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된 여인
옛날....이라기엔 뭣하고
하여튼 전엔
난 티비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었던 모양이다.
왜냐면
전설의 고향부터
하다못해 사랑과 전쟁까지 본 기억이 나니까.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티비랑 멀어진다.
가뜩이나
티비를 컴터 모니터로 사용하면서부턴
더욱 더 티비를 안보게 된다.
컴터 모드에서 티비 모드로 일일히 바꾸는 것도 귀찮고,
요즘은 영 귀에 들리는 이렇다할 드라마도 없다.
장안을 들썩이는 드라마라도 나오면
보고 싶은데..
꽃남에 실망한 후론
그 장안의 화제 드라마라는 것도
이젠 별로 믿을 만한 게 못된다만서두..
하여튼
십대부터 20대 중반까진 드라마에 목을 맸고,
그 이후엔
주로 스포츠 경기에 목을 맸다.
스포츠라면
야구는 물론 광팬이었고,
농구, 배구는 물론이요,
나중엔 테니스부터 골프까지 챙겨보게 되었다.
테니스는 당시엔
유명한 스포츠였다.
이름 있는 테니스 선수들이 많았고,
하나같이 멋들어졌으며
세계적인 스타들이 많았다.
지금은 스포츠와도 담을 쌓은지 오래라
사실
테니스 스타들이 아직도 이름을 떨치는지
것도 모른다.
지금처럼
문화라는 것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별나라를 헤매고 다닌 적도
참 드문 것 같다.
지금 난
티비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것도 여유가 있고,
마음이 편하고
생활에 어느 정도 숨구멍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같다.
쫓기듯 살고 있는 지금,
내겐
그런 잡다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있다.
야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참..
그러고보면
주말마다
야구 게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농구 시합, 특히 연고전이라면 목을 맸고,
그 연고대의 아성을 무너뜨렸던 중대의 돌연한 출몰과 더불어
허재라는 불세출의 농구 천재가
불과 대학 3학년에 한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시절,
나역시 그에게 열광했었다.
난 광적인 중대 팬이었고,
그 중대가
유명한 팀들을 차례로 부수며
최정상에 오르는 것에 환호했던 것이다.
당시엔 농구 스타들에게 열광하기도 했다.
축구만 빼곤
난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긴
좀 더 거슬러 올라간,
정말 옛날 얘기이다.
사실
난 김희애도 전설의 고향에서 처음 봤다.
당시만해도
전설의 고향은
스타들의 등용문같았다.
마치
학교라는 드라마가
스타의 산실이었듯이,
그보다 훨씬 더 전엔
바로 전설의 고향이 그러했던 것이다.
당시 난 어렸지만,
전설의 고향에서 처음 본
김희애는 참
특이하고 아름다와서
기억에 남는다.
물론
후엔 유명 스타가 되었고,
내가 제일 밥맛없어하는 여자가 되버렸지만,
처음 전설의 고향에서 볼 때만 해도
신인이었는데
정말 청초하고 깨끗하게 생겨서 호감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듯
난 전설의 고향팬이었다.
매주 한번도 빠짐 없이 챙겨보았던 것이다.
물론,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단 하나만 빼고...
그건,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얘기여서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나보다.
사실,
어찌보면
그런 얘기는 흔해빠진 것일수도 있다.
어느 선비가
밤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깊은 산 속에 동그마니
쓰러져갈 듯 말듯
초갓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는데...
그 안엔
아름다운 여인네가
바느질인지, 물레를 돌리는 건지
뭐 그런 걸 하고 있었다.
도무지가 조선 시대 여인네들은
잠시도 손을 쉬지 않고
특히 밤이면
그런 일을 하더만.
그 사내는 이게 웬 떡이냐
한시름 놓으며
그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려는데..
가만~!
그 여인이 너무나 아름답다.
뿐이랴..
낯설지가 않다.
그러고보니
그 집도 어딘지 모르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자 문득
뇌리를 후려갈기는 옛기억..
그렇다.
20년 전..
그는 과거를 보러 한양인지 어딘지 가던 길이었다.
당시만해도
그는
보잘것 없는,
고시생..이 아니라
과거생(?)이었다.
고생고생하며 가난에 찌들어서
공부에 목을 매다가 마침내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던 중에
역시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 집에 하룻밤 묵어갔던 이력이 있다.
근데
대체 왜 조선 시대의 남정네들은
유독
밤이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꼭 여자 혼자 사는 집을 찾아내고,
그 집엔 또 왜 아름다운 여인네가 홀로 살며
바느질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땐 그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 남정네는 당장
그날 밤을
그 여인과 함께 지낸다.
아마도
그 여자는 과부였던 듯 하다.
조선시대 과부처럼 아름다운 사람들도 없다.
기름지게 빚어넘긴 쪽진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자태에
대다수의 남정네들은 그냥 넘어가는데..
그는
홀로 지내던 그 외로운 과부에게
과거에 합격하면 데릴러 오겠노라고,
뭐 데리고 살아주겠노라고 약속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떠난다.
과거에 급제하고,
뭐
그 후엔 출세에 출세를 거듭하여
대갓집 여식과 혼인하고
바빴다.
이젠 중년의 어엿한 벼슬아치가 된 것이다.
근데 왜 난데없이
숲길을 헤매다
하필 그 집을 또 찾아든건지..
그건 기억 안난다.
단지,
그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여전히 기름지게 쪽진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그 여자는
세상에나..
20년이나 지났음에도
어찌 그리
하나도 늙지도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
바느질인지 뭔지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는 비로소
옛날 생각이 떠오르고,
당시 그가 했던 약속까지 곁들어 떠올린다.
아..마자
그때 내가 그런 약속을 했고,
이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지.
새삼 그 여인을 보니
다시 새록새록
샘솟는 사랑..?
하나도 변치 않은
청순가련한 자태의 과부는
여전히 그의 욕심을 돋군다.
그는
뉘우치며
그녀를 품에 안고
울고 짠다.
미안하오..어쩌구.
기다렸어요..서방님..
그리고
다음날..
그는 만족스럽게 이부자리에서 눈을 뜬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곁에 누운 그 아름다운 여자를
이번엔
진짜로 꼭 데려가리라.
결심하며
새삼 바라보는데
켁~!
이게 웬일인가~!
그 여자가 누웠던 자리엔
여인은 간데 없고,
웬 뱀 한 마리가
혀를 날름대고 있지 않은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남정네 뒤를 따르는 뱀...
그렇다.
그 여자는
20년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뱀이 되버린 것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뱀이 되었을꼬?
흑...
난 그 여자가
기약없는 기다림 끝에
끝내 숨을 거두고,
그리고도 그 한이 풀리지 않아
뱀이 되버린 사연에
그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후에 마침 재방을 해주길래,
친구뇬과 함께 보았다.
난 침을 튀기며
그 얘길 이미 떠들어댔던 것이다.
같이 다 보고 난 후에
그뇬이 하는 말..
"미친뇬~!그렇다고 뱀이 될 것까진 없자나'
으이고
웬수같은 인간이
그렇게 나의 감동에 초를 치면서
그 얘긴 끝난다.
그런데
이 밤에
난 왜
그런 쓰잘데기 없는 기억을 떠올리는걸까?
뱀이 된 여인..
친구말마따나
뱀이 될 것까진 없자나..
일까?
너무 억울하면
그렇게 되는걸까..
마음에 한이 쌓이고 쌓이면
그렇게 되는걸까.
그러나
남자 하나 때문에
아닌게 아니라
뱀이 될 것까지야..??
그 시대가 빚어낸 비극이겠지.
여자에게
수절을 강요하고,
순종을 강요하던
그 빌어먹을 조선시대이니까
그런 전설도 생긴 거겠지.
하지만
현대에서도
그런 일은 아마도
수없이 일어나리라.
다른 점은
이제 더이상
뱀이 되진 않는다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