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에 승희가 태성의 사랑을 순순히 믿었다면 그들은 치유될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 정신병자들인 승희와 태성
그들은 사랑의 힘으로 불신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인격을 가지게 될 수 있었을까?
난 그렇다고 본다.
불신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조건 적인 믿음이기에..
승희가 자기를 지켜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태성을 믿어주었다면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의 사랑을 믿어주었다면
그안의 불신에 가득찬 미친 자아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승희가 태성을 내심 의심했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태성이 무너지듯....
승희에겐 자기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태성은 승희와 다른 자아의 불신의 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자아에게 무릎을 꿇는다.




승희와 미친 자아의 격투 끝에 가스총을 맞고 잠시 세력이 약화된 틈에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태성의 한 마디.. 도망쳐요..라는 말은 그래서 참으로 애처롭다.
그와 미친 자아가 뚜렷하게 분열되는 순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만은 그에게서 지켜주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은 다른 자아와 결별하는 처절한 의식처럼 보인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난 당신이 가짜라도 상관 없었어요.." 라는 말은 그는 이미 자기 내부에 도사린 병적인 불신을 극복하여 사랑을 믿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이미 승희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때 그녀가 태성을 잡아주었다면.. 태성의 포옹을 받아주었다면..
그러나 그녀는 태성을 밀어낸다. 그녀는 그를 혐오하고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갈 곳은 한군데 뿐이다.
꼭 승희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본다.
설사 승희를 보내고 다른 여자를 찾아내어 사랑하게 된다 하더라도 역시 그는 그녀를 태성에게서 빼앗아 내쫓거나 죽여버렸을 테니까...
안녕, 내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태성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선과 미소는 그가 이루지 못한 꿈과 그가 다스릴 수 없었던 불신에 가득 찬 자아와 끝내 사랑을 믿지 못했던 또 하나의 불행한 존재인 그녀에게 보내는 연민에 가득찬 슬프디 슬픈 노래 같았다.
이젠 사랑을 믿어봐.. 안그러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그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독한 싸움과 미친 사랑의 노래에 종지부를 찍게된 피곤한 영혼이 도달할 미지의 세계를 응시한다. 그곳에선 더이상 그렇게 피곤하게 살지 않아도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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