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치료 중에....
오늘로 두 번째 치과치료를 받았다. 30분인지, 한 시간인지, 하여튼 아주 긴 시간인데,
사실 의사로서도 보통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나이 많은 의사는, 손길이 부드럽고 능숙하고 목소리는 나직하고 다정하다.
얼굴에 흰 헝겊 같은 것을 덮고 깊숙히 누워 있다보면,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음을 느끼고,
다음 순간, 힘을 빼고 축 늘어진다. 마치를 해서 별로 아프지도 않고, 난 사실 치과 치료가 꽤 재밌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취로 인해 별 통증을 못느끼니 자연히 별별 소리가 내 입 속에서 웅웅대고, 각종 기구가
내 입 속을 드나들고, 뭘 그렇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내 작은 입안을 찢어지도록 벌리게 하고
그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의사의 손길이 뭘 하는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눈을 떠본다. 흰 천인지 종이인지 알 수 없는 그 뭔가가 내 얼굴에 입만 내놓고 있다.
눈을 뜨면 흰 종이 밖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문득, 내가 살아 있음에도,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흰 천을 씌우고 웅성거리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든다.
재밌기도 하다. 그리고 늘 병원에 가면,그래서 고통스러울 때나 지루할 때면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기억은 못하지만, 내가 태어날 때, 엄마도 산통이 있었겠지만, 나 역시 비좁은 통로를 통해 넓은 세상에 나오는
고통이 심했을거란 생각이 들곤 한다.
죽을 때도 그런 고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통 없이 자다가 죽기를 사람들은 바라지만,
누가 알겠는가! 태어나는 만큼의 고통은 이 세상을 벗어나는 축복을 위해 치루는 댓가일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리고 생명은, 그리고 인생은 꼭 댓가를 치뤄야한다.
어쩌면 정말 안락하게 고요하게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축복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도, 수많은 성인 성녀 순교자들도
인간의 육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식한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아니, 얘기가 왜 이런 쪽으로 흘렀지?
난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동경을 품고 있거나, 혹은 준비를 하거나, 혹은 이제 사는 게 지루하기도 하고
더이상은 내가 흥미를 느낄만한 선물을 내 인생은 내게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즐겁게 살았다고,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은 대로, 온실의 꽃처럼 험한 꼴 별로 안 보고,
그럭저럭 살았다고 믿기도 하고,
내 삶의 주제는, 뭔가에 미치는 것, 뭔가에 나를 바치는 것, 그 뭔가는 내가 미치도록 원하거나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 그런 자극적이고 설레는 뭔가에 사로잡혀 그 안에서 실컷 내 능력을 발휘하다가
싫증나면 다시 평화롭게 지내다가, 또 싫증나면 뭔가에 미치거나...
그런 되풀이였다.
그런데 이젠 그런 게 없다. 아무것에도 미치지 못하고 재미가 없고 잠시 술렁였다가도 손에 넣으면 시들해진다.
그래서 난 자꾸만 뭔가를 사들인다.
택배를 시키고 기다리는 그 기다림과, 그것이 도착했을 때의 아주 짧은 설레임,
그러나 그것도 금새 시들해진다.
문득, 이제 내가 할 일은 이제 더이상 없는 게 아닐까?
난 뭘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온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었던, 그리고 그렇게
제멋대로 사는 것이 허용되었던 내 삶에 난 아무런 댓가도 치루지 않아도 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 난 엄마에게 무작정 받았던 무한대의 사랑을 되갚느라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힘들 때마다 이건 그 시절에 대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라고, 그런 것 치고는 참 양호하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뭔가 무턱 받기만 한 것에 대해 갚아야할 것들이 있진 않을까?
이른바 백세 시대라는 저주받은 노년을 보내는 노인을 보면서
이 또한 신의 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벌을 내가 받을 것이 정말 두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