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미친 듯 사랑했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난 그 아이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녀석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명백한 일이었음에도, 어찌하여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염두에도 두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신부전증 말기로 수술을 하면 20프로의 확률이 살 가능성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리하여 수술을 하기 직전, 가슴에 안고 미안하다고,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울부짖었음에도, 막상 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름 가까운 시간을 난 한 여름의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8월 말 경,
난 모든 것을 제쳐두고 녀석을 간호하였다.
주사기로 물을 먹이고, 죽을 만들어서 세끼를 먹였다.
내가 녀석이 죽지 않을거라고 믿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걸 녀석이 꼬박꼬박 받아먹으면서 토하지도 않고 버텨주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녀석은 당시 혼수상태였다.녀석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고
수술의 마취에서 완전하게 깨어나지 못한 채
혹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그저 입안에 들어오는 물과 죽을 거부할 방법이 없어서
받아먹고 있었을 뿐이다.
녀석은 죽기 직전까지 내가 입에 넣어준 고기 한 점을 받아먹었다.
난 막상 녀석이 떠났을 때, 생각보다 슬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엄마 특유의 지나칠 정도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주일 뒤에, 서둘러 5개월 짜리 요키를 데려왔고,
그 녀석이 이제 열 살이 되었다.
녀석은 앞서 간 녀석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었다.
무뚝뚝하고, 매사에 무반응이며, 둔하고 동시에 무지하게 자기를 건드리는 것을
싫어했으며, 타고나길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녀석과는 달리
어린 나이였기에 그랬던지, 오자마자 온갖 생쇼를 벌이며
극성을 떨었고, 발랄했고 활동적이며, 사람에게 치대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전의 녀석의 무심하고 담담하며 조용한 성격에 익숙했던 나는
어린 새 강아지가 부담스럽고 짜증이 났다.
그런 성격은 이후로도 계속되어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하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요키의 매력에
엄마는 흠뻑 빠졌으며,어느덧 앞서 간 녀석을 가슴에 묻고
새로운 강아지에게 깊은 정을 쏟았다.
엄마는 성격이 매우 특이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상할 정도로 사랑이 넘치고,정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
나도 예전에 비하면 멘탈이 엄청 약해졌지만
그건 오랜 투병 때문이고, 실제론 엄청 냉정하기에
이성을 잃다시피하는 슬픔엔 공감하기 어렵다.
난 물론 아팠지만, 한편으론 냉철했다. 십 년 전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난 멘탈이 그때만큼 강하지 못하다.
한 부분이 붕괴되다시피 한 상태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그나마 타고난 냉철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때보단 십 년이나 나이가 들었다.
2020년이 되었을 때, 난 무척이나 새해가 싫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5월 말에 이르렀지만
난 19년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아쉬워하고 절망하기까지 하였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곧바로 코로나라는 역병이 글로벌로 초토화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내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성당에 더는 갈 수가 없었고
그나마 내 생활과 인간 관계의 중심이자, 내 활동의 중요한 무대였던
성당과 미사, 레지오, 그리고 주 4회 가까운 반주는 사라졌고,
아마도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내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글로벌 적으로 밑바닥까지 흔들리고 있는 불안한 시대이다.
거기에
이제 녀석이 옛 녀석처럼 죽음을 그림자를 몰고 온다.
워낙 활발하고 극성맞던 녀석이기에
병석에 누운 녀석은 그 충격이 훨씬 크다.
뿐이랴, 엄마는...역시 그때보다 다시 십 년이나 늙었다.
몸도 아프고 마음은 부서지기 쉬운 잿가루처럼 위태롭다.
나 역시 그러하다.
이렇게 내 일상과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난 무섭고 불안하다.
엄마나 강아지..인간들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유한한 생명체이다.
불완전하고 나약하다.
내겐 하느님이 있다.
하느님은 절대자이자,변치 않으며 절대 선이고 절대 강자이다.
난 하느님에게 매달리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집착해야 한다.
내 힘으로 이 무서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면
엄마나 강아지 따위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난 하느님을 믿고 찾고 의지하지만
엄마나 강아지처럼 애착을 느끼거나 사랑하거나 의지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난 벌을 받는다.
나약한 인간인 내가 역시나 나약하고 부질 없는 존재에게 기대려고 했던 어리석음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약한 뿌리가 이제 마구 흔들린다.
십년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그게 안 될까
왜 나이가 들면 멘탈이 약해지는 걸까
강해지고 싶다.
모든 것에 초연하고 냉철했던
그 시절의 나를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