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나의 공황장애(2)

모놀로그 2019. 5. 24. 11:43

내가 공황 발작을 처음 느꼈을 때

역시 믿을 만한 내과의를 주치의 삼고 있었다.


그 의사는 내가 봐온 개업의와는 좀 달랐다.

후에야 알았지만

전문의 출신이라고 했다.


물론 전문의는 많다.

그러나

그 시절만 해도 전문의는 그리 흔치 않았다.


한 마디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쳐서

임상 경험이 많고

따라서 웬만한 병은 그 증상이 중증인지 별 거 아닌지를

진단할 능력이 있는 의사였다.


내가 첫 공황발작이 찾아왔을 때

그 의사를 찾아 간 것은 다행이었다.


그 의사는 자기가 중증 환자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난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걱정할 만한 큰 병은 아니라고 날 안심시켜주었던 것이다.



요즈음

내가 찾아보는 환우들의 글을 읽으면

다들 첫 발작 후엔

종합병원을 찾아다니며

온갖 검사를 하고 또 하며

응급실도 자주 찾는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검사를 받거나

응급실에 달려가거나

한 적이 없다.


그만큼 그 의사를 신뢰했다.


사실,

내 실수가 있다면

초기 무렵에

그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정신과에 가보라고 한 말을 흘려 들은 것이다.


지금이야 정신의학과가 많이 보편화되었음에도

다들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2000년 도 중반에 어떠했겠는가?


또한 나에겐 정신과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미지의 두려운 세계라

남들처럼 화를 내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난 이른바

건강염려증이나, 내게 찾아온 이상 증세에 대한 미칠 듯한 두려움이나

다시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염려로 인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는


일반 경로를 걷지 않았다.


내가 겪은 첫 증상은

부정맥이었는데,

당시엔

처음 겪어보는 요상스러운 증상에 오히려 겁에 질려서

걸핏하면 달려가서 징징대는 응석받이였던 내가

엄마에게 비밀로 했을 정도였다.


온 몸에서 힘이 빠지며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심장이 미친 듯 뛰면서

입이 바싹 마르고


와들와들 떨리면서

피가 온 몸에서 빠져나가는

그 묘한 느낌을

당시의 난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처음 구체적인 증상이 부정맥으로 오긴 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몇 년 간에 걸쳐

조금씩 징조가 있었던 것 같다.


우선은 두드러기이다.


난 열이 많은 체질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다리의 핏줄이 부풀어 오르면서

미칠듯한 가려움과

끔직할 정도의 두드러기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난 2년이나 두드러기를 가라앉히는 약을 미련스레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이다.


그 약을 먹으면

정확히 이틀동안 괜찮다가

다시 밤이 되면 발작하고


약을 먹고

이틀만에 발작하기를


자그만치 2년이나 반복하다니


그런 미련곰퉁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난 사실 내 건강에 무관심했고

생에 대한 집착도 강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무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천 공황 발작이 일어난 2006년의 어느 겨울,


난 그것이 진정되자

그냥저냥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겐 여러 가지 이상한 증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첫째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기운이 없었다.

전신에 기운이라곤 한 개도 없는데


난 기운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괴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또한 왼팔이 특히 힘이 없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다른 환우들과 나의 차이점이라면

난 병이 심해지면서

거의 매일같이

하루 종일 오로지 잠만 잤다는 것이다.


밥도 먹지 않았고

(먹으면 토할 것 같았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고(그 심한 변비는 몇 달이고 지속되었다)

외출은 물론이고 아무도 만나지 못했으며, 가족들과도 한 마디로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자고 또 잤다.


암흑같은 어둠 속에서

난 이상스럽게도 별 두려움 없이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냥 헛발질만 하고 있었다.


나의 한의사가 있었다면

제대로 진단을 내려주었을까?


내과 주치의가 자기 소견으로는

종합병원에서 돈을 닐려가며

검사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을만큼

난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했기에


엄마는

그 전에 했던 대로

날 한방병원으로 끌고 다녔는데


그 천재 한의사만한 사람은 물론 없었고.


단지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린 어떤 한의원에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온몸의 균형이 깨졌다'

고 하면서도


그 병원에서 지어준 한약을 먹으면

더더욱 고통스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참 아깝게도

난 이런 저런 한의원을 전전하며

많은 돈을 썼다.


물론

전혀 효과가 없었다.


부정맥이 한 번인가 더 찾아 오고

위장 장애가 생기고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내가 미련하게도 반신욕을 했다는 사실이다.


반식욕 사흘 만에

난 기절했다.


공황장애는 대체로 몸에 열이 많은 사람, 한의학식으로 말하자면 화기가 넘치는 사람이

잘 걸리는 병인데


반식욕을 했으니

그것도 며칠이고 반복했으니

기절할 수 밖에.


내 공황장애가 악화된 것은 아마

그 반신욕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난 그때도 그걸 몰랐다.


참 무식하면 용감하고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요즘 자주 가는 카페에 올라오는 온갖 글을 읽으면

난 어찌 그리 태평하게 그 끔찍한 증상들을 방치했는지

희한한 일이다.


아마..

내가 게을러서 가능했을 것이다.


난 종합병원을 싫어했고

아프건 싫지만

병원 찾아다니며 검사받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서

난 그저 그걸 감수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그 병이 날 죽이거나 날 해치는 것이 아니라


혹시


이른바

'신병'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어지러움과 기운없음과 매스꺼움,

그리고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숨쉬기 힘든 증상,


침대 위에 멍하니 누워서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보냈던 시간들...


그러면서

정 힘들면


그 내과의를 찾아갔고

그는 그때마다 내 손을 잡고

난 건강하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나도 내가 건강하다고 믿었다.


왜냐면

내 증상은 점점 심해지지도 않았고

매일 그 타령이었으며


무엇보다


실컷 자고 일어나면

아주 멀쩡해진 상태가 5분 정도는 찾아들어

평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증상이 발현되었지만


내가 읽은 다른 환우들의 증상은 훨씬 끔찍한 경우가 많아서

내가 혹시 시절이 너무 많이 지나

많은 걸 잊었나 싶을 정도이다.


또한 대다수 환우들의 두려움과 발작에 대한 트라우마를 읽으며

난 왜 그런 게 없었을까 의아했다.


난 내가 죽을 병에 걸렸을까봐 무서워하지 않았다.

내게 그 병은 굉장히 난감하고 짜증나고 처지곤란하고

거주창스럽고

미치고 팔짝뛰게 고통스럽긴 했지만,


일상생활도 인간관계도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난 초연했다.


젊어서 그랬을까?


그런데

내가 읽은 환우들의 두려움에 찬 글은 오히려 젊음 때문이다.


젊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을 두려워한다.


난 그런 것이 없었다.


죽음을 생각한 적도,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의심한 적도 없다.


역시 무식해서 그런건가?

아니면 혹시 삶에 대한 애착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였나?


지금 생각하면 다른 환우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거나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그게 아닌가 싶다.


그거 말고는


당시의 나를 내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