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

모놀로그 2010. 8. 9. 00:05

이유를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밤새도록

 

'떠나는 우리 님'이 들려왔는지,

 

왜 어느날 밤

 

밤새도록

 

'낙인'

이라는 노래가 귀에 들려왔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난 불안함을 느꼈고,

 

곧바로 강쥐 쉐이가 병이 나면서

그넘이 떠나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강렬한 예감으로

난 녀석이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상반되는 상념들이 날 혼란케했다.

 

난 녀석이 수술받는 내내

 

'떠나는 우리 님'

을 무심결에 부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놀라서

입을 다물면

 

내 마음이,

내 머리가

노래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죽지 않았다.

 

지금 생각으론 앞으로도 적어도

급사하진 않을 것 같다.

 

투병을 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진 모르겠으나

 

오늘 내일 죽을 것 같진 않다.

 

물론

언젠간 떠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결국

녀석은 떠났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녀석은

껍질 뿐이다.

 

녀석의 영혼은 떠났다.

 

녀석은 마치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보인다.

 

가끔 넋을 잃은 듯한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눈빛은 알 수 없는 먼 곳을 헤매고 있거나,

아예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을 띠고 있다.

 

강아지에게도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녀석은 여전히 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지만,

 

그러나

이미 녀석이 아니다.

 

녀석은 혼자선 아무것도 못한다.

먹지도 짓지도 않는다.

 

아주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긴 하다.

그러면

녀석은 굉장히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는데,

 

그 표정은 일찌기 본 적이 없는 사납고 신경질적이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고,

곧바로

 

그 넋빠진 표정으로 돌아가버린다.

 

난 식물 강아지라고 농담을 하지만,

그러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한편으론

그렇게라도 아직은

육신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지만,

 

내가 오랜 시간 지켜본 녀석은

이제 간데가 없다.

 

그리고 난 알고 있다.

 

녀석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녀석에겐

너무나 힘든 수술이었고,

깨어난 것만으로 기적이었지만,

 

그러나

대신 녀석은

영혼을 내버린 것이다.

 

그건

인간에겐 종종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힘겨운 육체적 고통과의 싸움에서

비록 목숨은 건지지만

넋은 빠져버리고,

영혼은 빠져나가버리고

 

그저 육신만 남은 존재..

 

하지만

식물 인간은 상당히 까다롭지만,

 

강아지는 그보단 훨씬 가볍다.

 

인간은 크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육신을 지니고 있지만,

그리고 간호하기도 만만치 않지만

 

강아지는 어떻든

작고 가볍고 새털같은 존재니까.

 

난 녀석이 식물견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우리 곁에 머물러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다.

 

하지만

내가 십년 가까이 지켜온 그 녀석은

떠나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낙인..

 

그래 낙인이다.

 

지운다고 지워지지 않는 것,

 

지워도 지워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것,

 

낙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건 영혼에 찍인 흔적이다.

 

그래서 무섭다.

 

난 내 그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거두고 지웠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그에게 보여주고,

내 스스로에게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난 시간이 흐른 후에

미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후회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 난 조용히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난 그를 그리워하지만

보지 않는다.

 

보려면 볼 수 있지만

이젠 보고 싶지 않다.

 

그리움과 보고싶어서 보는 것과

뭐가 다른걸까?

 

그리움이란..

죽은 시간에 바치는 레퀴엠인가?

 

보고 싶다는 건

아직도 살아 있는 감정인가?

 

그 차이인가?

 

그렇다.

 

녀석이 껍질만 남기고 떠나버렸듯이,

 

그 시간들도

떠나버렸다.

 

그래서 그리워한다.

 

증오도 원망도 없다.

그저 그리움 뿐인데,

 

그 그리움은 절망적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아무런 해결책도 없고,

 

동시에

그럴 노력을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또한

모두 쓸데 없는 소리이다.

 

낙인처럼

 

내가 아무리 지워도

아니,

 

내가 지운 그것들,

 

그것은 내가 그에게 선물한 시간이다.

 

내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선물한 흔적이다.

 

그걸 지운다고

내가 사라진다면

 

그건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내가 그걸 지운 것이

내게도 큰 고통이며 후회지만

 

그렇게 하는 것으로

 

그에게서 날 지운 게 아니라

내게서 그를 지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아니다.

 

낙인처럼

그 시간은 살아 있다.

 

그래서

난 눈에 보이는 내 존재의 증명에 대한 미련을 거둔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로 인해

날 증오하고

날 지운다면

 

그건

차라리 잘된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거니까.

 

결국

내게서도

그 낙인은

희미해져갈테니까.

 

낙인은

사랑의 무서운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