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결핍과 구원,동은오적과 여정,그 서사詩
더글로리 part 2를 눈 빠지게 기다렸던 대다수의 사람처럼,
나도 금요일 5시가 되기만을 고대했다.
복수극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파트 2는,
상대적으로 시적이고 단정한 느낌의 파트 1보단 난잡하다.
왜냐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졌던 5인이,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의 편의주의적 추악함을 최대치로 그 힘이 발현하면서
스스로 무너지고, 무너질 땐 상대방의 멱살을 쥐고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답고, 부유하고
남보기엔 부러울 것이 없지만, 그들의 그런 점이 그들의 맹점이었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고, 그들은 사랑을 모르는 황폐한 영혼들이며,
욕망과 그것을 채우는 것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이렇듯 사는 것이 고달픈 이 시대에,
쓸데없는 경제적 풍요함에 동떨어져서 갈 곳을 잃다 보니
오히려 삭막해진 메마른 땅같은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 수가 없다.
인간은 구조적으로 모든 것이 노력 없이 갖춰지면 공허함을 느끼게끔 만들어졌다.
거침없이 살아온 그들은 그 공허함에 더욱 더 거칠어진다.
그 결핍을 각자 자신의 성향에, 환경에 맞게끔 그들은 채우는데,
그 방법은 부와 아름다운 육체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세상에서, 혹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 없이,
결국은 사랑의 부재에서 살아온 그들을 점점 더 타락시킨다.
재준은 명품과 싸구려 여자들 사이를 오가며 피폐해지고 거칠어져 가고,
그래서 그 결핍감을 소유욕으로 채우려한다.
사랑도, 자식도 그에겐 결핍을 채워주는 소유물이다.
사라는 마약에 골수까지 썩어 들어가고 있으며,
연진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자신의 세계에 취해서
나르시스적 권력욕의 늪에 몸이 반은 잠겨 있었으며,
그들을 동경하며 그들과 똑같이 좀 더 화려하게 사악해지고 싶어하는
남은 두 명은 애처롭게도 친구과 하인 그 사이 어딘가에 하층민 취급을 받고 있다.
열등감과 증오로 그들을 선망하며 미워하는 혜정과 명오는
너무나도 성급하게 단 한 방에 그들과 똑같이 부와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 안달하며 파멸을 재촉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우지 않은 그들에겐 어차피 파멸 밖엔 남은 게 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건드려줘도,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없기에
겉보기에 그럴듯한 모든 것들이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럼 동은은 어떨까?
피폐하고, 황폐하고, 공허하고, 온통 결핍으로 죽어가는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녀에겐 하루하루 살아갈 목표치가 있기에
그걸 에너지 삼아 버티고 있을 뿐이다.
때로 증오는 사랑만큼의 에너지를 뿜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위의 부류들과는 달리 정확하게 자신이 이르게 될 지점을 알고 있다.
동은은,
가학적 무리가 넘치는 것들 때문에 결핍을 느끼고 광폭해진 것과는 정반대이다.
나약하고, 무지한 영혼이 지나치게 가지면, 점점 더 마음이 가난해지듯,
동은은 36년의 생애동안, 그 누구의 사랑도 받아본 적이 없다.
또한 뭔가를 가져본 적도 없다.
만일, 저들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동은은 바로 그러한 지독한 결핍을 스스로 채워갔을 것이다.
그녀는 나약하지 않고, 권태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사람들 중에서 강인함을 지닌 인간은
가장 이상적인 신의 모상이다.
그러나 그녀가 외력에 의해 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녀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을 갈구했다.
신의 사랑, 인간의 사랑, 일고의 관심, 한 줌의 동정, 손톱만큼의 이해라도
그 소녀는 갈구했다.
넘치는 생명력을 찬물에 던지면서 그녀는 통곡했다.
그때, 누군가 달려와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너무 추우니까 따뜻해지면 그때 죽자'라고.
그때, 동은은 처음 체험했다.
자신이 구원하면서, 구원받는 그 귀한 순간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뭔지 몰랐다.
어린애처럼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것마저 축복임을 알지 못했다.
36년의 생애동안,
엄마의 사랑, 친구들과 쓸데없는 시시덕거리며 쌓아가는 그들만의 세계,
그리고 청춘의 향기, 즉 남자에게 설렘을 느끼거나, 호감을 느끼거나, 연애감정이라는 걸 느껴보는 것.
그런 젊음의 특권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10대를
처절하게 혼자서 외력이 가하는 폭력과 싸우며 망가져간 정서와 함께 함몰되어 갔다.
여정은 그런 것들은 그녀에게 주라고 신이 보낸 선물이다.
동은은 항상 원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고 깨닫고 마음의 문을 세상을 향해 닫아버린
그 강인한 영혼은 대신에
함께 추락할 대상을 공략할 작전을 세우는 것에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봇는 것으로 연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와주고 살려주고, 거기에 엄마의, 친구의, 그리고 남자의 사랑을 한꺼번에 줄
신의 선물이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시간이 걸렸을까?
극한에 이르러야만 했을까?
너무 소중한 존재라, 차라리 소중한지도 모른 채,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 존재를 자신의 증오로 훼손시키게 될까봐
회피하려는 동은의 무의식은 그것이 너무나 귀한 선물임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 존재는, 다시 말해서 여정은 거의 완벽한 존재이다. 신이 그러하듯 말이다.
결핍을 모르는 재능과 성실함,
우아함을 유지시켜 줄 타고난 선함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엄청난 부와,
그것을 허망하게 낭비하지 않을 판단력까지.
그는 반듯함의 결정체이다. 그런 그가 동은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가 동은을 알아보고, 그녀를 구원하려면 먼저 그에게 어느 정도의 결핍이 생겨야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등지고 서 있었듯이 그가 단 시간 내에 동은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어야 했다면 너무 가혹한 일일까?
그러나, 그런 가혹한 현실이 그에게도 닥쳐왔다. 그는 방법을 몰라서 몸부림쳤다. 그래서 동은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겸허했다.
그는 엄마처럼 음식을 만들어 그녀에게 밥을 떠먹여 주면서 말한다.
'문동은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나에겐 복수보다 중요하다'라고.
또한 엄마처럼 아늑한 잠자리를 만들어 재워주고,
다치고 오면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녀가 늘 외쳤듯,
누군가 필요해질 때마다 그는 나타나서
'도와주세요'라는 말조차 잊어버린 동은을 진창에서 꺼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녀를 돌봐주는 것이 또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이라니...
이런 또 무슨 새로운 방법의 사랑이란 말인가!
동은과 여정 사이는 남녀 관계가 아니기에, 설렘은 필요 없었다.
그들 둘 다 연애 감정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런 한갓진 감정 놀음을 하기에 그들은 너무나 깊숙이 상처를 입어
빈사상태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받으면서 동은은 위로가 되었을까?
그런 사랑을 퍼부으면서 여정은 미칠듯한 아픔과 증오가 해갈되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동은에겐 여정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아픔의 깊이가 넓이를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던
여정을 동은은 자신의 아픔과 공허함에 취해서 보지 못했다.
동은이 비로소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제대로 보았을 때,
주저 없이 그녀는 이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원하던 것을 이루는 순간에
자신의 삶이 바닥부터 무너질 것이라는 신념이 그릇되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번엔 자신이 사랑을 줄 차례라는 것을. 그리고 사랑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동은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해요'라고 마주 보며 말한다.
사실, 그들은 그렇게 마주 본 적이 없었다. 수없이 마주 보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동은의 시선은 그를 향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은은 깨달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 날 좀 도와주세요, 누군가 나를 좀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할 때,
멀리서 그녀가 받은 만큼의 고통을 한꺼번에 몰아서 받은 구원의 천사가
그녀와 함께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하기 위해 힘겹게 피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그의 상처를 자신이 꿰매줄 차례라는 것을.
하지만, 무엇보다 난 그녀에게 가족이 생겼음을 축하하고 싶다.
그녀에겐 친구, 엄마, 남자친구가 생겼고, 이모가 생겼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어둡고 추운 눈 위에서 뒹굴며 울부짖던
그녀의 처연한 육신과 영혼은 여정의 사랑으로 덮여졌고, 그래서 그녀는 이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