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9부- 효린과 신군의 가면
효린은 자기가 벗은 가면을
신군에게 주며 말한다.
이 가면이 널 지켜줄거야...
그 가면은 이후,
황태자 기자회견장에서,
그리고
공주가 나타나서 황태후에게 '엄마'라고 불렀을 때,
신군으로선 절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단어를 거침없이 입에 담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신군이 바라보거나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데 쓰인다.
효린이 벗어던진 가면..
그때
효린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니가 날 왜곡시킨거야..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효린은
신군이 보고 싶어하는,
혹은 신군이 좋아하는 어떤 면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날 좋아하는데,
그것이 나의 본질과는 많이 멀지만,
그래도
그가 굳이 그런 면 때문에 날 좋아한다면,
난
그것을 고수해야한다.
적어도
그 사람 앞에선
그가 좋아하는 그 모습을 유지해줘야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다.
왜냐면
불쑥 불쑥 나와는 거리가 먼 그 가면 대신에
나의 본성이 머리를 치켜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상대는 조금 놀라지만
굳이 그걸 외면하고
자기가 믿고 있는,
혹은 자기가 좋아하거나 보고싶어하는 그 이미지를
굳이 간직하고 있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건 매우 피상적인 관계이기에
어느 한도 이상으론 가까와지기가 참 힘들다.
그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효린의 경우는,
어쩌면
신군이 청혼했을 때,
대뜸 그것을 거절한 것이
그녀의 가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로,
그녀가 신군에게 집착하면서
갖가지 해프닝을 벌이는 것이
그녀의 본성일 것이다.
그것은
신군이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일면이다.
그녀가 자신과 닮았다고 믿었던 그는
그녀에게도
자신처럼
집착이란 것이 없는,
자기애가 강한 인간이라고 믿었을테니까.
물론,
그들은 둘 다 자기애가 강하다.
그리고
둘 다 결국은 집착이라는 것을 배운다.
효린은
가면을 벗었다.
분명히 벗었다.
그 가면 안엔
강한 자기애가
고고함이 아니라 집착의 형태를 띠우고
있다.
신군은
그 가면으로 잠시 자신을 방어하지만,
이미 힘이 없다.
효린의 가면은
신군을 지켜줄 수가 없다.
왜냐면
신군도 그 가면을 벗었기 때문이다.
신군이 가면을 벗었을 때,
그 안에도
역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상대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
외롭고 갇혀있던 두 사람의
강한 자기애와 자기 기만의 가면이
밖으로 표출할 때,
그것은 집착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른 점은
효린은 율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나락으로 던지며
동시에
상대도 함께 그 나락으로 끌고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고,
신군의 경우엔
그 집착을 다시 꽁꽁 가두고
자신의 암실에 틀어박힐 뿐이다.
그는 외롭고 갇혀있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서
자신의 집착의 대상을
놓아주려하고,
대신
그 집착을 끌어안고
다시 갇히려 하는 것이다.
잠시
신군의 곁에 머물렀다 싶었던 그 가면은
그렇게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
집착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차이.
그리고 본성의 차이.
우리도 가면을 쓰고 있다.
진실은 너무나 단순한데
다들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단 한 마디면 되는데..
마치
신군이
'가지마..나 혼자 두지마...떠나지마'
이 한 마디가 그토록 힘들어서
기나긴 길을 돌고 돌며
고통받았듯이
우리도
단 한 마디를 못해서
늘 고통받는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었을 때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 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그 가면을 벗어던진 후이며,
어쩌면
진정한 자존심과 긍지는
그 가면을 벗어던진 후의
참모습에서
찾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