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작품과 인물

지배종-서럽고 쓸쓸한 서로의 눈에 비친 모습.그리고 주지훈

모놀로그 2024. 9. 14. 21:51

ott드라마를 즐기지는 않지만,

대개는 조금씩 맛을 보긴 한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끌렸던 드라마는 몇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지배종'이다.

이 드라마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메마르고 따라서 건조하고,

그래서 내면적으론 매우 뜨겁다.

원래 메마르고 건조하면 불이 잘 붙는 법이다.

드라마가 메마르고 건조해서 뜨거운 이유는,

두 주인공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닮았다. 내면이 뜨겁다.

 분노와 슬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극단으로

내모는 뜨거운 정열과 회한.

그럼에도 그것들 때문에 오히려 매우 차갑게 보이는 서늘한 집념까지.

그래서 지독히도 외롭다.

그 닮은 점들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소통이 잘 된다.

 

더우기 두 사람은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안정감이 있는

거기에 고양이까지 있는 환경에서 잠시나마 머물게 된다.

고양이...

 

남자만 보면 숨는 고양이..

그 '만식씨'는 오로지 여주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죽은 자신의 혈육인가, 여주 자신인가..

늘 숨어 있다가 여주만 나타나면 모습을 드러내고 가까이 다가가는 고양이...

 

그런 집에 머물며 그들은 무심결에

일상적인 대화까지 나누게 된다.

이후론  당연한 일이지만

경호원과 피경호원의 경계선이 허물어진다.

 

쌍둥이 동생을 잃어버리고 가장 친한 벗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봤던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은

바로 그렇게 잃어버린 짝을 서로에게서 발견한다.

자신의 아픔을 서로에게서 본다.

내가 지배종에서

가진 자들의 이기적이고 치사하기까지 한 적나라함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갖가지 지저분한 짓거리가 몸서리처지게

 싫어하면서도

(언젠가부터 난 어디선가에서 분명히 벌어지고 있을 그러한 짓거리를

드라마에서 다시 보는 것이 정말 싫다)

지배종을 몇 번이고 정주행한 이유이다.

 

늘 피곤해보이면서도 강단있고, 늘 단정하면서도 싸늘한 겉모습 아래

뜨거운 집념을 숨기고 있는 여주와,

하드보일드하고 서늘하면서도 어쩐지 의지하고 싶어지는 남주의 앙상블은

어쩐지 서럽다.

 

내겐 지배종은 매우 쓸쓸하고 서러운 드라마이다.

지배종에도 음모와 욕망,공권력을 빌린 사적인 공격이 판을 친다.

하지만 내겐 그런 것에조차 냉소적인 비웃음을 날리는

두 남녀가 웬지 서럽다.

집념에 자신을 바치면서도 의지하는 여자와 어깨를 내어주는 두 남녀가 쓸쓸하다.

 

그 클라이막스가 바로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여주의 목소리에 깨어나는 남주..

 

그녀의 목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리가 없다.

그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녀가 다쳤다...혹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니 그녀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눈을 뜨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의 살아있는 육성이 어디선가 속삭이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설사 이후로도 그들이 경호원과 피경호원의 관계가 유지된다한들

그들 관계의 본질과 정점은 바로 그렇게 한 마음 한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관계가 크게 변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경호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주는 얼마든지 자신이 지키고 싶은

여인을 지킬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두 사람에겐 공공의 적이 생겼다.

그들의 내면의 열정은 이제 공공의 적을 향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남주와 여주는

함께 있는 동안 늘 아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할 것이다.

그것이 더더욱 서럽고 쓸쓸하다.

 

주지훈이 오랜 만에 자신의 매력을 낱낱이 드러낸 작품이다.

피에 젖은 군복차림의 그는 정말 오랜만에 생래의 성적 매력을 뿜어낸다.

참 이상도 하지.

과묵하고 괴팍하지만 따스하고 기대고 싶어지는 남자.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칠 때 피가 뛰노는 느낌을 주는 남자.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음과 피를 데워주는 남자의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손길.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아니 내것이야만 하는 남자

 

그런 존재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주지훈이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