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9부- 효린과 신군의 가면

모놀로그 2011. 2. 6. 03:43

효린은 자기가 벗은 가면을

신군에게 주며 말한다.

 

이 가면이 널 지켜줄거야...

 

그 가면은 이후,

 

황태자 기자회견장에서,

그리고

공주가 나타나서 황태후에게 '엄마'라고 불렀을 때,

 

신군으로선 절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단어를 거침없이 입에 담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신군이 바라보거나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데 쓰인다.

 

효린이 벗어던진 가면..

 

그때

효린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니가 날 왜곡시킨거야..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효린은

신군이 보고 싶어하는,

혹은 신군이 좋아하는 어떤 면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날 좋아하는데,

 

그것이 나의 본질과는 많이 멀지만,

그래도

그가 굳이 그런 면 때문에 날 좋아한다면,

그것을 고수해야한다.

 

적어도

그 사람 앞에선

그가 좋아하는 그 모습을 유지해줘야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다.

왜냐면

 

불쑥 불쑥 나와는 거리가 먼 그 가면 대신에

나의 본성이 머리를 치켜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상대는 조금 놀라지만

굳이 그걸 외면하고

자기가 믿고 있는,

혹은 자기가 좋아하거나 보고싶어하는 그 이미지를

굳이 간직하고 있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건 매우 피상적인 관계이기에

어느 한도 이상으론 가까와지기가 참 힘들다.

 

그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효린의 경우는,

어쩌면

신군이 청혼했을 때,

대뜸 그것을 거절한 것이

그녀의 가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로,

 

그녀가 신군에게 집착하면서

갖가지 해프닝을 벌이는 것이

그녀의 본성일 것이다.

 

그것은

신군이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일면이다.

 

그녀가 자신과 닮았다고 믿었던 그는

그녀에게도

자신처럼

집착이란 것이 없는,

자기애가 강한 인간이라고 믿었을테니까.

 

물론,

 

그들은 둘 다 자기애가 강하다.

 

그리고

둘 다 결국은 집착이라는 것을 배운다.

 

효린은

가면을 벗었다.

분명히 벗었다.

 

그 가면 안엔

 

강한 자기애가

 

고고함이 아니라 집착의 형태를 띠우고

있다.

 

신군은

그 가면으로 잠시 자신을 방어하지만,

이미 힘이 없다.

 

효린의 가면은

신군을 지켜줄 수가 없다.

 

왜냐면

신군도 그 가면을 벗었기 때문이다.

 

신군이 가면을 벗었을 때,

 

그 안에도

역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상대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

 

외롭고 갇혀있던 두 사람의

강한 자기애와 자기 기만의 가면이

 

밖으로 표출할 때,

 

그것은 집착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른 점은

 

효린은 율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나락으로 던지며

동시에

상대도 함께 그 나락으로 끌고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고,

 

신군의 경우엔

그 집착을 다시 꽁꽁 가두고

자신의 암실에 틀어박힐 뿐이다.

 

그는 외롭고 갇혀있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서

자신의 집착의 대상을

놓아주려하고,

 

대신

그 집착을 끌어안고

다시 갇히려 하는 것이다.

 

잠시

신군의 곁에 머물렀다 싶었던 그 가면은

 

그렇게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

 

집착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차이.

 

그리고 본성의 차이.

 

우리도 가면을 쓰고 있다.

진실은 너무나 단순한데

 

다들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단 한 마디면 되는데..

 

마치

신군이

 

'가지마..나 혼자 두지마...떠나지마'

 

이 한 마디가 그토록 힘들어서

기나긴 길을 돌고 돌며

고통받았듯이

 

우리도

단 한 마디를 못해서

늘 고통받는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었을 때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 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그 가면을 벗어던진 후이며,

 

어쩌면

 

진정한 자존심과 긍지는

그 가면을 벗어던진 후의

참모습에서

찾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