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추억(the end)

모놀로그 2010. 6. 27. 12:14

 

 

 

 

 

 

 

 

 

그 시간들은 돌연히 끝나버렸다.

돌연히..

아니

 

그럴리는 없다.

 

우린 너무 어렸고,

그래서

뭐가 중요한지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을 뿐이고,

 

그는

발에 땅을 디디고 서 있지 못했으며,

나만의 세계에 갇혀서

홀로 서성대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고,

그는 군대에 가버렸다.

 

군대에 간 이후로

그는

종종 전화를 걸거나

휴가를 나오면

날 찾았다.

 

대체

왜 그가 새삼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겐 한 마디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으니까.

 

물론

그가 군대에 간 것이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아니지만.

 

그리고

그가 복학한 건

내가 졸업 준비에 한참 바쁠 때였다.

 

그의 시선은 집요하게 나를 쫒았지만

난 무시해버렸고,

 

이윽고는

졸업했다.

 

그리고

 

난 지긋지긋햇던

대학 시절과 굿바이를 했다.

 

잠깐 반짝였던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곤

 

난 대학 생활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난 친구들도 멀리했고,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았으며,

 

새삼 옛친구들과 다시 연락해서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모조리

연습에만 바쳤다.

 

학교엔 거의 가지 않았다.

 

아침에 잠깐 들렀다가

그대로 나와 버리기가 일쑤였다.

 

난 늘 엄청난 과제곡들에 묻혀서

그것을 마스터하기에 바빴고,

 

그러면서 세월을 흘렀으며,

 

빨리 졸업해서

대학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잠시 대학원 진학도 생각 안해본 건 아니지만,

 

난 음대가 싫었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대에 갔지만

 

난 체질적으로 음대 인간들과는 맞질 않았다.

난 음대 교수들도 싫었다.

 

너무나 정치적인 그 세계가 싫어서

난 대학원을 포기했다.

 

 

 

작년 가을인가?

 난 그의 음악회에 다녀왔다.

 

간간히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소식을 무심하게

흘려듣고 있던 차에

어느날 그의 노래를 듣고

난 그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내게 전화를 했고,

우린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갑자기 세월을 뛰어넘어

우린

손에 손을 잡고 밤새워 걷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난 스스럼없이

정말 대학 동창처럼 그를 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땠는진 모르겠다.

 

그는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같은 이름없는 존재는 아니니까.

 

바로 다음날

그는

나와 내 친구를 자신의 음악회에 초청했다.

 

난 그 음악회에서

대학 시절의 동창 중에서 성공하여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친구들도 볼 수가 있었고,

 

당시의 교수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작곡과 출신들이다.

그 음악회는

젊은 작곡과 교수들이 만든 신작 가곡을 역시 젊은 성악가들이 부르는

음악회였던 것이다.

 

난 오랜 만에 그의 노래를 들었고

그를 보았다.

 

그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사진을 보면

한땐 살이 많이 쪄서

성악가다운 면모가 보였는데

 

어쩐 일인지 다시 본 그는

대학 시절처럼 말라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 음성은

 

그래서

내가 들은 노래에 비해선

역시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왜 살이 도로 빠졌을까..

 

그는 성공했고,

매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며

 

내가 기억하던 그 시절의

바람처럼 허망하고

곧 사라질 듯

부서질듯

 

어디론가 훌쩍 날아갈 듯한

존재가 아니다.

 

이젠

관록이 붙었고,

 

교수이며

성악가이고

 

음악가로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진 얼마 안되는 것 같다.

 

난 그의 오페라 무대를

잠깐 보았다.

 

그가 부르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

은 그야말로

 

나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 어떤 성악가가 부르는 노래보다

그의 '남몰래.'는

 

그야말로 내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며 절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는

성공한 음악가도 아니요,

유렵에서 맹활약하는 오페라 가수인 그도 아니다.

 

하늘을 등에 지고

아무렇게나 입은 옷차림에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가는 담배연기가 피워오르는 가운데

 

우뚝 서서 날 내려다보며

웃던 검은 눈이다.

 

손을 잡고

밤새워 걷던 그이다.

 

카페에 마주 앉아 꿈을 얘기하던 그이다.

 

웃으면서

같이 돌아다니고,

술을 마시고,

 

밤길을 걸으며

다투던 그이다.

 

그런 모습은

두번 다시 볼 수 없다.

 

세월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성공한 음악가인 그는

나완 무관하다.

 

난 그저

그를 위해 기뻐할 뿐,

 

내가 기억하고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날 사랑했던 그는

이 세상에 없다.

 

그는 존재한다.

 

내 추억 속에서..

 

그리고

난 그 추억마저

잊었지만

 

어느날

우연히 들은 그의 노래가

나로 하여금

 

그 시간들도 돌아가게 한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난 잠시

긴 여행을 한 것이다.

 

그런 시간을 내게 주었던

청춘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