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나의 공황장애(1)

모놀로그 2019. 5. 24. 11:05

나는 지금도 내게 왜 공황장애라는 요상스런 병이 어느날 불현듯 찾아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읽어보면 대다수의 환우들은 어떤 계기가 있고, 그 계기로 인해 트라우마가 되어

이후로 이른바 공황발작이라는 것을 겪는다.


하지만 난 전혀 그럴 만한 계기가 없었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순 없다.

사실, 내가 처음 공황 증세를 느꼈던 2005년 에서 2006년 사이 즈음의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태평성세를 누리고 있었다.


난 1990년 대 십 년 간을  학원을 운영했고,

마지막 즈음엔 거의 신경쇠약 증세를 일으킬 만큼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만일 그 무렵에 공황이 찾아 왔다면

차라리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생각하면


그 즈음의 난 매우 젊었음에도 돌아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주말이면 병원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저 그런 것으로 인해 심적인 고통을 겪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난 체질적으로 공황에 걸리기 참 쉬운 스타일이었다.


첫째로


다혈질이다.

성격이 급하고 성을 잘 낸다.

몸에 열이 많아서

더위에 약하고 인삼이나 녹용,같은 건 쥐약이었다.

난 한약을 그때 많이 먹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믿을 만한 나만의 한의사가 있었다.


그 분은 내 몸을 마치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그 어떤 기기묘묘한 증세도 가뿐하게 고쳐주었다.


그러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난 믿을 만한 의사를 잃었다.


살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실력 있고 믿을 만한 주치의를 만나는 것이다.


굉장히 큰 병인가보다 하고 종합병원을 전전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다 죽어가곤 했던 것이 내 체질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개는 스트레스였고,

그 스트레스로 인한

이른바

'기의 흐름이 원활치 않음으로써'

생긴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 증상은


고열과 기운 없음, 식욕없음,거의 중병 환자처럼 병상에 누워서

사경을 헤매는(?)듯한 자지러짐


어린 나이에 그런 증상을 보인다면

누구나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온갖 검사를 하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난 십 년 간격으로

그러니까 20대 부터 저런 증상을 겪었고


그때마다 그건 그저 스트레스와 내 몸의 특이한 체질로 인한

증상이라고


그 한의사는 진단했고


그분이 지어준 약을 일 주일만 먹으면

난 벌떡 일어나서 훨훨 날아다니곤 했다.


따라서


내가 공황이 찾아올 즈음에(물론 그땐 몰랐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 건 대단한 비극이었다.


그분은 90년 대에 이미

치매기를 보이는 집안 어른을 고쳐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내가 본 마지막 한의사였다.


그 무렵,


난 학원을 정리하고 십 년 만에 집에 들어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해'라고 해도 무방했다.


힘겨운 입시 시절과, 대학 시절,그리고 이어지는 끔찍한 학원 생활


쫓기듯 20년을 살고 난 후에

처음 맞은 휴식기...


난 컴퓨터에 맛을 들였고

거의 혼자 힘으로 컴퓨터를 하나씩 터득하며


그 시절에 이미 내 힘으로 포맷이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는데


사실, 그건 그때가 윈도우XP가 막 배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윈도우XP는 포맷과 설치가 매우 쉬웠고


이후로 난 포토샵과 모든 영상 프로그램을 내 맘대로 다룰 정도로

컴퓨터에 미쳐 지냈다.


그리고 뭔가에 미치는 것은 나의 행복의 조건이었다.


또한 온라인의 세계는 지금처럼 추잡하기 전이라

뜻맞는 친구들, 물론 얼굴도 나이도 직업도 잘 모르지만

상당한 수준의 글솜씨를 가진 지성적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오프에선 만나기 힘든 친구이다.


왜냐면

사람은 어느 시점까진 온에서는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점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시절 다 보내고

하루 하루 즐겁게, 오히려 더 정신 없이 보내고 있던 시절에

난 느닷없는 공황발작을 겪게 되는데


난 물론,

그게 공황발작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