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끝의 시작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 대여!'
나처럼 90년 대를 치열하게, 그리고 사랑과 젊음이 주는
참으로 행복한 고통과 고뇌 속에서 방황하면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이자 행복인지 깨달으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응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저 담담한 나레이션에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을 부여잡은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나도 그랬다.
난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저 대사를 곱씹으며 가슴에 차오르는 그리움과,뭔지 모를 아픔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실감이다.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
20세기의 마지막 해!
인간들이 아직은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도 않고,
그렇게 냉소적이거나
그렇게 속물적이거나
그렇게 매몰차지도 않았던 시절,
아름다운 대한민국 특유의 사계절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시절,
봄이면 라일락이, 여름엔 붉은 장미가, 가을이면 따스한 태양빛속에
칼같은 서늘함 공기가 마음을 설레게하고,
그 마음 위로 은행 잎이 쏟아지고 쌓인다.
그리고 겨울은 그렇게까지 길거나 혹독하지 않았다.
응사는 13년작이다.
내가 드라마에 흥미를 잃은 이후,
적어도 드라마 온라인 팬질은 그만둔 지 오래였던 때였다.
오랜만에
드라마와, '쓰레기'라는 캐릭터에 꽂혔다.
단지 쓰레기만이 아니라,
응사는 모든 등장인물,
'삼천포' '해태' '빙그레'
등등, 칠봉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참으로 정감 가고, 매력적이었다.
특히 해태가 매력적이었고,
빙그레는 내가 무척 공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캐릭으로 마음 아프게 지켜봤으며,
쓰레기는 참으로 유니크한 캐릭터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쓰레기가 1부에서 쉬어터진 우유를 마시고도
그런 던가 말던가 하는,
이른바 천재형 무심함의 끝판왕인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대략 자기가 관심 있는 것 외엔 모든 것에 무관심한 것이
내겐 매력적으로 그 캐릭을 잘 설명했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
벌써 10년 전 드라마가 되었다.
비록 이후 응팔이 대히트를 쳤기에
묻힌 감이 있지만,
내게 응답시리즈의 백미는
응사이다.
아마도
내게 90년도, 20세기 마지막 십 년이었던
그 십 년이 내 인생의 절정기였기 때문이리라.
그런점에서,응사는내가공감할수있는점이많았다.
1994년의 잊을수 없는 그 살인 더위를 에어컨없이 견뎌낼 수 있었던 젊음의 힘,
IMF로 인한 고통과 혼란,좌절
실제로
90년 도는 지금에 비하면
순수하고, 문화적으로 많은 것을 태동하고 있던 격동적이고 발랄하고
아름다운 십 년이었다.
'시리도록 그리운 90년 대여,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라는 마지막 내레이션을 듣고 책상 위에 엎드려 울고,
자다가도 울고,
걸으면서 가슴이 미어졌던,
아름다운 시절을 내게 선물하기도 했다.
완성도가 뛰어난 드라마는 아니었을지라도
여러 의미에서 내겐 잊기 힘든 드라마였던 것이다.
그런데 '응사'라는 드라마가 최종적으로 내게 각인시킨 건,
오로지 이문세의 '끝의 시작'이라는 노래이다.
그 노래가 나오던 그 장면이 내포한 의미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겨울이었다.
눈이 쌓여 그대로 녹다가 다시 얼어붙은 채로 흙범벅이 돼버린
거리를 달리던 택시 안에서,자신을 동생이 아닌,돌봐줘야할 대상이 아닌,
보호해주고,아껴주고,사랑해줘야할 대상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요,반려자이며, 여자이고,사랑하는 연인이길
간절히 원했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에
헤어져야만 했던
쓰레기와 나정의 기나긴 징한 사랑이 끝나고,
동시에 새롭게,남자대 여자,연인대 연인,그리고 진정한 반려자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달라는
나정의 눈물어린 호소에 쓰레기의 '응답'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던 나정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 모두 감쪽같이 속아서,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들의 사랑 속에 커다란 싱크홀같은 맹점이 애초부터 도사리고 있었고,
그것에 오히려 우리가 매횩당했지만,
그것은 남녀간의 사랑의 진정성과 정체성을 가로막아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었던 난데없는 그들의 이별과,
그 이별로 인해 시들어가던 쓰레기의 모습에 그저 가슴아파하면서
나정이를 원망하기만 했던 몰이해애 지금도 웃음을 짓는다.
난 그 장면을 그래서 잊지 못하는것 같다.
핵심 중의 핵심이 담긴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해하는 응사팬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90년 대의 문화에 무지했던 나에게
'응사'는 내가 몰랐던 당시의 노래와 가수들을 알게 해주기도 했다.
마치 거대한 음악영화 한편을 보듯,
응사는 쉬지 않고, 그 시절의 주옥같은 음악들을 배경에 깔아준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노래가
또한 '끝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도 내 애청곡 목록에 있다.
아,그립다.
뭔지 모르게 아름다운 것,증오하고 경멸하고 서로 헐뜯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시대가 참으로 그립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찬란했던 그때가 그립다.
'Old is,but good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