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2010. 5. 13. 22:45

한때 이름 드높았던 영화를 뒤늦게
그것도 케이블을 통해서
띠엄띠엄 보는
나같은 사람이야말로

흔히 말하듯 한국영화의 발전에 암적인 존재겠지?

한 여자의 고통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보면서
난 내가 겪은 고통들을 돌아보게 된다.

어떤 인간이 고통스러울 때는
그것의 이유가 뭐든
강약을 따질 수가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내 고통은
다른 누구의 고통과도 견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밀양을 보면서
난 오래 전
아주 힘들었던 무렵,

견디다 못해
한밤중에 거리로 뛰쳐나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주말이었다.
텅빈 거리,
닫히고 불꺼진 무정한 삼정들,
띠엄띠엄 내 곁을 스쳐가는
자동차들..

난 한동안 거리에 서 있다가
몸서리를 치면서
내 둥지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둥지엔
내가 뿜어댄 한숨과 고뇌의 기운들이 배여 있어서
설사
내가 밖의 공기로 날 정화시키고 돌아왔다해도
금새 감염되었을 것이다.


난 신을 믿는다.
그러나
신이 고통을 치유해준다는 건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신은
꼭 기독교의 신은 아니다.

창조주라고 이름부를수도 있고,
굳이 내가 카톨릭이니
주님이라고,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뭐라고 부르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고통스러울 때
그 뭐라 이름지을 수 없는 절대자는
내 고통의 방관자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밀양을 보는 것이 몹시 부대꼈다.

누군가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그것을 껴안고 딩굴면서
차츰 미쳐가고
그 어떤 그럴싸한 말도,
그 누구의 그럴싸한 위로도,

하늘도 땅도
내 고통과 무관할 때,

그 처절한 고독에 대한 반감,
그것은 신과 인간에 대한 반감으로 확산되고,

내 자신조차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가고
햇살은 두루두루 비치고
인간들은 제각기 자기 삶 속에서
제 나름의 고통을 안고
또한 어디선가 딩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