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황시목에게 필요한 건 우선은 관계의 회복
앞서 내가 장황하게 떠들어댄 이유는, 황시목이 영은수를 여자로서 좋아했다느니, 스스로는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영은수에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느니 하는 듣기 싫은 소리들 때문이다.
아직도 정서적으론 사춘기 소년 언저리에서 멈춰진 시목의 감정적 성장은 남자의 사랑을 한 여인에게
품을 만큼 여유가 없다고 난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자에게 혐오를 느끼지 않을까?
영은수는 물론, 황시목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평소 무뚝뚝하고 냉정하고 무심한 선배라고만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 두터운 장벽을 헐어보려고, 그것도 사랑이라는 그녀에겐 한가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복수하겠다는 일념을 황시목을 통해 이루고 싶어서지만, 끊임없이 그에게 어필한다.
그게 번번히 실패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황시목이 한 말,"왜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라는 말에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내재된 남성성과, 매우 의미심장한 문장이긴 하다.
영은수조차
계속 들이대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는 장벽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몰이해 때문에 그녀가 노골적으로 황시목에게 접근할수록 황시목은 그녀에게 점점 더 냉혹해진다.
역시 어린 소년의 냉혹함이다. 그녀가 그럴수록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는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린 소년의 정서에서 한 남성의 그것으로 정상적인 발달을 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상적으로 한 여인을 사랑하기 위해선 거쳐야 할 관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어보는 것이다.
혐오감이나 경계심이나 거슬림이 없이 자신을 자극하지 않는 편안한 인간 관계,
그것이 남자로는 이창준이었고, 여자로는 한여진이다.
이창준은 그를 실망시킴으로써 그의 냉혹함을 배가 시켰기에, 그는 예사 후배나 부하 검사로는 도를 넘는 언행을
이창준에게 일삼는다. 이를테면 실망했다는 애증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면엔 아니길 바라는 마음,
확인하고 싶은 마음, 설마 아니겠지라는 애절한 바램이 내재되어 있다.
실망한 상대에게 대놓고 냉혹하게 대하는 것에서 그의 성숙하지 못한 사회성이 드러난다.
영은수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들이대는 것에 대해서도 아마 그래서 더욱 싫어했을 것이다.
자, 그럼 영은수를 내심 여자로 보고 잠재적으론 사랑까지 했을 거라는 썰에 반론을 해 보자.
황시목이 그런 감정을 여자에게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남성이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영은수에게 얼마나 많이 했는지...
첫째로, 그는 영은수를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면서 다각도로 그녀를 테스트하고 시험하고 서동재를 낚는
미끼로 쓰기까지 한다.
그때, 영은수는 서동재에게 거의 살해당할 위기까지 몰리는데, 황시목은 그럴 경우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권총까지 소지하고 뒤를 밟아 두 사람을 지켜본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거겠지만,
그녀가 목을 졸려 기절하기까지 그는 나서지 않았다.
아무리 자기 감정을 모르는 비정상적 남자라도, 내심으로 좋아하는 여자을 그런 지경으로 몰아넣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스스로 경계하는 상대나 다른 남자가 손끝 하나라도 대는 것도 참지 못하는 법이다.
하물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까지 생생하게 지켜보고도 나서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돌아와서 영은수가 못할 짓이 없다는 계산을 할 뿐이었다.
심지어 목에 상처를 입은 영은수가 찾아왔을 때도 미안해하긴 커녕....이하 생략
물론 나도 이상할 정도로 비정한 것이 다른 감정의 반증이 아닐까 의심도 해봤지만,
다른 건 몰라도, 좋아하는 여자를 죽음의 위협까지 내몰 정도의 냉혹함이라면 이건 남녀 간의 그 어떤 텐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영은수를 지켜달라는 장관의 말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그또한 사무적이고 팩트만을 추구하는
그의 사고에 의한 매카니즘이 기반이다.
그녀는 절대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 자신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성가신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녀가 노래를 보내도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고, 옷을 선물해도 별 감흥이 없다.
다른 인간관계에 매우 드라이하지만 그런대로 겉치레는 하려는 것에 비해
밀어내거나, 냉혹함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어쩌면 그러한 어린 소년의 냉혹함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조금이라도 여지를 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치대올까봐 미리 경계하는 건가 싶은 의심,
등등,
아닌게 아니라 영은수에 대해선 유난스러울 정도로 밀어내긴 하는데
그 이유가 참으로 입체적이라는 점에서 둘의 관계가 매력적이긴 하다.
영은수는 끝내 황시목의 정체성을 모른 채 죽어버렸다.
한여진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여진은 그 사실을 들춰내려 하지 않았고,
영은수의 죽음은 어느 정도는 황시목을 내면적으로 성숙케하는데 일조하긴 했을 것이지만,
그건 공분이지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적어도 제작진은 그렇게 보이게끔 연출하려 했다.
한 마디로
황시목은 누군가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여성으로 보기엔 사춘기 소년의 정서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따스하고 편안하고 엄마처럼, 친구처럼, 동료처럼
'우리'라는 카테고리에 서슴없이 넣어준 한여진의 우정과 관심이 더 필요한 단계이다.
사실 그의 얼음장벽을 조금 해체시킨 건, 다름 아닌 그녀가 무심하게 흘린 한 마디
"우리"였다.
그녀가 입에 담은 우리는 비슷한 처지의, 그러니까 정치적이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싶은
공무원으로써의 자긍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무심코 흘린 말이다.
그러나 그 '우리'라는 단어에 황시목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라고 그는 중얼거리듯 반문하고, 이어서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짓는다.
이상하게 난 그 장면이 무척 인상깊다. 아마 내가 황시목의 내면과 무의식 속의 결핍이 뭔지
깨닫고 그 캐릭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는 공동체의식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검찰 조직에 있지만, 그는 조직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와 가까운 동료도 없을 뿐더러,자신이 휘하에 있던 영검이나 사무장 이하 직원에게도 유대감도 친근함도 느끼지 못한다.
정중하겐 대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부모에게도 가져보지 못했을 시목에게
한여진의 '우리'는 경이로왔고, 뭔가 신기하면서 싫지 않은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왜일까.
황시목은 외로운 소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하여 스스로를 이탈시켜
자신의 세계에 갇혀버린 채, 외부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외부도 자신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못하게끔
홀로 외딴섬이 되어 살아온 그에게 낯선 여자가, 그야말로 공적인 의미로 "우리"라고 묶어준다.
공적인 의미의 '우리'가 그는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가 가진 건 검사라는 직장과 검사로서의 직무뿐이었기 때문이다.
한여진은 그렇게 투명하고 단순한 사람으로, 무심하게 급소를 찌르는 단 한 마디로
일단은 황시목의 맹점을 찔러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리게 만든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웃게 만든 유일한 여자였고,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있고, 그를 떠밀거나
끌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고, 번번히 때를 놓쳐서 종일 굶다시피한 그에게 끼니를 챙겨주는 여자였다.
그는 다른 의미의 황시목의 잃어버린 '어머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쪽으로 가라, 따라와라, 저기로 가자, 야단칠 땐 등짝을 치기도 하고 필요하면 끌고 다니다가
야단도 치고, 질문도 던지고 남자에게 들이대는 질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간적 호기심을 보이며
그가 웃을 때 칭찬도 해준다.
그는 자기가 웃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데, 여진을 통해 알게 되고
이후론 스스로 모르게 몇 번인가 더 웃게 된다.
그들은 좋은 친구이고, 호흡이 맞는 파트너이면서 성적 긴장감이 없이도 편하게 마주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자와 남자였다.
황시목은 여진을 통해 그동안의 비정상적인 모든 과정에서 받은 트라우마들을 조금씩 치유받고 있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의 기회가 오는데, 그건 다름 아닌, 팀을 짜서 사건을 해결하는 '특임 검사'의 팀장이 되는
것이 되겠다. 그리고 한여진과의 관계를 통해서 물고가 트인 그의 성장기는 활짝 문이 열리는 것이다.
팀을 구성하고서도, 그는 그 팀에 그 어떤 애착이나 팀원에 대한 밀착도를 물론 보이지 않는다.
그가 구성한 팀원도 다소는 엉뚱하다.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 애매할 정도로,
친숙함도 유능함도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에게 약간의 불신을 샀던 사람들, 서동재에게 촌지를 받는 듯 했던 사무장, 자기 뒷조사를 하고 다녔다는 감사과 과장,
살인 현장엔 항상 모습을 보이거나, 특히 자살한 첫 피의자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어린 시절의 친구-라고는 하나 그가 가해를 입혔던, 자신에게 관심이 아주 많은 동창생, 등등 가까이 두고 관찰하기 편하며 그 속셈을 알고 싶은 사람들 위주로
팀을 꾸렸다. 가까이 두고 자세히 관찰하며, 의심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
그런데 영은수는 제외되었다. 그녀에 대해선 의심을 풀기도 했지만, 팀플레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복수, 아버지의 명예 회복, 진실을 추구하지만, 그 진실은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 억울하게 당했으니 그것을 밝히겠다는 개인적 정의이다.
그렇게 팀을 꾸리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솔로 플레이를 더는 못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서 회의를 주도해야하고, 심지어 회식까지 해야 한다.
그 회식 장소가 다름아닌, 한여진의 옥탑방이라는 게 중요해보인다.
갇혀진 공간이 아니라, 남루하지만 탁 트인 넓고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부는 공간, 거기서 떠들어대는 자신의 팀원들.
그가 그런 분위기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인생에서 그런 순간은 없었기 때문이며, 한여진의 공간이라는 것도 중요했다. 그는 편안하고 자신에게 그 어떤 편견도 없는 한여진이 자신의 반경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기 때문이다.
한여진은 황시목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많다.
영은수와의 관계에도 호기심을 보이고, 둘 사이를 세속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으례적인 뒷담화에도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팀이 해체되고, 좌천된 황시목의 책상엔 그날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그의 '우리'라는 개념이 보다 그 반경을 넓힌 것이다.
그는 그 사진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가 미소를 짓지 않았다면 적어도 속으로는 그 반대였을테니까.
그렇게 그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고, 미소 정도는 한여진이 그려준 그림만큼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2부에서 그러한 체험들로 인해 조금은 성숙해진 황시목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조금은 애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