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11부- 권력에 대한 선망과 아이들의 카오스

모놀로그 2011. 2. 9. 10:26

궁 11부는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궁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주춤하는 회이다.

 

한걸음 진전을 위해 다들 몸을 사리는

회라고 보면 되겠다.

 

동시에 혜정궁의 등장으로 인해

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것을 강력하게 예고하고,

 

그들이 바야흐로 신군에게 퍼부을 공격이 점점 드세질 때,

그런 야망에 이용당하거나, 상처받고, 고통받아야할

19세 청춘들의 아픔도 병행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궁은 세가지 모습으로 내게 보여졌다.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고전과 현대의 기막힌 조화 속에서

미학의 극치를 이루는 외형적인

궁,

 

두번째로

채경을 통해 보는 궁인데,

그것은 역시 평민인 나로선 채경에게 공감하게 되는

궁이라는 공간과 황족이라는 종족에 대한 느낌들,

 

두렵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별천지이기도 한

궁안에서

선망과 굴레를 동시에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군을 통해서는

상징적인 공간 속에서

엄연히 실존하는 인물이건만

역시 상징적인 존재로만 모든 인물들에게 인식되어지기에

어쩔 수 없이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공간인 궁이다.

자아를 발현할 수 없고,

꿈이나 개성을 말살해야만

견뎌낼 수 있다는

절망적인 타협을 통해서 숨을 쉰다.

 

 

그런데 혜명 공주의 등장은

갑자기 색다른 공기를 몰고 온다.

 

그것은 채경이와는 또다른,

 

자신이 주체가 되어 당당하게 분위기를 이끄는

황족으로서의 자부심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대범하고 영리한 타고난 성정과, 그것들이 뒷받침되어

강한 친화력을 발산하며,

신군처럼 메마르고 살벌하며 엄격하고 냉소적인게 아니라

 

여유롭게 삶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황실 페밀리 중에선 상당히 튄다.

 

늘 노심초사하고 있는 듯한 소심한 느낌의 황제나,

경직되어 있어

당췌 조선 시대의 마인드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의

황후,

 

무표정하고 냉소적이며 살벌하고 메마른 느낌의

황태자가 주요 구성원이었던 황실에

불쑥 끼어든 그녀는,

다른 황족과는 달리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코스모폴리탄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21세기가 표방하는 황족들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의무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황태자로서의 외형적인 조건은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지만

내면적으론 전혀 그렇지 못한 신군과는 달리

 

그녀야말로

입헌군주제하의 황제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이 황족이라는 것을 그다지 답답하게 여기지도 않을 뿐더러,

요령있게 그것을 즐길 줄도 알고

자기를 얽매는 악습은 교묘하게 피할 줄도 알며,

 

당당하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고

안고 싶으면 안을 만큼

자기 주관도 뚜렷하다.

 

대개의 인간들은

그런 부드러운 카리스마 앞에선

대항하지 못한다.

 

강요된 황태자다움에 길들여진 신군과는

또다른

개성 있는 황족의 등장이다.

 

그리고

그토록 자유분방한 21세기형 황족 입에서

우린

사랑에 대한 정의를 듣는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랑이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다해서

사랑이 영원히 없으리란 법은 없다는 점과,

 

무엇보다 신군이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한다.

 

물론 우린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신군이 아주 미묘하게 보여주는

심리의 변화를

소심한 스킨쉽,

 

즉 그녀가 모를 때만

그녀에게 표현하는 그 스킨쉽을 통해

우린 짐작하고 있지만,

공주는 단도직입적으로

신군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까지 까발긴다.

 

그런 점에서 누구보다

신군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또한 공주이며,

그것이 신군이 그토록 공주를 반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선 여전히 사극에서 흔히 벌어지는 

어둠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그림자들이 얼키고 설킨다.

 

아직은 그 어둠의 세력에 가세하진 않았지만, 

율군은

엄마가 벌이는 짓을 알고 있다.

 

사진 한 장만으로

얼마든지

그럴 듯한 이유를 붙여서

황태자에게 흠집을 낼 수 있음도 알고,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율군은

그런 혜정궁의 속셈을 파악하면서

지식인답게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자신의 욕망과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에

아직은 서 있다.

 

아직은

신군과 명확하게 대립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점점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신군으로 인해 자꾸만 상처받는 채경과,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적개감을 표시하는 신군과,

 

신군 주변을 맴돌며

어떻게든 그를 되찾으려는 효린의 욕망

 

등등,

 

주변이 그를 조여오는데,

 

그는 이제

바야흐로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직전인 듯하다.

 

공주의 등장은

묘하게도

혜정궁의

황태자 모해 작전과 맛물려 있다.

 

그것은

계속될 혜정궁의 공격을

최일선에서 방어해줄 인물이

공주임을 알려준다.

 

먼저

시작된 공격인

태국 사진건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는

공주의 말로 인해

 

혜정궁의 공격이 본격화될 것과,

그것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맨몸으로 당하게 될 신군,

 

그러나

그런 신군을 보호할 사람은

 

다름아닌

공주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반면에

신군과 채경은

화합도 대립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도달했다.

 

채경은 병이 난다.

 

그녀의 병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범벅이 되어 나타난

육체적 반응같다.

 

신군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의 외로움은 깊어가고,

 

그 외로움은

 

바깥 세계,

친정이라는

이전의 그녀가 속해 있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발산된다.

 

하지만,

그 그리움 속엔

신군에 대한 갈망도 담겨 있다.

 

 

그녀의 이전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신군에 대한 불신과,

그럼에도 그를 갈망하는

그녀의 마음이

다른 것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를 몰랐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한 인간을 원하는데,

그 인간을 가질 수 없는 외로움,

 

더더우기

그 인간은 다름아닌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늘 곁에 있지만

 

한편으론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여전히 높은 성에 살고 있는

왕자님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고,

아무런 대화도 없고,

여전히 쌀쌀맞다.

게다가

효린이라는 존재가

아직도 버티고 있다.

 

신군으로 말하자면,

 

11부의 그를 보고 있자면

말없는 사람, 표현력이 약한 사람 특유의,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설명을 할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것과

선천적으로

변명같은 건 못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리라.

 

어쩌면

공주라면 신군이 하는 단답형의 짤막한 말들을

알아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채경처럼

원색적이고 단순한 인물이

그런 말을 알아들 수 있을까?

 

그는

상처주고 싶지 않은데

상처를 줄 수밖에 없어

스스로도 답답하고 괴롭지만,

 

또한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할지도

표현해야할지도 모른다.

 

기껏 소리나 지르고

매정하게 한 마디로 자르고

 

그러나

 

병간호를 하며

빰을 어루만지는 손길과,

 

그녀가 궁을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과,

 율군과 함꼐 있는 모습에 질투하는 등

 

카오스의 한 가운데 있다.

 

채경은 채경대로,

신군은 신군대로,

율군과 효린도 마찬가지,

 

이제 뭔가 결단을 내려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19세의 청춘들은

각각의 처지 안에서

 

카오스의 절정을 맛보며 괴로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