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희는 이태성 못지 않은 이상 성격이다. 폭력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아버지의 접근을 가죽 냄새로 알아낸다. 가죽 혁대로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스토커하는 이태성의 다른 인격도 냄새로 알아낸다.
타는 냄새이다.
이태성의 다른 인격은 주로 초를 켜고 있기에 그에게선 초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녀는 그 냄새를 어느날인가부터 맡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뒤따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이태성이 그녀에게 접근해온다.
이태성에게선 초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이태성이 그 스토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 이 대목이 또한 납득이 잘 안간다.
승희에게 접근한 이태성은 순수청년 이태성인 듯 하다. 그런데 그 다른 인격은 방관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태성의 접근은 그와 합의하에 이뤄진 걸까? 아니면 이태성의 독단적 행동일까?
독단적 행동이라면 그 다른 인격이 가만 있을리가 없고
합의하에 이뤄진 거라면 타는 냄새가 안날 리가 없다.
그런데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이태성이 다른 인격을 따돌리고 혹은 그를 이기고
그녀에 대한 사모의 정을 이기지 못해 접근한 걸로 보인다.
왜냐면 그 다른 인격이 질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녀가 실제로 어떤 여자인지 이태성이 알아내기로 하고 접근한걸로도 보인다.
이태성과 다른 자아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알아내기로 했는데 이태성이 다른 자이를 속이거나 따돌리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른 자아는 화를 내고 질투를 하고
우리끼리 이러면 안되지..안그래?
라고 회유한다.
그는 승희가 태성의 선물을 받으면 화를 낸다. 이태성이 승희에게 본격적으로 접근하던 시기엔 또다른 자아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대목도 이해가 안간다. 그는 태성을 통해 그녀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태성이 그를 따돌리고 나름대로 행동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여튼 극도로 태성마저 경계하던 승희가 스토커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태성에게 접근하고
태성과 승희가 조금씩 가까와지는 계기는 바로 승희가 그에게 자기를 감시하는 어떤 인물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동시에 그를 잡기 위해 이태성을 이용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고백 이후 태성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의 표정도 굳어진다. 그녀가 그것이 자신임을 모를 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것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혹시 그녀가 그 자아의 존재를 눈치채면 그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혹은 그 자아가 자기를 질투하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그는 이태성이 자기를 속이려 드는 걸 눈치챈 것 같다. 즉 이태성이 정말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사실에 분개한 것 같다. 그것이 배신감인지 질투심인지 그걸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승희의 친구가 의심을 품었을 때 또다른 자아는 그녀를 죽이려하는데
그때 이태성의 괴로와하는 모습으로 봐선 이미 그는 또다른 자아를 통제할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가 승희에게도 위해를 가할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그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어쩌면 같은 짓을 승희에게 하게 될지도 모를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또다른 자아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별개의 인격이 아닌 바로 이태성 자신이니까~!!




이태성이 바란 것은 이제 평범한 청년으로써 승희와 다른 연인들처럼 정상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또다른 자아가 거추장스러워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 자아를 통제할 힘을 잃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승희는 문득 의심을 품고 이태성을 이용해서 미치광이를 불러내려고 한다.
반면에 태성은 그녀의 집에 설치해놓은 카메라를 모조리 뜯어내버린다. 카메라를 뜯어내는 자기를 방해하려는 다른 자아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는 결심한 듯 하다. 그녀에게 더이상 집착하지 않고 보내주기로... 다른 자아가 그녀를 해칠 것을 예감한 것이다.





자기가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만큼 남자 또한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고 믿는 승희..
그녀는 매력 있고 아름답고 재미 있는 여자만이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매력도 없고 여자답지도 않다고 믿는다.
하긴 세상에 그녀를 사랑할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녀처럼 정신병자이고 재미 없고 매력 없는 남자인 이태성 말고는..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도 자기처럼 불신에 사로잡힌 병자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이태성에겐 그 말이 얼마나 아프게 들렸을까..
그 자신은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데 그녀는 여전히 불신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선가.. "그거 알아요? 내가 승희씨를 좋아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거?" 라고 중얼거리던 자조적인 그의 표정과 쓸쓸한 어조가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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