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언젠가부터
태풍이 사라졌다는 말을 했었다.
8월쯤이면 어김없이 태풍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였는데,
갑자기 태풍 없는 여름,
이렇다할 무더위 없는 여름으로 일관하더니
올해
톡톡히 댓가를 치룬다.
미칠 듯 짜증나는 더위가
아직도 계속되는데
습기가 가득차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배어난다.
이런 습기 속에서
벌써 몇달을 살았던지..
간밤에도
오후에 잠깐 누웠는데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컴터도,티비도 모조리 켜놓은 채로
잠들어버린 것이다.
잠결에도
컴터를 꺼야하는데..
티비도 꺼야하는데..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은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것은
아마도
무시무시한 바람소리 탓일 것이다.
난 잠시
우리 건물이 무너지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거의 땅에 닿을 듯 휘어진다.
그때마다
온 집안의 창이 소리내어 흔들린다.
난 잠에서 덜꺤 눈을 비비며
잠시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미칠 듯한 바람..
바람..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
조금씩 흩날리는 빗줄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면
비도 제대로 오지 못하나보다.
비가 바람에게 밀려서
마구 흩어진다.
그럼에도
빗줄기는
바람에 섞여서
미친 노래를 부르며
창을,
건물을 마구 흔들어댄다.
무서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저 바람 속의
한 방울 빗줄기처럼
마구 떠밀려
어딘지 알 길 없는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태풍에
폭우가 쏟아져서
물난리가 났다는 소린 들었지만
그런 바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다.
서울도 이런데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을까?
간만에 보는
무서운 태풍이었다.
그러나
내 기대처럼
그 태풍이
이 지겨운 습기가 가득한
여름을 데려가진 않았다.
전엔
이런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가면
갑자기
여름은 기가 죽어 뒷걸음질 치곤 했는데..
아..
나의 가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