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찬란하고 쓸쓸한...'

모놀로그 2022. 9. 17. 12:47

내 인생에, 나만의 찬란한 순간들이 있었다.

젊었던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있었다. 그 찬란한 시간은 내 삶을 유지하는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어디선가 내게로 불쑥 왔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끝나 버린다. 절대로 같은 일이 일어나도 그 찬란함은 빠져 있다.

 

그 시간들이 찬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물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찬란하고 쓸쓸한'이라는 멋진 말처럼, 그 찬란함 다음엔 반드시

홀로 남겨져 미치게 쓸쓸해진다.

홀려 남겨졌다기 보단, 차라리 내가 등돌려 쓸쓸함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왜냐면 찬란한 시간은 짧고, 강렬하고, 너무나 행복하고, 나를 빛나게 하지만,

이후에 오는 쓸쓸함은 너무나 어둡고, 춥고, 무엇보다 그 시간이 참 길다.

 

쓸쓸하기 위해 찬란했던 것처럼...

 

그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쓸쓸하게 살게 하려는 듯.

그래서 난 그 쓸쓸함에 못이겨 생에, 생활에, 인간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그들을 외면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머지 기나긴 시간, 난 홀로 서성이며 멍하니 지낸다,

다른 찬란함이 올 때까지..

하지만 이제 점점 더 그 찬란함의 시간은 더디게 올 것이고, 어쩌면 다신 안 올지도...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찬란한 시절이 그대로 생활로 이어진 적은 없다.

물론, 생활로 이어지면 찬란한 시절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은 필연적으로  짧아야한다. 그래야 찬란한 시간으로 남으니까.

 

나이 들어, 내게 가장 찬란했던 시절은 나에게 가장 불행했던 시절과 함께 왔다.

 

당시엔 항상 그렇듯이, 난 그게 찬란한 순간이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때 난 불행했으니까.

 

우울증 진단을 받고, 심한 불안장애에 시달리며,

심한 고통에 당장 죽을 것만 같은, 미칠 것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땐 싸울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찬란한 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싸우면서 더더욱 찬란해졌으니까.

 

그때 난 온 힘을 다해서 성당에, 주님께 매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 내 찬란함의 배경은 성당이었고, 미사 반주였다.

 

게다가 내가 가장 지루해하고, 뭔지 모를 반감마저 가지고 있는 소모임들..

 

그 이면에 흐르는 뭔가 어수룩함, 거짓까지는 아닐지나 레지오를 위한 레지오,

그런 것들이 거슬렸다. 그래서 극력 피했었는데, 마침내 그곳까지 가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 찬란함의 배경은, 막 서품 받아 열정 그득한, 매너리즘에  빠져서 심드렁하거나, 과도하게 권위적이거나, 그야말로 단물이 모두 빠져버리고, 서품 받을 시절의 그 열정을 모두 잊어버린 할아버지 신부들, 혹은 자신의 권위를 휘두르는 것을 열정이라고 믿는 신부들에 매력을 더는 느끼지 못하던 내겐, 그 신부님은 그야말로 오아시스의 우물이었다.

 

그 보좌신부가 서품 받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신부는 순명을 맹세하는 서품식의 엎드린 순간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마침 영상이 그 순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었다.

 

그 신부의 첫 임지가 우리 성당이었던 것은 내겐 찬란함의 시작이었다.

'첫사랑'이라고 스스로 일컬은 첫 임지. 그 신부의 열정과 순수함과 감격과 충만한 성령의 떨림 이전해졌고,

난 그분의 미사에 반주하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내가 찬란한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 시절엔 생각지도 않은, 그런 영광스러운 미사 반주를 참 많이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르간 뚜껑을 열었는데, 뜻밖에 의미 있는 미사였던 적이... 그리고 그런 미사를 통해, 난 찬란해졌다.

 

대개 막 서품 받은 사제에게 축성을 받으면 성령이 내린다는 속설이 있나 보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갓 부임한 새내기 사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가 사순절이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순절... 난 사순절의 미사 반주를 제일 좋아한다. 음악들이 너무 아름답고 애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수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감격적인 미사를 마치고, 차가운 바닥에 주저 없이 무릎을 꿇고 새내기 사제의 축성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영혼도 떨었다.

 

성당에 다니며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가장 강렬하고 찬란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신부님은 코로나 직전에 임기를 마치고 떠났다. 그리고, 반주도 끝났다. 성당의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 찬란한 시간들은 끝나버렸다.

 

난 늘 그렇듯, 찬란함이 끝나면 이후의 쓸쓸함에 굴복한다. 어쩌면, 코로나는 나의 쓸쓸함에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줬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3년 만에 다시 돌아간 반주자의 자리는 이제 찬란하지 않았다. 아니 찬란함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충만함은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것도 없었다. 난 주님과도, 신자들과도, 미사 집전 사제와도 아무런 소통을 할 수 없는 그들과 동떨어진 머나먼 구석 자리에 쑤셔 박힌 반주하는 기계였다.

 

다른 반주자들은 그것조차 순명하며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충만함이 없다면, 난 굳이 반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겐 반주가 봉사가 아니라, 주님과의 소통을 성전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결국,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며,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나의 한계인지도...

 

그리고 그 찬란한 시간들에 대한 향수 인지도.. 난 너무도 많은 시간을 향수 때문에 쓸쓸해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난 그것을 이번에도 극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