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처럼
너무 지쳐서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데
며칠 째 생각만하고 있을 뿐
움직일 수가 없다.
짬이 나면
쓰러져 자기 바쁘다.
녀석이 쓰러진 이래
삶의 리듬이 엉망이 되버렸다.
개쉐이 한 마리 때문에
이렇게 될 수가 있는건가?
하지만,
그넘은
우리 가족이다.
말하자면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음과 싸우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노력과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무엇보다
우린 그 녀석을 사랑한다.
하지만,
문득 문득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불과 한 두달 전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과자 한 개 얻어먹기 위해
오줌 한 방울 흘리고 와서
꼬리를 흔들며,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보고
내가 바빠서 미처 자길 보지 않으면
찡얼거리던 그넘이 맞는가 싶다.
아침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엄마와 악을 쓰며
다투고,
엄마가 화를 내면
저는 더 큰소리로 화를 내며
아침을 나누어 먹던 녀석이 맞나 싶다.
식사 때마다 식탁 주위를 돌며
마구 짖어대서
도저히 시끄러워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밥을 먹는건지 마는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게
십 년이 넘었다.
최근엔 더욱 버릇이 나빠지고
식탐이 심해져서
식사 시간 내내
악을 쓰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때가 되면 쪼르르 지 화장실로 달려가서
볼일 보고 또 과자,
우리가 야식이라도 먹으면
자다가도 달려나와
또 달라고 악을 쓰던 녀석이..
네 발로 굳건히 서서
분수같이 솟아오른 꼬리를 위로 치켜올리고
눈을 빛내며
그저 먹을 거 없나
두리번 거리다가
초저녁만 되면
벌렁 나자빠져서
코를 골던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어제 새벽의 유리눈 사건으로
간담을 서늘케하더니
기운을 좀 차리고
제법
웃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갑자기
오늘은 또
축 늘어져서 운신도 못한다.
의사의 태도를 보면서
난 문득,
의사는 녀석이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의사는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린 자랑스럽게
녀석을 살려냈다고 기뻐하고 있지만,
의사는 알고 있는 것이다.
녀석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걸..
아닌게 아니라
오늘부터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기운이 한 알갱이도 없다.
그러면서도
식사는 세끼를 꼬박꼬박 받아 처드시는게
신기하다.
대개는
밥이나 물을 거부한다던데
어찌된 넘인지
저 지경이면서도
여전히 먹는 건 좋은가보다.
그러나
녀석을 이제 짖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혼자 일어나지도 못한다.
녀석은
그저 우리의 사랑을 먹고 연명하고 있다.
살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하루하루 이어간다.
세찬 바람 앞에서
겨우 버티는 꺼져가는 촛불을 보듯
위태롭다.
수술 자국의 염증으로 인한 고통은 어느 정도 가신듯 하지만,
그러나
이제
본격적인 후유증들이 나타나는 모양이다.
신부전증을 심해졌을 게 뻔하고,
심장도 폐도
어쩐지 그리 좋은 것 같지가 않다.
어제부터 갑자기 기운이 급격하게 빠지며
눈에 뜨이게 쇠약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눈망울..
이미 보이지도 않는데
여전히 검고 구슬같은 이쁜 눈.
여전히 순정만화에나 나올 듯한
청순한 얼굴.
저렇게 이쁜 넘이 세상에 또 있을까?
무뚝뚝하고
게으르고
그러나
먹는 거엔 목숨을 걸던 녀석이
하루가 5년이라더니
이제 며칠이나 남았을까..
아니
제발
버텨주길.
그래서
그 의사의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한 방 갈겨주었으면..
널 죽인건
우리 모두와
바로 그 의사인데
복수를 해야지.
안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