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21부- 황태자스런.너무나 황태자스런 신군포스(1)
궁 후반부에 이르면 나에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장면이 너무 많다보니
자꾸만 비난만 하게 되서 사실 뭔가를 쓴다는 게
좀 미안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난 어떻든 궁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하니
사랑의 매 정도로 여겨주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
어떻든 궁 후반부엔 내겐 신군만 보인다.
타당성도 있고 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도, 이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면들도 그 중 하나이다.
생방에서의 이혼 발언을 부추긴 율군과, 그 말을 충실히 따라서
명색이 황태자비라는 사람이
국민들 앞에서 이혼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
그것도 10초전에
국민들 앞에서 사랑을 고백한 남편, 그것도 황태자의 얼굴에
똥칠을 한다.
그런 후에
이번엔 그 율군의 어머니의 꼬임에 넘어가 석고대죄를 시작하는데..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너무나 잘 아는
신군의 만류를 단 한 마디로 거절하고
고집을 부리는 채경...
아..언제부터 우리 황테자전하의
말이 이렇게 안먹히게 되었던가?
전엔 눈빛 하나로 설설 기던 채경이
이제 신군 말이라면
어느 개가 짖느냐는 식이니...
그런 채경을 내버려두고 매정하게 돌아서는 신군..
겉으로야 그렇게 매정하지만,
기실 안절부절 못하던 신군은
결국은 펜싱 연습을 하고 있다.
소파 위를 굴러다니는 것보단 차라리
펜싱 연습을 하는 게 보기엔 낫다.
그가 굳이 동궁전에서 펜싱연습을 할때는
굉장히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화가 나 있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쓸 때거나
뭐 그럴 때라고 보면 된다.
한 마디로 태자 전하께선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것이다.
표정이 아무리 태연자약하다고 해서
율군처럼 단순하게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율군..채경에게 안가본다고 열받아서 화낸다.
권유가 아닌, 분노에 가득찬 명령이요
항변이다. 아니 나무라기까지 한다.
채경이같은 사고뭉치에 말썽쟁이가 니 대신 신군 마누라가 된 걸
운명에게 감사해야하는데 도리어
신군에게 화내면 도리가 아니쥐!!
그런데 말이다.
난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건지?
모든 문제는 율과 그의 생모,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이라면
하느님 말처럼 신봉하면서
신군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채경이
합세하여 저지른 짓이다.
그리고도 그 뒷감당과
온갖 모욕을 옴팡 뒤집어쓰고 체면을 구긴 건
신군이다.
그런 신군에게 찾아와 채경에게 안가본다고
생떼를 쓰는 율군이 난 당췌 이해가 안간단 말이다.
아니
감히 신군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자기가 이혼 발언을 사주한 걸
신군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율군이 신군을 찾아와서
넌 원래 그런 놈이라는 둥,
그래서 내가 채경이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둥
함부로 지껄인다.
아..율군..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그다지도 부족해서
어쩐단 말이냐!
나이가 어려서 그런거라고 봐주자니
옆에 있는 신군과 동갑이다.
그런데 이건 뭐 어른과 아이같다.
지금 신군이 정말 채경이가 저러고 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서
태연하게 펜싱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 걸로 보인단 말인가?
황태자비를 사랑하는 더러운 인연을 만들지 말라는
신군의 말에 담긴 피눈물을
물론 율군이 이해는 할 수 없을 지언정,
모든 상황의 배후 인물인 율군이
피해자인 신군 앞에서,
그것도 그 채경이의 남편 앞에서,
내 사랑을 모독하지 말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상황을 난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다.
그 사랑 때문에 지금 궁이 뒤집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사랑으로는 도저히 사건이 해결이 안되니
이제 신군을 찾아와서 어떻게 해보라고
뗴를 쓰고 있다.
ㅋㅋㅋ
율군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웃지 않으려고 해도 웃음이 나오니
어쩌란 말이냐!
ㅠ
그 모든 것이
자존심 강한 신군에겐 정말이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가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단 말이다.
법도 운운하는 신군에게 율군은
그 법도를 깨뜨리겠노라고 고함친다.
그 법도의 희생자가 바로 자기라고 고함친다.
아...불쌍한 율군..
법도의 희생자가 아니라
엄마의 양다리걸치기의 희생자라는 걸
모르는 게 참 다행이다.
안다면 어떻게 신군 앞에서 큰소리 치겠는가!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이요,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명언이 있나보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신군 입장에서야
율군의 떼쓰는 모습이 얼마나 유아적으로 보이겠는가!
게다가 법도의 희생자라는 말도 참..
자기만 희생자인가?
황족으로 태어난 것을 탓해야지
궁에 속해 있는 모든 인간들이 법도의 희생자이지
어째서 자기 자신만 피해자라는걸까?
이제 그 법도를 깨뜨리겠다고 단언하니,
물론 그 이면의 뜻을
신군도 이해한다.
사실, 신군은 율군을 너무 약올리면 안된다.
그 거만한 황태자의 가면으로 그의 혈압을 올리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하지만 신군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자.
그가 뭔 죄가 있는가!
그저 아는 게 병이지.
아무튼 율군이 벌이는 이 웃지못할 일막에서
내가 건진 거라곤
신군의 이 모습들이다.
신군의 거만하고 냉담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것들로 무장된 야유에 순간 열받은
율군은 칼을 겨누기까지 한다.
하긴 너무 침착하니 죽이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하는데,
신군의 심정도 좀 헤아려주지?
지금 얼마나 개떡같이 드러운 기분일지??
왜 지가 저지른 짓을 신군이 해결 안한다고
열내는데??
게다가 펜싱으론 신군을 당하지 못하는데...
율군, 참아야지!
자, 이 모든 황당스틱한 상황이 내게 주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시는
신군의 포스~!!
일단 그토록 주제넘는데다가 신군이 보기엔
정말 유치하기까지 한 율군을
노려봐주신 후에
물론 자신에게 겨누어진 펜싱검 따윈 쳐다보지도 않는 도도함과
상대를 제압하는 저 차가운 눈빛과
경멸을 담은 가소롭다는 듯한 냉랭한 미소
거기에 곁들어서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까지 적절하게 섞어주시고
감질날 정도로 천천히 섬섬옥수를 들어서
아주 서서히 검을 밀어내는데
이때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되
눈을 깜박거린다던가 하는 스탈 구기는
짓은 절대로 않하시며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만지듯
검을 밀어내는 동작마저도
우아함은 잃지 않으시다가
한순간에 검을 자기 앞에서
떨궈내는 이 거만하고 샤프한 표정!
그러면서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눈빛과 표정~!!!
그 어디에도 지금도 그의 심장이 흘리는 피의 흔적은 없다
일단 상황을 정리한 후에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방을 날려주신다.
약간의 표정 변화와
몸짓의 변화만으로...
입은 열지 않되
온몸으로 말한다.
'넌 내 상대가 안되~!!'
신군 말대로 사건은 자기들이 저질러놓고
신군을 찾아와 수습 안한다며
그를 매도하는 이상한 사태가
난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는 건 포기한다.
대신에 신군은 이해한다.
더 가슴이 찢어지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러운
신군의 마음을...
그러나 그들에겐
차갑고 거만하며
냉정한 겉모습만 보일뿐
피가 흐르는
신군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의 눈에도...
하다못해 그를 사랑한다는
채경에게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신군은 외롭다.
그러나
죽어도 그것을 내보이지 않고
차갑고 이기적인 놈이라는 욕설을 감수하며
절대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정녕 황태자스럽다.
그래서 난 그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