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22부- 내게 너무 아팠던 신군

모놀로그 2011. 6. 21. 19:27

궁을 보면서

난 신군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긴 했지만

그러나 뭐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졌던 것 같다.

 

앞선 리뷰에서도 썼지만

 

'그래서 행복해? 이신이란 이름 대신에
황태자로 사는 게?'

채경이가 어떻게든 자신을 붙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신군에게

저런 말을 할 때,

난 채경은 고사하고 저 말이 이신에게 얼마나 아픈 말인지
작가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채경의 경우에
남편이기에 앞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신군이 그토록 차가운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가엾고, 그래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채경이,
더더우기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알고 있는
채경이가
저런 말을 신군에게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당시에
내 가슴에서도 피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채경은 물론,
막판에 두 사람의 배배꼬인 오해와 애증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풀릴 때의
극적인 효과를 위한 희생 캐릭터가 되고 말았고,
그래서 누구보다 오지라퍼였던 그녀가
갑자기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모해서
다름 아닌 신군에게 가장 아픈 곳에 저렇듯
잔인한 비수를 꽂으며 돌아서는 것이지만,

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드라마이고,
그 이면까지 파헤쳐서 이해해주고 싶진 않다.
그저 눈에 보여지는대로,
이미 만들어진대로
난 궁을 보는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와 그 실수까지 헤아려줄 마음은 없으니까.

신군은 마치
효린에게 그랬듯
채경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 신군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엇을 했던가~!!

뜻밖에도 신군은 항상 의외의 행동으로,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가장 그다운 행동으로
날 놀래키곤 하는데,

바로 이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내겐 그 어떤 모습보다
아픈 신군이다.

또한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궁 특유의

너무나 정적이며 고적하고

아름다운 영상이다.

 

 

 

그는
돌아서서 가버리는 채경을 붙잡지 않는다.
마치 효린을 놔주었듯이,
그는 채경도 보내주려는 모양이다.

그는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집착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붙잡고 싶고, 집착하고 싶은 대상이 생겼지만,
그는 그 방법을 모른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대신에
그는 암실에서
조용히 채경의 사진을 인화하고 있다.

 

 

 

암실엔 어느덧
채경의 사진이 잔뜩 늘어서 있다.
그것은 강릉에서의 사진들이다.

생방송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도
뒤통수를 맞은 후에
화해를 청하는 채경을 뿌리치고
그가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보는 것도
강릉에서의 채경이 모습들이다.

그가 강릉에서의 채경을
잊지 못하고
아플 때마다
그때의 채경을 찾는 것은,

단순히
그때가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와 더불어 보냈던 시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아마 그가 정말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래서 그녀와 백년해로하고 싶다고 고백하고,
또한 그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았던

그가 채경에게 준, 그리고
채경이가 그에게 주었던 가장 큰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채경이 특별히 그 시절을 회상하거나 하진 않는 것으로 봐서
내면이나 외면이 모두 갇혀 있는
신군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나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시절의 행복한 채경이,
해맑고 천진하며 웃음이 가득했던 채경이,
자신에게 잔인하게 굴지도 않고
무엇보다
니가 외롭고 슬픈 아이라서
널 좋아한다고 말해주던
채경이가 그리운 것이 아닐까.

차갑고 이기적이라고 오해받고 살며,
그 자신 또한 자신이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신군이

자기 자신도 미처 모르는 자신의 내면의 아픔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널 이해한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과,
그때의 채경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또한 궁이 아닌 곳에서,
완전히 단둘만의 시간을 보냈던
그곳이
신군에겐 특별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가끔은 내가 사랑했던 그 무엇이 훼손되고,
참모습을 잃었을 때,
그것이 온전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어떤 요인으로든 변질되기 이전의
순수한 모습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나만의 방법으로 집착한다.
마치 신군이 그러하듯.


나도 상대를 붙잡고
그 시절을 돌이키려하기보다
나 혼자 그 시절로 돌아가
혼자 그곳을 서성대며
그 시절의 내음을 맡아보려한다.

그래서
난 이때의 신군이 아프다.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쓰기보단
그냥 혼자 돌아서서
자기 세계에 다시 틀어박힌 채
다시금 혼자 남을 준비를 하는 신군의 모습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