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지우개
만일 내 기억 속의 지우개가 있었다면,
난 그나마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지금보단 덜 참담했을까...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은 언젠가부터 '치열함'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치열함'이 주는 만족감 속에서 혼자 즐거워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진정성 있게 치열한 적이 없다.
동시에 난 매우 성실하게 그 치열하지 않은 차가운 열정을 나를 위해 즐겼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 차가운 진정성인지도 모르겠다.
전혀 상처받지 않을,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나만의 고고한 성곽안의 거만한 자아
그래서 싫증나면 언제든 그 치열함을 거두고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영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그래서 빠지긴 하되,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여유
그건 나만의 매우 특이한 개성이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바로 그런 냉정함이다.
난 지금도 냉정하지만,
그땐 없었던 지독한 절망감과 이상한 열망에 동시에 시달리며
그것들이 오히려 더욱 절망적인 나의 미래를 두려워하게 만들다가
지치게 한다.
그렇다. 저 시절엔 내게 미래같은 건 없었다.
단지 현재만 있었다.
난 나 자신에겐 관심이 크지 않았다.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떄까지의 힘들었던 일상에서 빠져나와,
난 휴가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주님께 묻는다.
주님, 전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전 죽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병들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중입니까?
주님...단 한 순간이라도 이전처럼 자유로와지고 싶습니다.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이 자유롭게 즐겁던
그 짧은 시간들만이
이상하게 내 인생의 전부인 듯 생생합니다.
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만일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난 그때 많은 기회를 놓쳤으니까요.
가장 만족스러운 나날, 다시 말해서 지루하지 않고, 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듯한격렬한 시간들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어리석은 날들이었습니다.
주님, 전 지금 어디 있는 겁니까?대체 전 어디쯤 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