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사랑vs 거짓말
거침없는 사랑에 대해선
몇 개의 리뷰를 썼는데
불행히도
어디에 썼는지 찾을 길이 없다.
그때는 블로그나 그런게 없을 때였고,
내 홈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청자 게시판엔 물론 안썼고,
대체 어디에 있지?
거사는 흔히들 말하는 불륜드라마이다.
불륜드라마~!!
무서운 말이다.
한칼에 저런 평가를 받으면,
이미 그 드라마에 대한 이미지가
확 구겨진다.
보지도 않고
내려지는 무서운 판결~!
물론,
난 거사가 불륜드라마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설사
처음부터 입벌리고 아무 생각없이 봤다쳐도
불륜 드라마라는 평가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난 애초에 불륜 드라마라는 말도 몰랐으니까.
난 드라마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침을 튀기는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미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둔감한 건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들과는
마인드 자체가 다를수도 있다.
전에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할 때도 그랬다.
등장인물은 결혼도 안했음에도
오랜 연인이 있다는 이유로
불륜이라고 펄펄 뛰더란 말이다.
그때도 난 어이상실이었지만,
한편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오랜 연인 노릇을 하다
새로 나타난 여자에게 남자를 빼앗긴 사람들도
세상엔 분명 있을 것이고,
아니
아주 많을 것이고
그래서
입에 거품물며
불륜이라고 대리 분노를 터뜨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거짓말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할 때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거짓말을 할 때만 해도
아마
온라인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정도로 알고 있으니..
하지만,
그 한정된 온라인 내에서라도
대단한 열풍을 일으켰으리라고 짐작한다.
난 거짓말은 당시엔 보지 못했다.
몇 년 후에 재방을 통해 봤는데,
세련된 화면에
역시 매력적인 대사들,
매력적인 배우들..
매우 도회적이어서
불륜드라마라는
촌시러운 딱지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였다.
사실,
드라마치고
불륜 드라마 아닌게 있나?
아침 드라마라던가
일일드라마라던가
주말 드라마같은 건 안봐서 모르지만,
드라마치고
불륜이 개입하지 않은 드라마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 드라마는 원색적이고 불륜이 난무하지만
이상하게
별로 도마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미니시리즈쯤 되면
이건 당장에 난리부르스가 벌어진다.
거짓말이나 거사나
모두 그렇듯
결혼 생활을 하는 남자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틀 안에 있지만,
거짓말과 거사는
내게 천지 차이로 다른 느낌을 준다.
난 노희경이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작가도 꽤 팬을 거느린 것으로 알지만,
그 작가가 알려진 것이
바로 거짓말이고,
사실 거짓말은
멋진 드라마이긴 했다.
아니...당시만 해도 정말 새로운 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막 태동하고 있던 네티즌이라는 무리들에겐
환호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난 거짓말을 보면서 꽤 불편했다.
불륜드라마여서가 아니다.
멋진 화면과 멋진 대사, 멋진 배우들이 정말
매력적이었고, 볼 때는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은 건 별로 없다.
후에 거사를 보고 힌 마디로
그 드라마의 매니아가 된 후에야
난 거짓말을 떠올렸고,
내가 왜 거짓말은 볼 땐 그런대로 몰입했지만
금새 잊어버렸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불편한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내가 그 작품에 동화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니 너무 차고 넘치는건가?
거짓말은
작가의 자의식이 너무 팽배해서
불편했고,
너무 멋을 부려서 불편했으며,
무엇보다
서로 사랑한다는 두 남녀와 내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난 대체 왜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 남자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긍극적으로
그 멋진 드라마의 수많은 겉포장 밑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주얼은 그럴듯 한데
내면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던 것이다.
남주는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사람 같았다.
오래 전에 딱 한번 본 후로 다신 안봐서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랬던 것 같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내를 가진
매우 도회적인 남자.
여피족 같은 생활..
정신적으론 아직도 솔로인 남자.
무늬만 유부남.
그러나
총각의 정신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랑이 뭔지,
여자가 뭔지
한 여자를 간절하게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남자.
그리고
그게 그가 비로소
한 여자를 절실하게 사랑하게 되는데,
결혼한 남자로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에
주어지는 나름의 타당성이었던 것 같다.
즉 그런 그 남자의 정신 세계를 이해해야만
그 여자가 나무랄데라곤 없는 아내를 놔두고,
엉뚱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래도 이해도 공감도 할 수가 없었다.
애틋함은 물론이고,
솔직히 지루하기까지 했으며,
아내의 고통은 너무나 처절해서
오히려
그 고통에 동참하게 되는데 그게 매우 힘들었다.
배종옥은 내가 원래 싫어하는 여자고,
유호정은 매우 아름답지만 너무 질척댄다.
이성재의 프로필은 신선했고,
그 역에도 잘 어울려서
나도 매혹당했다.
그러나...
하여튼 거짓말에서 기억나는 건
끝없이 흘러나오는
Cirque Du Soleil의
매우 건조한 듯 하면서 처연한
노래
Let Me Fall 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처연하지 않다.
산뜻하고 깔끔한 영상만큼이나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그리고
결론적으론
남자가 와이프에게 돌아가는걸로
끝난다.
난 거짓말과 거사를 비교하는 리뷰를 쓴 적이 있지만,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
어떻든
내 취향엔 거짓말이 더 맞아야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난 거사 쪽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내 심금을 울린 건
거짓말이 아니라
거사이다.
이유는,
거사는
겉치레가 없다.
진솔하다.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멋을 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멋을 부려서 멋진 장면이 아니라,
정말 멋진 장면들이 많다.
언제나 그렇듯
난 멋진 장면을 좋아한다.
근데
거짓말에 나오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멋진 장면들은
내게 별 의미가 없었는데,
거사의 몇몇 장면들은
내 심금을 울린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의 기준엔
아마 거사쪽이 더 맞는가보다.
왜 거사같이 어찌보면
촌스럽게 보이는 드라마에
멋진 장면이 많다는 걸까.
거사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대사도
노희경씨의 멋진 대사보다
거사의 보다 원색적인듯
그러나
정적인 대사들이
훨씬 더 심금을 울린다.
잘생기고 젊고 눈부시게 아름답고 세련된
거짓말의 주인공들보다,
아저씨 냄새 물씬 풍기는 조민기와,
못나고 촌시런 노처녀로 분한 오연수가
더 가슴을 울린다.
그들 입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더 현실감이 있다.
그래서 거사의 대사는
당시 명대사로 회자되었다.
그 대사들은
가슴 속에서 나오는
아픔이 묻어 있고,
쓰라리고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배어나오는
씁쓸하지만 긍정적이고 소박한 진실이 있다.
그래서
난 거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불륜드라마라고 화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러나
거사의 아픔이 바로
그 불륜이다.
즉,
거사의 두 남녀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불륜을 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남자쪽은 아버지의 불륜의 희생자이며,
그래서 생래적으로 불륜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며,
자기가 바로 그 불륜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인것이다.
여자는 그런 짓을 하기엔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그 어리숙함 때문에
평생 자기 것을 빼앗기며 살아왔다.
거사의 최대의 약점이자 치명적 실수는 첫 회이다.
대개의 드라마는 첫 회가 매우 중요한데
거사는 첫 회가 매우 취약하다.
지루하고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아마
많은 시청자들이
첫 회에서 채널이 돌아갔을 것이다.
나도
첫 회는 늘 패쓰니까.
하지만
첫 회엔 매우 중요한 것들이 담겨 있다.
오연수는
첫사랑 남자를 허무하게
작정하고 신분 상승을 위해
물불 안가리던 직장 동료에게 빼앗긴다.
그 남자의 결혼식에서 얻은 부케를 쥐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바보같은 여자이다.
난 바보같은 여자가 무지하게 싫다.
그런데
그 부케마저
다름 아닌
낯선 남자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들의 인연을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그 남자가 빼앗아간 부케말인데,
그 부케가 문제이다.
그 부케는
다름아닌 그 남자의 결혼식에 쓰인다.
그의 아내가 될 여자는 자기의
부케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식이 시작되기 십분 전에 말이다.
아니 오분 전인가?
그래서
다급한 나머지
그 남자는
다른 여자가 들고 있는 부케를 빼앗아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이 결정적인 5분이 이후로
많은 후유증을 낳는다.
그는
대체 왜 그 여자의 부케를 빼앗으면서까지 그 결혼을 감행한 것일까.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음에도
부케가 마음에 안든다고 난리를 피면서
결혼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그 여자는 애초에 결혼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여자에겐 결혼이나 가정이나 모두
자기를 치장하는,
안전한 장치요
엑서세리에 불과하다.
남편도 아이도 가정도
그녀에겐 자기가 걸친 멋진 옷차림과 같은 것이다.
다행히 그것들은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요, 자신의 일이며, 자신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에워싼 상황이 바로 행복해보이는 결혼생활인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걸까?
모르겠다. 아마 그는 사랑에 대해선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는 결혼을 위한 결혼을 했다.
그는 누가 봐도 나무랄데 없는
완벽한 가정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를 보상하고자 했다.
내가 보기에
그가 결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그의 결혼은 다름아닌
그의 아버지와 자기는 다르다는 걸
스스로에게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정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한
절차로 보인다.
하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서
그는 늘
그 여자에게
부케를 가져다 바쳐야한다.
그 여자는
여전히 자기 맘에 안드는 부케를 집어던지며 소란을 피우고,
그럼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원하는 걸 가져다 바쳐야만
그가 원하는
그럴싸한 겉포장의 결혼 생활이 이뤄지는 것이다.
남의 눈물이 담긴 부케를 빼앗아 강행한 결혼식처럼 말이다.
그 부케를 안고
남들처럼 버젓이 결혼식을 올렸듯,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결혼식을 올렸듯이 말이다.
그의 가정 생활이란 것도
그 결혼식의 연장인 것이다.
그들이 가진 가정이란 이름의 울타리는
그렇게
누군가의 인내와 희생,
눈물을 딛고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건 한계가 있다.
남보기엔 그럴듯한 남자,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뭐 하나 부러울 게 없이,
어떻든 이 힘든 세상에서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고,
성공하려고 몸부림치며,
그걸 유지하기 위해
온몸이 부서지게 일하는 남자,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삶을 사는 남자.
그런데 대체 왜?
왜 그는 그런 무리를 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 남자는
못난 노처녀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한걸까?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의 관계는
흔히 그렇듯
괜한 신경전과 말싸움으로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격렬한 화확반응을 일으킨다.
특히 여자 쪽에서 그러하다.
나중에
그녀는 말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다고..
그런가?
사랑이란 그런건가?
처음 본 순간에
가슴이 내려앉고,
상대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에
자기도 모르게 충격받고,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격심한 반발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은
소울메이트라는 사실이다.
아주 어린 시절의 소울메이트.
그것이
그들의 불륜에 대한
나름의 변인진 모르겠으나.
내겐 그런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난데없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바람둥이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렇다.
그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그런 만남은
대개 악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저 스쳐지나가다가
부딛혀서
상대를 비틀거리게 했을 때,
우린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그러나
상대는 보지도 않고
사과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거품물고
증오와 비슷한 화확반응을 일으키며
거친 언사로 대들 때
그것이
만일
사랑의 전주라면
그건
악연이다.
왜냐고?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니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좋은 인연이다.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웃으면서
사과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이니까.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끼린
어느 순간까지
치열하게 상처를 준다.
물론
받은만큼 돌려준다.
그리고
결국 헤어진다면,
그건 악연이 아니냔 말이다.
좋은 인연으로 끝난다면 모를까.
대개는
헤어지니까.
사랑하면
헤어지니까.
다행히
거사에선
헤어지진 않는다.
그게
거짓말과 다른 점이다.
작가는
그들의 불륜에
뭐 그렇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지도 않지만,
변명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정적인 화면 안에
그들의 심리를 담아내며
차분하게 극을 이끈다.
그리고
가끔은
나의 시선을 붙잡는
의미 깊은 장면들을 집어 넣는다.
천마디 대사보다
더 가치 있는
장면들이다.
그들이 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은 하지만
각각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에 눈물짓는 사람들과,
불륜이라고 화내는 사람들이
나눠지지만,
거사는 많은 매니아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면
그건 아주 희귀한 일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거사였다.
평생을
자기 자신을 위해선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려고 하는데
그게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거침없기는 커녕
너무나 많은 거침이 있고,
그 거침을 뚫고 나가기엔
너무나 나약하게만 보이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러나
그들에겐
굶주린 영혼에 주어진 대단한 성찬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은 사랑에 주린 사람들이었으니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너무나 가난한 영혼들,
너무나 초라한 마음들..
그 두 영혼이 만난다.
겉치레완 무관하게
그 영혼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사랑한다는 말로 들려요...'
이 대사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대사지만,
솔직히
난 이해를 잘 못했었다.
아마 나도 사랑이 뭔지 모르나보다.
하지만
이젠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거친 언어들..
서로를 상처주는 말들..
서로를 할퀴는 말들.
그러나
실은
그건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던지는
정중하고 상냥한
사과가 아니기 떄문이다.
아
두서 없는 글이 되버렸다.
최근까지 소장하고 있던 동영상들을
최근에 삭제했다.
후회된다.
다시 받아서
가지고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