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가끔, 뭔가가 스물스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불안이다.
불안이란 모든 것의 근원이다.
인간이 부족한 존재인 이상,
뭔가가 보호해주고 있다는,
예를 들면 가족이나, 재산이나, 자식이나, 건강이나
뭔가가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것은
실은 자기 기만이거나, 운명의 기만이거나, 하여튼
무언가의 기만이다.
실은 혈혈단신에 망망대해에 혼자 둥둥 떠있는 막연한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은 내가 인지하기 이전부터 늘 내게 달라붙어 다니는
근원적 실존적 불안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이다.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이다.
그것이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그 어떤 엄호도 해줄 것이 없고,
보호막도, 방어막도 없는
맨몸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주님에게 의지하고 의탁하고 내맡기며
하루하루 연명할 뿐인 나에게는
불쑥불쑥 어두운 안개처럼 스물 거리며 내게 다가와서
슬그머니 감싼다.
난 약을 먹는다.
하지만 약을 이미 먹은 후에야
슬그머니 나타나는 이 어둠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먹고 자고 씻고 치우고
이런 일상이 없다면 인간은 미쳐버릴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삶의 기반이 탄탄하다고 믿는 착각이고
나는 안전하다고 믿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하다.
피아노를 치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책을 읽거나 할 때
음식을 만들 때
장을 볼 때
난 잠깐은 잊는다.
내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래선가?
나도 모르게 미치게 불안해질 때마다
모든 게 모래성임을 깨닫고 슬퍼진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겐 실은 미래가 없다.
우리에게 파멸은 온다.
반드시 온다.
단지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안심하고 있는 순간을 노린다.
주님은 그래서 늘 깨어있으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