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안 리' (6)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란 리 시리즈를 쓰다가
갑자기 중단한 게 언제인지...
마무리를 지으려고 생각은 하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포기할까도 생각해보다가
마침내
겨우겨우 포스팅하면서
쓴웃음을...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같다. 옛날 영화가 이런 완성도 높은 영상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바람과함께사라지다가 명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레트 버틀러역의 클라크 게이블이 다소 멋지게 보였던 부분이 이때인 것 같다.
배우와 별개로,
레트라는 인물에 대한 작가인 마가렛 미첼의 접근은 특이하다.
단 한번도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에 대해서 서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레트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고,
바람과함께...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에게 적용되긴한다.
우린 애슐리의 진실도, 레트의 진실도
단지 묘사되는 것만으론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스칼렛에 대해선 집요하리만치 그녀의 내면을 파고들며
짓궃게 그녀의 허허실실을 까발기지만,
그녀를 에워싼 대다수의 인물에 대해선
스칼렛이 그들에게 느끼는 만큼의 심리적 거리감을
그대로 독자에게 느끼게 하는 교묘한 방법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레트에 관해선 객관적으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그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보자면 그를 이해한다는 건 쉽지가 않다.
레트라는 인물의 행적과 그의 심리 사이에
너무나 큰 도랑이 있기 때문이다.
스칼렛에 대한 레트의 진심을 마지막 순간까지 스칼렛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확실하게 이런 것이다,라고 수저에 밥을 떠서 먹여주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칼렛이 자신의 한계 안에서 느끼는 것 이상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스칼렛이라는 여자는 매우 단순하고 거의 무지하며,
인간에 대한 성찰이나 이해가 극도로 빈약하므로
레트라는 인물은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그의 내면은
너무나 불투명하다.
스칼렛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트 버틀러는
남부에서도 제일가는 가문 출신이지만,
집안에서 추방됨과 동시에 남부 상류 사교계에서도 쫓겨났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좋은 집안의 망나니인 셈이다.
그는 남부인들 사이에선 건달로 통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신사일수도 있다.
그는 매우 영리하고 지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인간이던지 그 본질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남부의 이단자가 되었지만,
또한 그 때문에 그는 스칼렛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맹점이 되어
스칼렛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도박꾼이나 투기꾼들, 전쟁을 이용해서 돈벌이나 꿈꾸는
모리배들이다.
그가 주로 머무는 곳은 술집이고,
그가 상대하는 여자들은 유명한 창부이다.
이렇게보면, 아닌게 아니라
고상한 남부 숙녀들이 상대할 만한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생활 태도가 또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는 대체 왜 저런 인간들과 어울리며
저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건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절대로 건달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가 남부 귀족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상류 사교계에서 추방된 이유도
그가 결코 겉치레에 연연하는 남부 특유의 귀족 문화를 추종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하지만 그것이
레트가 밑바닥 인생들과 어울리며 건달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설명해주진 못한다고 난 생각한다.
그는 실은 그 누구보다 귀족적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선 남부의 그런 독특한 문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계급 문화란 어느 사회에서나 있기 마련이지만,
남부의 귀족 문화는 영국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대단히 패쇄적이면서 편협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던지 극도로 발달하면 남은 건 쇠락이다.
대개의 쇠락은 전성기의 여운이다.
남북 전쟁은 패쇄적이고 편협하여 오만의 극치를 이룬
남부 문화의 전성기 이후에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쇠락의 다른 얼굴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건,
남부인들에겐 남부만이 지상 낙원이고, 그 외엔 모두 야만인이라는
자만이 있었고,
그 자만은 결코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지 않으며
선민 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레트 버틀러는 물론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어리석은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고,
뿐이랴, 전쟁을 이용해서 거대한 부를 쌓는다.
정치인들의 교묘한 선동이었는지, 아니면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남부인들은, 남북 전쟁이 자신들의 문화와 정신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것이라고 믿었고,
그 숭고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부를 부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출정하지 않는 남부인은 이단자 중의 이단자이고
죽어 마땅한 자였다.
레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므로,
'남부가 가진 건 오만과 목화뿐이로다!'
라고 외치며 남부의 몰락을 예견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역시 남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퇴각하는 군사들을 지켜보던 중 갑자기 그는 군입대를 결정하는 것이다.
갑작스런 군입대로 표현되는 돌발적인 남부인다운 행동은
이후로도 몇번인가 더 행해진다.
레트는 비록 남부 문화의 답답한 규격을 참지 못해서
일탈했지만
그러나 실은 누구보다 남부인다운 남부인이고
온갖 허영과 겉치레를 벗어던진 순수한 남부인이라는 사실을
인색하게나마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의 내가 가장 감동을 먹으며 보았던 장면이
다름 아닌,
스칼렛의 아틀란타 탈출과, 이어지는
레트의 군입대 선언이다.
물론,
극적인 대전환의 배경으로
이만큼 멋진 영상이 주어지는 탓에
나의 감동은 더더욱 배가된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름다운 화면이다.
키스신보다 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장면...
웬지 멋지다..ㅠㅠ
아래 장면들에서 스칼렛의 비비안리를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스칼렛 역에는 비비안 리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비비안 리는, 너무 섬세하여 가끔 굉장히 퇴폐적이라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청초하거나, 우아하거나, 가련하거나, 혹은 약간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여배우였지만,
아래의 장면에선 그녀가 지닌 퇴폐적인 섹시함이
제일 두드러진다.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또한 그래서 이 장면들이 매혹적이다.
그러나 어쩐지 스칼렛적이진 않다.
클로즈업으로 이렇게 멋진 장면을 만들어낸 촬영감독에게 찬사를..
이때만큼은 클라크 게이블도 꽤 멋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 역시 비비안 리..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순간,
작별의 키쓰를 하고, 기껏 따귀를 얻어맞은 후의 약간은 아이러니한 레트의 심리가 엿보였던 이 장면도 좋았었다.
위 장면들은,
39년작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화면 구도와,
스칼렛과 레트라는,
정말이지 검붉은 장미같은 커플이 그려내는
강렬한 성적 매력이 넘쳐 흐르는 기막힌 색감이 환상적이다.
워낙 유명한 장면이지만,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세차게 뛰던 소녀의 마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레트의 이른바, 자신이 그토록 비웃던 남부의 대의라는 것에
자신을 내던지기 직전에야 털어놓는 진심과,
그것이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스칼렛에게 전혀 가닿지 않는
안타까움이
모노톤의 화면 위에 화려하게, 허탈하게, 냉소적이면서 자조적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레트가 아주 가끔씩 보여주는 진솔한 자신의 참모습을
스칼렛이 전혀 알아보지 못함에도
그러 인해 더욱 두 사람의 관계엔 묘한 섹시함이 넘쳐흘러
그것이 화면을 꽉 채운다는 점이다.
이건 역시 연출을 칭찬해줘야하는걸까?
원작의 방대함을 미처 담아내지 못한 영화라고 늘 생각하지만
이런 순간엔 그래도 영상이 지닌 힘이 느껴진다.
원작에서 아무리 구구절절하게
묘사한들,
이런 분위기를 느끼게 하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부분만은
원작보다 영상이 월등하다.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어긋남의 수려하기 그지없는 시작은
이렇듯 처연하기까지한 영상미로
단숨에 우리를 매혹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이 장면이 명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난 어쩐 일인지
레트가 돌아선 이후,
홀로 남은 스칼렛이 절망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이 장면이 더 좋았다.
온실의 꽃, 남부 대 농장주의 딸이며
남부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제멋대로 살아온 스칼렛 오하라 시절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