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가 선영의 남편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사위로서 선영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마치 한 마리 야생마가 조화롭고 균형잡힌 공간에 뛰어들어간 것 같은 파장을 일으킨다.
그 야생마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는 아무것도 망가뜨리거나 부술 생각이 없다. 아니 그는 오히려 모두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뭔가가 깨지거나 넘어지거나 부서져서 주변은 난장판이 되버린다.
그만큼 그는 중산층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가정 속에 놓여지면 비록 본의는 아니나 위험 인물이 되버린다.
선영과 장인의 간절한 바램대로 권투를 그만두고 거대한 창고 경비 노릇을 하지만
죽자고 일해서 번 돈을 몽땅 얼결에 소매치기 당하고 만다.
첫 월급으로 가족들의 선물을 준비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던 처음으로 자기도 가족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기쁨에 넘쳐 있던 준호는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자각보다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생각도 없을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해결사 노릇을 그만두려는 준호의 결심을 괘씸하게 여기는 귓골목 친구들의 협박성 행동으로 창고 물품을 도둑질 당하는 바람에 장인에게 막대한 손해만 입힌다.
그가 난생 처음 가져보는 가족들.. 그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꿈처럼 아름다운 그녀..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를 남편이라 부르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사위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히고
한때 조폭 친구들과 어울렸던 이력 때문에 그들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험한 세계에 노출시키게 된 준호가 느끼는 고통과 외로움..그리고 자괴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살이 저미도록 사랑하는 그녀와 아이들이 조폭들에게 협박당하며 떠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준호의 괴로움은 아마 이루 말로는 형언할 수 없었으리라.
비록 선영은 그런 준호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여전히 사랑하며 지금까지의 삶과는 손을 끊고 그를 자기와 같은 부류의 합리적이고 안온한 세계의 일원으로써 살아가도록 유도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준호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프로모터의 말대로 상어를 어항에 가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상어를 어항에 가두니 당연히 어항이 깨지고 물이 튀며 주변이 엉망이 될 수 밖에 없다.
우선 준호는 그런 가정적 행복에 길들여질 인간이 못된다. 그런 것에 익숙치가 않다. 그는 혼자 이리저리 굴러 다니며 막 살아온 인간이고 그런 생활 방법이 그에겐 편하다. 게다가 그는 승부의 세계에 길들여진 야생마와 같다.
승부의 세계를 떠나서 그가 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살아보려고 기를 쓰는 준호가 안타깝다. 그는 다시 한번 선영의 소원대로 평범한 남편과 아버지로서 살아보려고 결심한다.
하지만 내부 깊숙히에선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꿈틀대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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