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영화라는 장르의 몸부림-
달콤한 인생은
내가 일찌기 한국 영화를 보고
전기를 먹은 최초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왜 그러는데?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각별하게
이러이러해서
라고 전문 용어를 나열해가며
그 영화의 좋은 점을
풀어낼 재주는 없고
별로 그러고싶지도 않다.
감동을 주는 작품이란 괜히
나오는게 아니라
실은
그만한 노력
즉 많은 인력들이 그 영화를 위해
갖가지 영화적 노력을 했기에 나오는 것이고
그건
조명이나 카메라워크 미장센 미술 음악..무엇보다 연기
그리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각각 제자리에 배치한 연출 등
많은 분야에서
각각 최고의 기량을 남모르게 발휘한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내가 일일히 분석하고 참견하긴 싫다.
그럼 영화적 감동이 깨지고
영화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분석하고 관찰하는 대상은 아니며
긍극적으로 영화는 종합 에술이기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완성도가 곧 감동을 주는 필수 요건은 아니라고 보는 바이다.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물론 감동을 받기 힘들지만
감동이 완성도에 좌우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 작품에서 내가 추구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의 어떤 단면을 발견했을 때
내 감성과 코드가 맞는 상대편의 감성이
내게 감지되었을 때
비로소 그 영화에 끌리게 된다.
그건 마치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모든 이가 사랑할 순 없듯이
오로지 나만의 사람이듯이
영화도 그렇다고 본다.
물론
영화는 대중에게 공개되므로
코드가 맞는 사람이 오로지 나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영화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영화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이겠지.
달콤한 인생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것 같진 않지만
그 영화를 보고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영화의 핵심인 선우라는 인물과 그의 삶에
공명하고 동정하고 동화되었다는 뜻이겠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코드가 전혀 다른 사람인 셈이다.
난 실로 오랜 만에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관심을 버린지 오래이고
이제 한국 영화던
외국 영화던
난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사 내 취향에 맞는 아주 좋은 영화를 보고
잠시 그 영화에 심취한다해도
그로 인해 영화가 다시 좋아지진 않는다.
한때 영화광이었고
영화라면 사족을 못쓰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봐야했고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마치
한번 사랑했다가 싫증난 사람은
다시 사랑하기 힘들듯이
어느 순간부터 난 영화를 싫어하고
싫증이 나버렸다.
그 이유는...
글쎄?
그것은 마치
베토벤에서
음악의 최고 수준이 완성되었고
후세의 음악가는 그를 뛰어 넘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류가 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이후는 퇴보의 길을 걷지만
음악사적으론 그것이
진화와 진보였을 것이다.
진화와 진보는 필연적으로
추상과 관념이라는 이름으로
타락해갈 수 밖에 없다.
그건 마치
다모를 분석하기를 즐기던 사람들이
점점 관념적으로 흘러서
나중엔 대체 무슨 소릴 하는건지 알 수 없어진 것과
비슷하다.
초창기의 다모 소감문은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비교적 작품의 본질과 맞닿아 있었지만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자
필연적으로 관념의 늪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모의 본질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음악도 같은 길을 걸었고
영화도 마찬가지임을 어느 순간 인지하면서부터
난 음악이나 영화에 관심을 잃었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리얼리즘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 인간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답시고
지극히 선정적으로 내밀한 부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런데
난 인생이나 인간의 리얼한 모습을
굳이 화면을 통해서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맘이 없다.
영화는 한때 아름다운 꿈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장보다 더 현장감 있는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이 되버렸고
그 현실감은
내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부분에
갑자기 데려가서
황당하게 만들곤 한다.
아니면
조잡스런 웃음을 유발하는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
이른바 조폭 코미디를 양산해서
상업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른바 작가주의 작품이란
선정적이고 잔인하고 외면하고 싶은
이상 성격자들의 삶을
미세하게 내 앞에 제시하거나
상업적 영화들은
미친 것처럼 폭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모든 것에 싫증이 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수함을 상실해가며
아이템 싸움이 된 듯한
영화가
가련해보인다고 할까?
이른바 작가주의 작품들을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강박 증세를 보이면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21세기에 이르러 피폐하고
망가진 인간성을 앞다투어
창조적 작업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앞에 제시하려고 기를 쓰는데
베토벤 음악이 음악의 순수성과 높은 에술성의 최고봉을
이루고
더이상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그 이후로 추상적으로 변질되면서
진화한 척 하듯이
난 오히려
영화가 점점 관념화되면서
작가주의 혹은
상업주의의 이름 아래
처절하게 부서져 나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남이 미처 보지 못한 영역을
자기가 개발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고집스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인다.
난 그것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단지 피곤함을 느낄 뿐이다.
그런 내가
달콤한 인생에 사로잡힌 이유는
아마도
오랜 만에
그런 강박증에 사로잡히지 않은
비교적 단순하면서
색채만으로도
하고 싶은 얘길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나로선 선우란 인물이
궁금증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