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인조나무와 선우 내면의 정서-
달콤한 인생은
내러티브를 화면 속에서 읽어가는 즐거움을 안다면
훨씬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그저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려고 한다면
단조롭고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다.
조직 2인자가 사소한 실수로 인해
처절하게 당한 후 버림을 받고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해서
복수극을 벌인다는
비교적 단순한 플롯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모티브가 되는 희수라는 여자는
그야말로 모티브일 뿐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속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단 한 번도 자기 입으로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살아온 적이 없는
이른바 겉 폼만 잡는
사내들의 어리석은 자존심 싸움의 계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희수'라는
소녀와 여인의 중간 쯤에 있는 애매한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난데 없이 보일 수도 있다.
'달콤한 인생'을 이해하고 감동을 받느냐,혹은 저게 뭐야?
라며 실망하느냐의 차이는그 미묘함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실제로 영화 상영 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팜므파탈적이지도 않은 '희수'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희수가 '팜프파탈'이었다면
그 모든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사실 희수는 그저 계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그녀는 앞서 말한 대로
'소녀와 여인'의 중간 쯤에 있는
이 시대의 젊은 여성이기만 하면 되었다.
복수극이라는 것도
총질을 몇 십분간 엄청나게 퍼붓다가
생뚱맞게 죽어버리는 걸로 보이기 십상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난데없이 나타나서
선우의 죽음을 확정짓는 총잡이가 누군지조차
관객들은 알지 못했다.
어떤 인과 관계에서 그 총잡이가 불쑥 그 자리에 나타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느와르는
그렇게 불쑥, 난데없는 인간이 나타나서 정리해버리는 것으로 허망함을 주장한다.
느와르라는 장르 자체가
짙은 허무와 비장함, 그리고 쓸쓸함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다.
'달콤한 인생'은 화면 안에 가득한 색채들과
배역들의 표정,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주인공의 심리에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면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영화이다.
예컨대,처음 도입 부분에서 선우가 먹고 있는 '초코 케잌이 그러하다.
언뜻 보기엔 그저 고급스런 레스토랑의 테이블 위에 접시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초코케잌 하나와 그것을 절도 있게 먹고 있는단정한 남자.
단순한 이미지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같은 이미지가 무수히 반복됨을 알 수가 있다.
주요 인물들은 대개가 스카이라운지의 흰 바닥 위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저 초코케잌처럼 소모되어 간다.
백사장이 그러하며,강사장도 그렇고
무엇보다 '선우' 또한 그렇게 생을 마친다.
흰 바닥 위에 붉은 피가 번지며
그 위에 쓰러진 인간 군상들의 삶은
하나 같이 저 초코케잌처럼 달콤하다고 믿었던 삶을
씁쓸하게 끝내는 것이다.
또한
그 이미지는깔끔하면서도 럭셔리하고 단정하며 건조한선우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모티브이다.
사실 성인 남자가 디저트로 먹기에 좀 그런 음식이 아닌가?
조직 2인자라면
고급진 양주병을 옆에 놓고 잔을 기울이던가
좀 더 현실적인 식사를 하고 있어야 마땅하다.
이 영화의 답이 '선우'라는 인물의 성격과 내면에
숨겨진 감성에 있다고 난 생각하기에,
그 장면을 무심하게 넘길 수가 없다.
달콤한 초코케잌의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떠서 야무지게 입 안에 밀어넣는 '선우'
그처럼 그는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 없고
조직 2인자답게 않게
상당히 깔끔하여,
너절함이나 야비함엔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인간이다.
스스로 도취된 듯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향유하는 선우.
그러나 라운지 한 구석의 인공 나무처럼
그 모든 것은 가짜이며,생명력이 없다.
그의 삶은 창조적이지 않다.
그저 라운지 한 구석에 뻘쭘하게 서 있는그 나무처럼 지루하고 건조하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겉보기만 그렇 듯하고 무미건조한 인조나무를 바라보다가
생명의 근원인 뜨거운 피를 철철 흘리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선우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것은
리얼리티가 없기 때문이거나,
조폭 2인자의 클리쎄를 무시한 인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험상궂거나 살벌하거나 저속한 느낌이 없다.
단정하고, 절도 있고, 무심하며, 깔끔하다.
그는 겉모습이야 어떻든 조폭이다.
그것도 보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전국구 2인자이다.
그런 그가
여자도 모르고, 애인도 없고, 사랑도 모른다고 한다.
남자들의 세계에선 빈틈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처신하며,
무서울 것 하나 없어 보이며
은근히 살벌한 분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자 앞에선 서투르고 어색하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순진한 청년일 뿐이다.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깍두기는 깍두기의 세상에서만 산다. 민간인 세상으론 넘어오지 않는다'
민간인 세상에 익숙치 않은 선우는
자기가 하기 힘든 임무를 명받고
민간인 여자를 만나자 긴장하고,
그 여자가 풍기는 무심하고 건강한 젊음의 향기에 그만 쫄아버린다.
주먹질 잘하고,
보스에게 충성하고
자기 영역을 완벽하게 관리하며 일처리는 깔끔하다.
그런 선우가 내면적으론 빈 구석이 있고,외롭고 순진한 인간이라는 설정은
조폭 영화에선 이례적이다.
그는 모범생이 공부 열심히 해서
일류대학에 합격하고
그렇게 한 우물만 파서 고시에 합격하듯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처럼 보인다.
리얼리티 문제는 제쳐두고
영화를 지배하는 건'선우'의 그 자존감과,
그 철두철미함,
그 결벽성이 있는 성격과,
그 안에 도사린 외롭고 순진한 소년의 처연함이다.
보스와 선우가 식사하는 장면이 내겐 참 인상적이다.
그들은 마치 상류 사회의 신사들처럼
예의바르고 럭셔리한 분위기로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 예절도, 대화할 때의 분위기도 조폭스럽지 않다.
사회의 엘리트층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수준 높은 주제를 놓고 조근조근 토론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그건 겉모습일 뿐,
대화 내용은 아무리 겉폼을 잡아도 그들은 조폭일 뿐이라는 걸
숨기지 못하지만 말이다.
거기에 느닷없이 끼어든 '문실장'이라는 인물.
그는 선우가 같은 지위의 인물이지만,전형적인 그 바닥 인간이다.
그가 거칠고 막돼먹은,
그 바닥에서 굴러먹은 인간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를 풍기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자,
그 이질감은 두 남자가 그때까지 연출하던 점잖은 분위기가
얼마나 희극적이었나 새삼 깨닫게 만든다.
문실장이 등장해서 일으킨
천박하고 거칠고 3류적인 바람을 두 남자는 경멸하듯,
눈쌀을 찌푸리며 모욕감마저 느끼는 듯 하다.
하지만 긍극적으로 그들은 모두 같은 종족인 것이다.
자기는 해결사가 아니라고 희수에게 주장하고
(나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우아한 스카이 라운지에서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며스스로 도취되어 살고 있지만,
그건 그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시간이 흐를 수록어쩔 수 없이
그가 지닌 폭력성을 점점 드러낸다.
도입 장면에서 나이트클럽을 찾아온 건달들을
처리할 때의 사무적이고 냉정하며 절도 있는 폭력에서 궤도이탈을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이 개입되면서
누구보다 폭력적이며
실은 자기가 부인한
'해결사'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희수 앞에서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우가
보스의 어린 애인에게
즉 자기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자유분방하고 젊음에 넘쳐서 멋대로 살고 있는
어린 여자에게 잠시 마음이 끌릴 수는 있다고 쳐도
그리고 그 어린 여자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살려주는 것까지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한다해도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가
음악에 취하는 부분이다.
즉 그에게 그런 정서적인 면이 내재되어 있다면
애초에 그 바닥에서 출세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처음 쓴 소감문에서 난 그것을 민간인의 피라고
표현했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만에 하나
문실장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면 어땠을까?
문실장도 아마
보스의 애인이며 젊고 아름답고
자기 세계완 거리가 멀어서
도저히 손에 닿을 것 같지 않은
그 여자의 발랄한 삶에 잠시
어리둥절하거나 주눅이 들거나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지 그 여자를 좀더 보기 위해서
굳이 녹음실에 따라 들어갈 수도 있다고 치자.
그도 그 음악에 취해서 눈을 감을까?
내가 가장 의문이 가는 부분이
선우가
유키 구라모도의 음악에 심취해서 스르르 눈을 감는 장면이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 장면이다.
그건 무엇일까?
그 흔들림 이면엔 무엇이 있는걸까?
평화롭고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사랑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동경?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한치의 방심도 허락이 안되는
그의 삶에 대한 반작용?
그의 내면에
그런 정서적인 면이 내재 되어 있었다면
그는 조폭 2인자의 생활을 견디어낼 수 없어야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2인자까지 오를 수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그에게 그런 정서가 숨어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일어난 일들일까?
달콤한 인생의 가장 큰 매력이 선우라는 인물이라면
가장 모순되고 걸맞지 않는 부분도
선우라는 인간의 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