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작품과 인물

거침없는 사랑

모놀로그 2010. 7. 30. 21:16

때는 2002년,여름

 

나라는 월드컵 열풍으로 가득했다.

 

그 열풍에서 비껴나서 조금도 그 바람을 맞지 않고 있는

두 인물이 서울 한 귀퉁이에 살고 있었으니,

 

바로 나와 우리 엄마이다.

 

난 88올림픽 때도 우리나라가 엄청 높은 순위에 든 것에

좀 창피스러움을 느꼈었다.

그땐 스포츠라면 사족을 못쓰고 밤새워

탁구며, 배트민턴이며 농구며 배구며

하다못해 유도까지

온갖 종목을 싹쓰리하며

열광할 때였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등에 지고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올림픽 순위는

좀 너무 심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축구가 월드컵 4강이라니?

 

해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예를 들자면 유럽이나 남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4강에 들었다면

나도 어쩌면

비록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축구라

경기를 찾아보기까진 않았을지 몰라도

내심 놀라고 기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그라운드가 바로 한국땅이었다는 것이

4강의 신화에 찬물을 끼얹어

동참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난 월드컵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월드컵 열기에 가려진 초라한 드라마가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은

 

거침없는 사랑.

 

왜 초라하냐고?

 

생각해보라~!!

 

조민기와 오연수의 멜로라니..

누가 그걸 보겠는가~!!

 

 

월드컵 아니라

볼 만한 드라마가 없어 다들 몸부림친다해도

한국 사람들이

그들이 나오는 멜로를 보겠냐고~!!

 

가뜩이나 그런데

하물며

월드컵으로 다들 제정신이 아닐 때

김봉숙씨는

교묘하게

그 드라마를 편성해넣었다.

 

월드컵 시즌이라도 드라마는 방영해야하고,

그렇다면

별볼일 없는

즉 브랜드 가치면에서 별볼일 없는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적격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드라마를 그래도 가끔은 틀어놓고 보는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우리 엄마같은 사람이다.

 

축구를 비롯해서

스포츠라면 질색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티비 시청자인 엄마는

하두 볼 게 없다보니

가끔은 채널이 그리로 돌아갔나보다.

 

하지만

엄마도 채널을 고정시키고 지속적으로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봤냐~!

 

물론 아니다.

 

당시 난 드라마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도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 터져나오는

음악 소리에 어리둥절한 기억이 난다.

 

왜냐면,

그 음악은 너무나 드라마틱했으니까.

 

그것이

바로

안젤로의 '너를 기다려'이다.

 

그 음악은 나름 극적인 순간마다

더더욱 극적인 전주를

폭발적인 에너지로

갑자기 졸음을 깨우며

터져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움찔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다.

2003년 봄 쯤 되었을까?

 

심심해서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무심코 어떤 장면이 내 시선을 잡았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말이 있다.

어떤 영화던, 드라마던

십분 안에

내 시선을 붙잡으면

그건 대박이라고.

 

즉 내게 말이다.

 

그 십분이 나와 그 드라마의 인연을 좌우한다.

십분 동안이라도

그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면

난 그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끝까지 보는 드라마는,

 

아니

내가 관심을 갖는 드라마는 그렇게나

어느 순간부터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는 십분이 훨씬 지났음에도

채널을 고정시켰다.

 

난 매우 산만한 사람답게

이리저리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내던지는 종류의 인간인데.

 

그 드라마는 채널을 고정시킨 것이다.

 

난 그게 바로 거침없는 사랑,

즉 전년도 여름에

가끔씩 터져나오는 극적인 전주 음악으로

그리고 드라마틱한 노래로

날 놀래켰던 그 드라마라는 걸

잠시 후에 깨달았지만,

 

그래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무엇이 내 시선을 붙잡았을까?

 

화면은 매우 정적이었다.

그 정적인 화면의 느낌이 매우 색달랐다.

 

 

색감도 고적했고,

그 정적인 느낌 속에는

동적인 에너지가 충만했다.

 

그 동적 에너지는

바로 정적인 화면 안에서 느껴지는

각 등장인물들의 심리였다.

 

조용한 화면 안에서

거의 움직임도 없이,

단지 대사와

느낌만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느껴지는

묘한 드라마..

 

십분이 아니라

이후로

난 단숨에

거사 매니아가 되버린 것이다.

 

그것도 일 년 후에..

 

나중에야

난 거사가 매니아 드라마라는 걸 알았다.

 

내가 보기 시작한 건

3부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후로

난 거사를 해주는 날과 그 시간만으로 기다리며 살았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방송은

새벽에나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어떤 날은 아예 방송을 안하기도 한다.

 

난 견딜 수가 없어서

홈피에 들어가보았다.

 

당시에 벌써

다시보기는 유료화되어 있었지만,

 

김봉숙씨는 그래도

양심적이라 돈은 받지 않았다.

 

그러면 뭐하냐?

 

차라리 돈받고

좋은 화질을 주라~!!

 

이거야

원시시대도 아니고

저화질도 말이 저화질이지

거의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화면으로

그냥 소리만 듣고 대충 짐작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음 회가 궁금해서

일주일을 견디지 못해

 

그 소리만 들리는 화면에

매달려

마지막 회까지 다 보았고,

 

이어서

케이블 방송도 보았고,

 

인터넷을 헤매며

시청자 게시판을 헤매며

 

대본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느낌..

참 그립다.

 

좋은 드라마 한편 보는 건

 

이 재미 없는 세상에서

참 복된 일이다.

 

지금은 그런 재미를 잃은지 너무 오래라..

그렇게 날 강하게 사로잡을 드라마 하나

아쉽다.

 

그것이 일으키는 파장이 그리운 것이다.

 

좋은 드라마는

글을 쓰게 하고,

 

작품을 만들게 한다.

또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한다.

 

그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저런 사색에 잠겨서

 

인생의 오솔길을 서성댄다.

 

그런 순간들은 참..

 

주옥같은 시간이다.

 

단지,

 

멋진 배우에게 열광하고

드라마에 목매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문화 생활이며,

정신적인 양식이 되어 준다.

 

물론

그런 걸 주는 드라마는 많지 않다.

 

시청률이 디따 높고

멋진 배우가 나온다고해서

 

그런 걸 주진 않는다.

 

실제로 그런 걸 준 드라마들은

대개는

대중들에겐 외면받은 드라마가 많다.

 

다모가 그랬고,

마왕이 그랬으며,

 

거사도 그랬던 것이다.

 

물론

다모는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루어준 특례를 입었지만,

그것도

다모폐인이라는 유례없는 집단이 만들어졌기에

그 현상을 언론이 떠들어대는 바람에

다모까지 알려진 것이고,

 

사실 다모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인터넷 대박 작품이다.

 

시청률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다모는

한자리수 시청률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선 초라했고,

내내 십프로 대를 헤매다가

막방에서

조금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다모도 내 생애의 드라마이다.

 

다모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지 않은 건

 

다모 리뷰들은

따로 비공개 포스트에 모아놓았고,

다모 관련 수많은 포샵과 캡쳐, 영상들을

역시 비공개로 소장해놓았다.

 

그건 내 일생의 역작들이다.

 

난 다모폐인이었기에,

굳이 여기에 다시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거사 얘기로 돌아가자.

 

거사는 다모를 방영하기 조금 전까지

나의 최고 드라마였다.

 

캐스팅 면면도

사실 그렇게 초라하지도 않다.

 

조민기씨는

연기파 배우에

매력 있는 유부남의 이미지이다.

당시만해도

젊었고,

 

정말 매력적으로 나오며,

게다가 그 연기는 기막히다.

 

오연수도 그렇게 간단하게 밀어제칠 배우는 아니다.

 

단지

거사에선 좀 짜증나게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촌스럽게 나오는데다가,

목소리가 유난스레 듣기 싫다.

 

맡은 역도

조금 에러였다.

 

여주인공에게 빙의되기 조금 힘든 스탈이었다.

 

그 외에

주목할 만한 건

 

바로

공유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글래머 송선미의 아름다움이 한창 물이 올라서

눈을 즐겁게 해주고,

 

무엇보다

유혜영씨..

 

정말 아름답다.

 

이상하게

사람에겐

유난히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룰 때가 있는데,

 

송선미씨가 그때 막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유혜영씨는

무르익은 아름다움의 끝자락이었나보다.

 

왜냐면

이후론 그렇게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니까.

 

그러고보니

거짓말의

유효정이 생각난다.

 

내가 이쁘다고 생각한 여배우 중 한 사람이

바로 유효정이다.

 

그녀는 우연히

초기 작품부터

죽 봐왔는데

 

볼 때마다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거짓말에선

그야말로

그 아름다움이 극도에 이른다.

 

이후론 내리막이다.

 

대개의 여배우들은

그렇게 찬란하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불꽃이다.

 

하여튼

 

지금 생각하면

당시엔 신인이었지만

지금은 그리 만만치 않은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송일국이 조연으로 나온다는 것이다.ㅋㅋ

 

송일국의 젊은 시절 작품을 난 우연히 전부 보았다.

 

그땐 오히려 호감을 느꼈다.

어떤 단막극에서 봤을 때도 느낌이 좋았지만,

 

그는 인상 좋고

이쁘장하고

연기도 나름 잘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대스타가 될 재목은 아니라고 봤다.

 

이후로 유명해지긴 했으나.

글쎄..

 

자신의 브랜드를 높일만한 그릇일까?

 

그건 의문이다.

오히려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떴지만,

 

그건 그가 가진 매력과 잠재력을 한껏 끌어내어

극대화시킨 느낌이다.

 

세상엔

잠재력을 폭발해서

최고가 되고

그 최고를 넘어서

배우가 되는 몇몇 안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일이니까.

 

어떤 사람은

별로 한 일도 없이

평생 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기도 한다.

 

그건 그저 십대 불가사의일 뿐이다.

 

내겐 그 불가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배용준일 것이다.

 

쓸데없이 얘기가 길어졌다.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아무래도

본격적인 거사 얘기는

투비 컨티뉴드해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