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작품과 인물
드라마 이산을 보던 중, 왜 하필 의빈 성씨인가
모놀로그
2015. 9. 11. 14:24
드라마 이산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르,
즉 장편 사극이다.
장편 사극은 아무리 참신하게 만들어도 구태의연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것이 내가 그 장르를 싫어하는 이유이다.
게다가
또한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영조네 집구석 이야기가 안나올래야 안나올 수 없는
이산 정조의 일대기이다.
화안옹주니,정후겸이니,김귀주니,홍인한이니
이런 인간들에 홍국영이 가세하는 데다가
이가 박박 갈리는
노론들의 발버둥에
더불어 사도세자 스토리는
정말 이젠 피하고 싶은 소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드라마 '이산'을 피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위에 서술하였듯
이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역사를 드라마적으로 각색하고
별 짓을 다한다해도,
또한 정조가 그 어떤 큰 꿈을 지녔고,
꼴통 정신이 투철한 조선의 양반이라는 족속들과 그에 빌붙은 각종 이권 집단을
극복하여 개혁이라는 걸 하고 싶었거나, 혹은 어떤 부분에서 그것을 해내었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결국 역사적으로 정조는 패배자인것을!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그 푸르른 꿈들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도
드라마 이산을 보는 내내 난 몹시 불편했다.
가뜩이나 가슴 아픈 이산 정조의 이야기가 그러한데,
의빈 성씨라니!!!
왜 하필 의빈 성씨인가!!
그녀의 짧고도 비극적인 정조와의 세월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내겐 참 아프다고 생각되던 바이다.
정조는,
희한한 일이지만
후궁들이 그리 많진 않았음에도
그나마 모두 간택하여 들인 명문대가의 여식들이다.
역대 왕 중에
후궁을 간택하여 들인 왕은 드물다.
어쩌다 한 둘이라면 몰라도
몇 안되는 후궁 전체가 그런 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간택하여 들인 후궁이라면,
그것은 중전이 그러하듯
왕실의 어른들이 선택한 여인들이지, 정조가 스스로 선택하거나 원한 여인은 아니다.
난 내심, 그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드라마 이산을 보다 보니 얼핏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드라마내에서 말하듯,
정조 이산의 특이한 출신과, 할아버지 영조의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이
대물림하여
아마도 혜경궁의 뜻일 듯한 명문가 출신 후궁에게서
자식을 낳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맞는 듯 하다.
물론 중전이 자식을 낳았다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그리 쉬운가!
중전 효의왕후와의 사이에 대해선,
세손 시절부터 혜경궁이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
어쩐 일인지
세손시절부터 양궁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듯 하다.
그 이유로 혜경궁은 화안옹주를 들고 있다.
세손이 세손빈을 총애하여 아들을 나을까 두려워하여
온갖 말로 이간질하고 고자질하여
'양궁 사이를 빙탄같이 만들었다'
고 한탄하고 있다.
아무튼 효의왕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산은
세손 시절에 이미 자신의 정궁과는 바이바이한 듯 하다.
이후, 원빈을 들이지만
이는 세도 홍국영의 야심의 일환이었고,
다행인지
나이가 어렸고, 그나마 곧바로 죽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이 또한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한 여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화빈 윤씨가 있지만
역시 간택 후궁이다.
드라마에선 옹주를 낳은 걸로 나오지만 실은 자식없이 죽었다.
후에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는 의빈 성씨가 죽은 이후에 간택되었다.
이렇게 보면
정조의 여인들은
참으로 특이하게도
대부분 정치적 이유인지 뭔지 간택 후궁이다.
그 중에 유일하게
정조가 스스로 선택하여 승은을 내리고
자식도 낳은 여인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의빈 성씨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드라마 이산에서
이산과의 멜로의 상대로 성송연을 택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나 여인에 대해서도 담담한 정조가
선택하여 승은을 내리고
자식도 셋이나 가졌으며
그녀가 낳은 아들을 곧바로 세자로 삼았다면
정조가 사랑한 유일한 여인이
의빈 성씨라는 건
안봐도 비디오이다.
하지만
그녀는 불과 몇 년 만에 정조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은 물론
딸고 잃었고,
결국엔 뱃속에 아이를 잉태한 채로
자신도 죽어버리니
필연적으로 드라마 이산에서 그들의 멜로는
비극으로 끝날 것이 뻔하다.
실제로 성씨가 정조 이산과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후궁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드라마 내에서도 둘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
그리 순조로울 리가 없다.
그 힘든 여정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과 이별이라니,
게다가 그녀가 낳은 아들조차 결국은 죽게 될 것이 뻔하니
마치 이산 정조의 삶을 보는 듯 하다.
비극적으로만 여겨지는 이산 정조의 삶과 꿈만으로도
내겐 보기가 심히 괴로운데
더불어
상대역이 참으로 안타깝고 애처로운 의빈 성씨라니
드라마 이산을 보는 내내
찜찜하고 불편한 이유였다.
물론, 내가 드라마 이산을 보자하고 결심했을 땐
아무 생각 없었다.
장편 사극 특유의 사람 지치게 만들고
짜증나게 하는 상황이 편하게 시청하는 것을 방해하였지만,
일단 왕이 된 이후에
자신이 꿈꾸었던 바를 하나씩 실현해가는 이산을 보는 재미는 나름 쏠쏠하였다.
그러나
드라마 이산에서 내가 마지막에 보게 될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나로선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 여간 힘겹지 않다.
그냥 가상의 여인 하나 만들어서
남몰래 마지막까지 알콩달콩 사랑하는 숨겨둔 여인으로 했으면
나았을지 모르겠다.
정조의 삶에서
가장 애통한 일이었을
처음 본 자식의 죽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의빈의 죽음까지...
슬퍼하는 이산 정조를 지켜볼 일이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