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우식의 표정은 이전의 명랑 고아 우식과 달리 어쩐지 쓸쓸하고 심란하다.
그러나 애써서 나랑은 상관 없는 사람들이고 선주 애인이 돌아왔으니 알아서 하겠거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분위기 바꾸려고 라디오를 켜본다.
방송에서 헤어진다는 대사가 들려오자 자기도 모르게 얼른 채널을 돌려버리는 우식.. 역시 이별이 싫은가보다.
한편 돌아온 줄 알았던 선주의 애인은 그저 선주가 불쌍해서 잠시 연극하러 와준 것일뿐.. 어차피 연극이라면 진심으로 아버질 대해준 우식이 훨 낫다.
뺀질이 애인에게 그제서야 미련이 없어진걸까? 선주는 과감히 거절하고 돌아서지만 집에 돌아와보니 그새 떠나버린 우식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우식의 봉고차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는 선주... 댓돌 옆에는 우식이 남기고 간 털신이 놓여 있다.
소중하게 집어들고 쓰다듬어 본다. 마치 우식의 고마운 마음을 쓰다듬듯이..
그때 방안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고통스런 신음 소리에 놀란 선주는 몸부림치는 아버지를 보자 당황해서 우식에게 S.O.S를 보낸다.
울음 섞인 선주의 다급한 외침에 놀라는 우식...
기다려요~지금 가요~!!
고속도로에서 차를 돌리는 곡예를 감행하면서 우식은 지체없이 되돌아오고 노인을 업고 뛴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계속되는데...
우식을 사윗감으로 알고 의사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가망이 없다는 것과 노인이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내용이다. 딸에게 알리는 것도 원치 않는단다.
우식은 차마 선주에게 사실을 말할 순 없고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도 없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서 건강 진단 한번 받아보라고 암시를 주지만 둔해 빠진 선주는 알아듣는 기색이 없다.

선주 애인이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 우식은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선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런 우식에게 다가오는 선주...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내가 우식이라면.. 애인이 돌아왔음에도 굳이 자기에게 연락을 취한 선주가 이상했을 것 같다.
이럴 떄만 날 찾냐? 반발심도 생길 것도 같다. 하긴...우식이 그럴 사람도 못되지만.. 턱없이 착한 사람 아닌가.
다른 한편으론 어쩌면 고마웠을지도 모르겠다.
자기를 찾아준 것이... 결국은 자기를 인정해준 것이니까..
더더우기 선주는 생각나는 사람이 우식이었다고 말해준다. 우식이 마음이 뿌듯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고맙다는 말은 우식이 한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동안엔 적어도 내 아버지였고 행복했었다고...
그런 우식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선주..
노인을 꼭 서울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찰을 받게 하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나려는 우식에게
애인이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며 우식에게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우식의 마음은 어땠을까? 결국 완전히 딱지 맞은 선주가 딱하기도 했을 것이지만 한편으론 내심 기쁨에 넘치지 않았을까? 단언하던대...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숨기려는 듯 괜히 퉁명스레 선주에게 핀잔을 준다.
"왜 안울어요? 또 울지?"
우식의 마지막 거래였을까? 떠나지 않는 대신 며칠만 아버지를 빌려달라는 것이 거래 내용이다. 늙으신 부모에게 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우식.. 거래의 내용이 달라져 있다.
이제 돈을 벌기 위한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래가 아니다. 외로운 두 모녀를 위해 자기 돈을 쓰려는 게 거래의 내막인 것이다. 미소와 함께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선주...
명실상부하게 그들의 보호자가 된 우식은 이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주와 노인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여행요? 무슨 여행?
가족 여행이요~~
내심으론 서울에 노인을 데려가서 제대로 치료받게 하려는 계획도 세워둔 우식이다.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선주와 노인을 바라보는 우식의 얼굴에 비로소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당당하게 그들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정말 사위가 된 듯이 정식으로 선주와 함께 차례를 지내는 우식..
누구의 대역이 아닌 정우식으로 차례를 지낸다.
눈물흘리는 선주를 슬쩍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의 소식도 모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자기 처지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기라면 절대로 선주 눈에서 눈물나지 않게 해줄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했을까?
눈으로 뒤엎인 겨울 풍경 속으로 먼길 떠나는 세 사람의 미래는 우리가 알 수가 없다.
하지만..먼길이라는 제목을 보면 그들의 여행은 생각보다 기나긴 여정이었을 것 같다. 어쩜.. 평생토록 그들은 함께 먼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과연 우식에게도 이젠 가족이 생길 수 있을까? 남의 대역이 아니라 정말 자기 아버님이 되었을까?
당당하게 그들을 데리고 떠나는 우식의 표정은 이제 평화롭다.
가끔 선주와 주고받는 시선 속에서 무언의 약속이 빛난다. 난 그들이 먼길을 아주 오래오래 함께 갔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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