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블린과 헨리 8세
'천일의 앤' 이라는 영화가 있다.
언제 어디서 봤는지 확실친 않지만 좌우간 처음 본 건 무지하게 오래 전이다.
영화관에서 보진 않았으니 티비나 비됴로 봤을 가능성이 크겠다.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라
저렇게 옛날 영화를 고화질로 얼마든지 구해서 볼 수가 있다.
몇 년 전에 모 사이트의 다운로드 정액권을 끊었을 때
닥치는 대로 옛날 영화들을 받으면서
저 영화도 받아 놓았다.
그러나 막상 본 것은 며칠 전이다.
어렸을 때 보는 것과, 나이가 들어서 보는 것의 차이가 있다면
후자의 경우엔 잡념이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고의 영역이 넓고 조잡해진다.
더이상은 그다지 순수하거나 단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만큼 무지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무지하지 않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결국 그것은 나도 그만큼의 경험을 쌓았다는 뜻이며,
그러나 내가 쌓은 경험도 긍극적으론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한계 안에서, 그 한계만큼의 편견이
그 무지함의 반대편에 있을테니...
아무튼,
이 헨리 8세라는 인물은 영국사에선 독특한 인물이다.
조선 왕조로 치면 숙종 쯤에 해당되려나??
왕으로서의 치적보단 여자 문제로 회자되니 말이다.
하기야 중앙집권적 절대 권력이었던 조선 왕조와,
중세 봉건시대의 영국왕을 비교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고,
영국 왕에게 얼마만큼의 권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난 물론 영국 왕실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제임스니 조오지니 빅토리아니
귓결에 흘려듣거나
내가 즐겨 읽었던 영국 추리소설에서 언급되는
몇몇 왕에 비해서
헨리 8세는 참으로 화려하다.
그런데
그 헨리 8세에 대한 나의 접근은 앤 블린과의 요란한 연애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아들,
그 아들을 얻기 위한 갖가지 생쇼의 산물인
에드워드 6세로 시작된다.
물론 어린 시절의 동화에서 읽었던
'왕자와 거지'이다.
지금이야 책과는 담을 쌓고 살고 있어
무식하기 그지 없지만
(난 책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이제 믿지 않기에)
어린 시절에야 왕성한 지식욕과,
그보다 더한 상상력의 세계를 채우기 위해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또 읽으며
현실과 꿈의 괴리를 메꾸어 간다.
왕자와 거지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에드워드 6세인 것이다.
난 후에야 그가 헨리 8세의 유일한 아들이며,
그 아들을 얻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수많은 여자들을 죽이거나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천일의 앤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앤 블린을 처형하는 순간(영화 상으로)
말을 돌려 찾아가는 제인 시모어가 바로
그에게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준 여인이었음도 후에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바로 에드워드 6세인 것이다.
왕자와 거지의 모델로 등장한 에드워드 6세는,
그러나 병약하고 단명했다.
그게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아들 하나 얻기 위해
별별 짓을 다했건만
그 아들은 실제론 영국 역사에 별 그림자도 드리우지 못했고,
알고 보니 헨리 8세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고
그가 죽이거나 쫓아내지 않은 유일한 왕비였던
제인 시모어 역시 아들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니 말이다.
그리하여
난 대체 어찌하여 앤 블린이 제인 시모어보다
더 화려하게 그 이름을 떨치며
온갖 드라마며, 영화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뚜렷하게 이름을 새겼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그녀를 얻기 위해 영국과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카톨릭의 싸움을 벌이게 하고,
그래서 영국이 카톨릭의 권력에서 떨어져 나오게끔 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역사란,
실제 우리가 그 현장에 있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그 이면의 진실을 알 수가 없다.
우린 그저 드러난 사실 만을 받아들여야하고
그것이 선정적이건, 무미건조하건
온갖 서적에 코를 박고 연구하지 않는 한
아니 그런다한들 진실을 알 순 없다.
확실한 건,
역사란 권력의 투쟁이며
인간에게 내재된 가장 강렬한 욕망도 권력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결혼도
그것이 왕가에서 벌어지는 한
권력이라는 것이 인성보다 한 수 위헤 있는 것이
당연하기에
모든 것은 권력이라는 것,
그리고 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 모션들이다.
앤 블린이 영국사에서 제인 시모어보다
훨씬 화제가 되고, 보다 뚜렷하게 존재감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리라.
그녀를 얻기 위해
헨리 8세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로마 카톨릭과 절연을 감행하고
따라서 그것이 오늘날 영국 성공회의 기초가 되었다.
그 당시에 로마 카톨릭은 또다른 권력의 핵심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또다른 권력은
그보다 더한 권력에 역시 휘둘리고 있었으니
가장 큰 권력은 종교에 몰려 있고
따라서 권력이 있는 곳에 반드시 따르는 갖가지 정치적 음모가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은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
헨리 8세가 그토록 열렬하게 원하던 앤 블린을
너무나 간단하게 싫증내고 이어서 죽여버리기까지 한 것은,
그가 그 사랑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치루었기 떄문이다.
인간은 뭐든 무리를 하면
반드시 그 앙금이 마음 속에 남아서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마련이고,
헨리의 경우엔
앤 블린 하나 얻기 위해 전 왕비를 내치고,
많은 신하를 죽이고
당시로선 파격적이었을 로마 카톨릭에서 파문을 당하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었기에
당연히 마음 속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왕족이라는 인간들이 우리네와 좀 다른 마인드를 지닌
괴물들이라해도
결국은 인간이니 무리를 하면 그 무리에 따르는 반작용은 필수인 것이다.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는
처음 봤을 때나, 최근에 봤을 때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즉,
작품으로서는 매우 함량 미달이다.
헨리와 앤의 사랑보단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피바람이 더 인상적이라는 것이
어렷을 때와 조금 달라진 안목이리라.
왜냐면
어렸을 떈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그토록 사랑한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헨리8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알 수가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엔
앤에 대한 사랑보단
잠재적 분노와 두려움이 더 커져 있었으리라는 것,
그러나 아들에 대한 집착과 기대로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의 잠재된 분노와 절망과 두려움이 폭발한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가 이혼하지 않고
앤을 죽여버린 이유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건 그저 내 상상력의 영역이고
내가 지닌 인간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 것이다.
제 아무리 중세시대 영국이라는 나로선 알 수 없는 나라의 왕이라해도
그도 인간인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갖가지 무리를 넘어선 행동을 하면서까지
한 여자를 얻었다면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은 자연 변질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