 잇었다.

 

언제 떠날지 모를 녀석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지내고 싶어하는 마음..

 

그렇다.

떠난 녀석은 엄마에겐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마침내

녀석은 떠났고,

 

너무나 아프게 떠났고,

그래서

한동안 그 아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엄마가

 

테리로 인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 것도

 

아마

떠난 녀석에겐 없었던

애완견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테리는 어리다.

 

맑고 비어있는

작은 그릇이다.

 

이제 겨우 몇개월밖에 안되었음에도

벌써 몇 군데나 돌아다닌

요키치곤 슬픈 운명의 강아지였는데

 

어려서인가

그것이 깊은 상처는 안된 것 같다.

 

대신에

잠재적으론 공포를 심어주긴 했다.

 

녀석은

분위기로

감지한다.

 

애완견스럽게 애교가 많고

장난 심하고,

게다가

작은 사냥개처럼 민첩하며

우리가 처음 보는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큰웃음을 주는 테리가

 

엄마의 아픔을 조금은 치유해주면서,

 

결국 모처럼 여행을 떠난 것이다.

 

테리는

엄마가 자기에게 별 관심이 없다고 민감하게 느끼고 잇었다.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어가지만,

 

내내

테리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테리는 밤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안을 떠돌아다닌다.

 

제일 화나는 게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나가보면

 

개화장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던가,

 

하수구에서

물을 핥아먹어서

온몸이나 주둥이가

물투성이가 되 있을 떄이다.

 

마구 야단치고,

몇번이고

돌려보낼까 싶기도 햇다.

 

그러던 테리가

드디어

그 짓을 그만두게 된 것이.

바로

엄마가 테리를 귀여워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녀석은

엄마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안정되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감추고있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싸가지가 없어져 가는군~!

 

하고 동생이 한 마디로 결론내렸지만,

실제로

그동안 순딩이처럼 굴던 테리가

조금씩 제멋대로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엄마가 여행을 떠나

자리가 비자

녀석은 다시 방황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난 녀석에게 질려서

나도 모르게

돌려보낼 뻔 햇다.

 

난 그 어떤 존재던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던

날 방해하고

귀찮게 구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떠난 녀석은

엄마가 여행을 가도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나이도 많았지만,

대개는

조용히 지냈고,

시간 맞춰서

용변을 보게 하고,

과자를 주고,

사료만 챙겨주면

 

하루종일

졸고 잇었다.

 

그런데

테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도

아직 어린데다

이제 막 적응하려던 중에

엄마가 자리를 비우자

다시 정서불안에 빠진 모양이다.

 

녀석은 줄기차게

내 침대에서 자겠다고 졸라댄다.

 

떠난 녀석같으면

재웟을 것이다.

 

물론

난 강아지랑 같이 자는 걸

못참지만,

 

잠시라도 올려놨을 것이다.

 

그러나

테리는 어려서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한다.

 

소파에도 잘 못올라올 정도로

아직은 어린 녀석이

 

높은 침대에 올려놨다가

그대로 뛰어내리면

큰일이다.

 

그래서

올려놓지 않자,

 

밤새도록 날 괴롭히며

울어댄다.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난 화가났다.

 

결국,

 

난 녀석과 같이

바닥에서 자야했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나니

 

미운정이 든다.

 

그동안에도 이쁘다고 했지만

그건 그냥..

 

떠난 녀석에게 주었던 마음과는 비교가 안되는,

 

피상적인 것이었다.

 

오늘 아침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아직 어린 녀석이

어느새

 

그 견종에 맞는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요키 중에서도 가장 못난이인,

주둥이가 길고

수염에 파묻히고

몸뚱이도 길고

 

그러나

환상적인 빛깔과 털을 가진,

 

할아버지같은 느낌을 주는

요키말이다.

 

새끼 강아지주제에

노인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웃기던지..

 

난 비로소

녀석이

정말 이뻐지기 시작한 것 같다.

 

동시에,

 

엄마가 여행을 갈 때마다

내 방으로

기어들어와

발치에 얌전히 앉아 있곤하던

떠난 녀석이

너무나

너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