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터웨이
게터웨이(get away)를 처음 본 것은 십 여 년 전인 것 같다.
만일 그때 누군가 이 영화에 대해서 내게 말하라고 했다면,
'이상해..뭔가 이상해..하지만 굉장히 감각적이고 인상적이야..
난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 영화는 독특해..
그런데 난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 영화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난 모르겠어'
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선 샘 패킨파 감독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능력도 없었거니와,
특히나 이 작품은 흔히 말하듯 샘 패킨파 감독 영화 중에서도
이례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에 미쳐서 닥치는대로 봐제끼던 그때,
난 감독보단 배우 위주로 영화를 봤다.
그리고 샘 패킨파 감독이라는 사람은 알지도 못했다.
그러니 나로선 처음으로 대하는 샘 패킨파 감독의 이 영화가
낯선 느낌을 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폭력을 통해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걸작 갱스터 영화는
무수하게 많다.
그 유명한 대부는 둘째치고,
마틴 스콜시스 감독의 영화들도 빠짐 없이 봤지만
그 어떤 영화도
게터웨이 같은 낯설고 강렬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대부는 뜻밖에도 지루했고,
마틴 스콜시스는 질척거린다.
다시 말해서,
그때 비록 어렸지만 샘 패킨파는 내 취향이었던 셈이다.
이해는 못했지만 난 뭔가를 본 것이다.
그 뭔가가 뭔지 이번에 다시 보면서 알아냈다.
게터웨이는 갱스터 영화적인 면이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정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리 총격전이 난무해도
이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갱스터의 그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은행털이전문 부부의 서로에 대한 감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매우 격정적일 듯한 감정 역시 겉으론 정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니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면 게터웨이의 정적인 면은, 대부가 지닌 그것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거의 갱스터 아트필름적 요소가 강한 이유도
아마 은근히 초점을 부부의 심리에 맞추고 있는 탓이 아닌가 싶다.
위 장면은 내가 게터웨이에서 받은 황량하면서도 매우 감각적인 영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오로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갱스터 영화임에도 내가 이 장면만 기억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내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갱스터 영화가 담고 있는 폭력적 요소들,
은행을 털고, 그 돈을 둘러싼 배신과 음모, 추격전, 그리고 긍극적으론 총격전 등등이
분명히 이 영화에도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것이 아니라 두 부부의 관계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다시 본 게터웨이는
역시나 갱스터적 요소와 부부의 아주 미묘한 심리전이
병행하고 있었다.
게터웨이에서의 부부의 미묘한 관계를 잡는 감독의 시선은
객관적이고
내러티브는 인색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거나,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영상에선 여자의 남자에 대한 헌신과,
남자의 여자에 대한 집착이 배어나온다.
그것이 애초에 내가 이 영화를 낯설게 여긴 부분이었다.
그리고 위 사진이 나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이유이기도 했다.
대체로, 저런 상황이라면
즉,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던 부부가 4년간이나 떨어져 지냈을 경우,
드디어 단 둘만의 공간,
네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남았다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감정의 발산이 육체적 반응으로 나타나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지가 않았다.
왜냐면,
더이상 옥살이를 견디기 힘들어진 남자는
자신을 가석방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에게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를 보내어 거래를 시켰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옥살이를 견디기 힘든 이유는,
자신의 반쪽, 혹은 자신의 전부일지도 모를 아내 때문이었다.
위 장면들은 몽타쥬처럼 삽입된다.
물론 남자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감옥에서의 그의 현실은 좀더 디테일하고 길게,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은 아주 짧지만
숨가쁘게 교차되는데,
그것은 그의 외부 상황과,
오로지 한 사람으로 가득 찬 내면이
점점 더 그를 구석으로 몰고 있다는 긴박함을 표현한다.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아내를 이용해야하는 참담한 심정을 표현하는 방법치곤
참으로 삭막하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기도 하다.
한편으론 감독의 잔인할 정도의 냉철하고 차가운 시선이
금속성으로 뿜어댄다.
샘 패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에서도 비슷한 영상을 볼 수 있지만,
그의 오프닝은 참으로 멋지다.
무채색이 황량한 느낌에서
금속성의 하드보일드함에선 늘 한 가닥 외로움과 단절감이 배어 나온다.
그의 영화가 단순한 갱스터라기보다 차라리 아트필름처럼 여겨지는 이유이다.
샘 패킨파를 말하면서 오우삼을 말하는 걸 들으면 실소가 나온다.
오우삼의 영화를 난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대개 감정 과잉이다.
하지만 샘 패킨파는 폭력이건, 인간 심리이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그 절제된 영상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찾아내고 읽어내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총격전마저 빠져죽을 만큼의 감정의 홍수를 이루는 오우삼과
냉혹하고 살벌하며 담담한 샘 패킨파가 어찌 비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돈가방을 들고 자신들을 추격하는,
갱과 경찰을 동시에 피해야하는 부부의 도피 행각이
거의 전부이다.
고급 세단을 타고 도망치기도 하고,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지기도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은
바로 그 쓰레기 하치장에서의 장면이다.
그들은 완전히 밑바닥까지 추락하는데,
대개 완벽한 추락은 도약하기 위한 전단계이다.
더이상 갈 곳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 부부의 갈등도 거기서 종지부를 찍는다.
의심과 질투와 미움과 집착이 복잡하게 얼켜서
공연히 투정부리고
짜증을 내던 남자의 미묘한 심리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딩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더이상의 관계의 추락을 멈출 수밖에 없다.
도피행각과 더불어 팽팽하던 부부의 심리전은
쓰레기속에서 끝을 맺는 것이다.
정말 멋진 영상들이다.
게터웨이의 공간은, 대개가 매우 비좁다.
단절된 감옥, 지방의 작은 은행, 아파트의 작은 방, 황폐한 느낌의 남루한 호텔 등등이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인간들의 움직임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
총격전마저 정적인 느낌을 줄 정도이다.
그러나 위 장면처럼 사람 그림자조차 없는 황량한 공간은 드넓다.
비록 쓰레기더미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비로소 홀연하게 보인다.
그들은 어딘지 모를 그곳,
언제 어디서나 단둘뿐이고 싶지만
그게 불가능했던 부부가 막연하게 추구하는 유토피아를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탁 트인 공간이 갑자기 숨을 내쉬게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쉽지 만은 않겠다는 느낌도 강하다.
이러한 영상 언어를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의 엔딩 부분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으로 내던져지는 듯한
엄청난 반전으로 도약한다.
피냄새 물씬 풍기는 범죄자 부부와,
부부의 탈출에 도움을 주는 초라하지만 명랑한 노인과의 만남이 그러하다.
세 사람이 탄 작은 트럭은 여기저기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던
작은 도시를 벗어나 갑자기 탁 트인 도로를 달린다.
그 트럭은 달리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로 낡았지만,
그러나 합법적이다.
당당하게 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가 지금까지 탔던 그 어떤 근사한 리무진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다.
범죄자들의 낙원인 맥시코로 떠나는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번쩍거리는 고급 리무진이 아니라 먼지 투성이 잡동사니가 잔뜩 실린
그러나 합법적인 트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제시해주는
노인의 명랑한 수다와 설교는
도피 행각의 끝에서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삶으로 통하는
좁은 문의 문지기 같다.
그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그들의 비젼이다.
'정착하여 집을 짓고 사는 삶'
이 그것이다.
떠돌이 갱부부에겐 꿈같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긍극적으로 아내에게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남자의 아내는,
헌신적이다.
그녀의 내조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의 갱 노릇을 충실하게 돕는 것이다.
그의 조수이자 앞잡이이다.
또한 그의 가석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팔아넘기기까지 한다.
남자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심술을 부려대던 그에겐
'자신은 평생 아내에게 신세를 지며 살았다'
는 노인의 말이 가슴을 쳤으리라.
그래서
난 이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왜 이 영화를 이해못했는가에 대한
답도 저 몇 마디에 담겨 있다.
갱스터의 탈을 쓴
은은한 부부애가
황폐한 듯한 관계 속에 숨겨져 있다.
세상에 단 둘 뿐인
아담과 이브는 그렇게 자신들의 에덴의 동산을 향해
떠난다.
갱스터 영화답지 않은 해피 엔딩은,
결국
이 영화는 결코 갱스터 영화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샘 패킨파다운 황폐하고 거친 듯한 영상 속에 숨겨진
갱 부부의 은은한 러브스토리였던 것이다.
스티브 매퀸은, 사실 내가 싫어했던 헐리우드 스타 중 하나이다.
더스틴 호프만이나 폴뉴먼을 좋아했던 나는
스티브 매퀸같은 남자의 매력을 이해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웬만한 그의 영화는 거의 봤지만
한번도 끌린 적이 없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본 그는 참으로 매력적인 배우이다.
한때 그가 헐리우드를 평정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굉장히 개성적인 남성미가 넘친다.
영화만 찍으면 여자들과 사랑에 빠진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다.
대다수의 여자들은 그의 꾸밈없는 원초적 남성성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는 도시적인 느낌이 강한 점에선 폴뉴먼이나 더스틴 호프만과 비슷하지만,
그들처럼 지성적인 느낌은 없다.
그들보다 훨씬 갇혀진 이미지이지만
대신에 그들보다 훨씬 남성적이다.
시니컬한 듯, 천진한 듯, 건조한 듯한 표정엔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는
소년같은 불안한 정서가 그득하다.
알리 맥그로우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만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녀를 택하겠다고 평소 생각하던 배우이다.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느낌은 없지만
개성있고 근사하다.
아주 심플한 매력이 있다.
이 영화에선 특히나 아름답게 보이는데,
아마 사랑에 빠져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어딘지 모르게 드라마틱한 감정에 충만하여 더더욱 캐릭터가 빛난다.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며 남편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보기 드문 캐릭터였는데
알리 맥그로우의 원래 모습엔 어울리지 않지만
이 영화에선 굉장히 매력있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렴풋하게
이 영화를 찍으면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는 얘길 들은 것 같은데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배합도 드물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 매력적인 한쌍이었을 것 같다.
얼마나 떠들썩했으면 별로 관심없던 내가 알 정도일까..ㅋ
스티브 매퀸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건
바로 그 알리 맥그로와 결혼했다는 것과,
너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는 것 정도이다.
게터웨이..
오랜 동안 다시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이번 기회에 멋진 재회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