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24부- 그들의 재회가 주는 아픔
궁의 에필로그가
나의 궁에서 제외되고,
대신
위의 신군의 먹먹한 표정에서
나이 궁이 끝나버린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위의 두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궁에서 황태자 부부로 함께 살며
우정을 키우고, 사랑을 키우다가,
갑작스레
궁과 황실이 가하는 압력 하에
절절하게 이별하였다.
궁이라는 엄격한 통제 하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청소년들의 아픔과 방황조차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그건 궁이라는 공간에선 낯설고 신기한 것이다.
그래서 신채경이 황태자 이신에겐 동경의 대상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궁이라는 공간이 주는
저 아득한 외로움을 토양으로 삼아 싹트고
그것을 키워서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내는
젊은이들의 힘과, 반대편에 있는 궁의 어두운 복도가
안타까운 대립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아팠다.
그러나
또한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난 생각하였다.
궁이란 곳이
무엇이든 허용되고,
자유롭고 유쾌한 삶의 온갖 즐거움이 난무한다면
그건 이미 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는 무관하게
전통이라는 것을 지켜내고 유지하는 의무를 지닌
한국의 궁의 한계라고 본다.
재계가 여기저기 기부를 한다고해서
결코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나눌 수 없듯이
궁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높은 담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난 청춘들의 특권인 자유와 꿈과 사랑이
궁에 무릎을 꿇어야하는
저 장면이 아팠고,
그 아픔이 그대로 내겐 '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내게 보여준 것이
신군이라는 인물이었다.
위의 신군의 표정은,
내가 궁을 보며
웃고 울고 가슴 설레고 분노에 찼던 모든 기억을
안고 떠나고, 떠나보내는 마음과 같다.
문제가 너무나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채경에 대한 신군의 마음 같다.
채경은 눈물을 철철 흘리지만,
신군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눈물을 철철 흘리는 채경보다
저렇듯 울지도 못하는 신군의 표정만으로
채경이가 없는 삶을 살아야하는
궁에 얽매인
신군의 마음이 절절하게 전달된다.
신군의 표정엔, 어쩌면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채경이가, 하필 황태자비가 되는 바람에
자기가 이미 싫증나도록 체험한 외로움과 아픔을 겪어야하는 것에 대한
비통함도 묻어난다.
그런 그녀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선 그녀가 꼭 필요하기에
그녀를 놔줄수도 안을수도 없는
황태자 신군의 안타까움이 넘실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먹먹함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는 무턱 울 수만도 없는 것 같다.
눈물로 표현하기엔 그의 아픔은 너무나 큰 것이다.
그런 신군이야말로
내가 본 궁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었고,
가장 깊이가 있으며
또한
가장 답답한 인물이었기에
그대로 궁이 된다.
신군=궁
인 것이다.
그래서 그 궁을 떠나는 신군의 모습에서
나의 궁이 끝난건지도 모르겠다.
신군에게 매달려 눈물을 흘리는 채경이는
다름아닌, 나 자신이 되버린다.
이후로..그들은 저렇듯 다시 만난다.
그들이 재회하는 곳은 외국이고,
공기마저 다르다.
마음을 달뜨게하는 화사한 밟음이 넘치고 있다.
공기도 향기로울 것만 같다.
그런 곳에서
신군과 채경이 만나고 있다.
그들은 절절하게 이별한 사람들답지 않게
참으로 담담하다.
물론, 그것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후로도 그들은 소식을 늘 주고받았으며
물론 통화도 했을 것이고,
어쩜 몇 번은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저 장면들에서 내가 느낀 건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다.
궁을 보면서 내내 느꼈던 신채경 캐릭터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그녀에게 심하게 부족한 진정성과 깊이가
그들의 재회 장면에서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애초에 채경은 신군에게 관심이 없고
사랑한 적도 없으며
신군 혼자 내내 짝사랑해온 것이라고 설정했다면
딱이다.
캐릭터의 문제인지
대본의 문제인지 배우의 연기의 문제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어째서 신군의 마음은 늘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데
채경이라는 단순한 캐릭터는
그토록 불투명하고
늘 쌩뚱맞게만 보이는걸까?
어째서 그녀가 신군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내겐 전달되지 않는 걸까?
설사 사랑한다고 울고불고할 때조차
그런 느낌을 난 받을 수 없었던걸까?
그리고 마카오 에필로그에서
그야말로 신채경은 진수를 보여준다.
오랜 만에 만난 채경은
신군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어떤 마음인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신군을 앉혀 놓고
채경은 자기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는데,
마치 오래 전의 효린을 보는 것 같다.
아니,
아예 그녀의 인생 계획 속엔
신군이란 인물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신군을 쓸쓸하게 하고 있다.
마치
채경이는 이제
자신의 꿈을 위해서만 살 작정이며,
신군은 자신의 꿈도 인생도 없는 텅빈 인간 같다.
그는 그저 채경이가
언제나 자기를 불러줄 것인가
처분만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신군은 채경이만을 원하고
그녀가 삶의 목적이 되버린 애처로운 캐릭터이고,
그런 한심하고 어린애처럼 보채는 남편을
답답하게 여기는 채경은
제법 뭔가 있어보이는 척 한다.
내가 에필로그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궁 처음부터 그리고 내내,
신채경 캐릭터에게서
도무지가 아무런 진정성도 일관된 캐릭터로서의 중심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궁에 들어와서
그저 신군 주변만 맴돌며 그의 관심을 애타게 바랄 때나,
이윽고는 신군을 갑자기 비난하며 거부할 때도
대체 저 여자애가 원하는 건 뭘까 궁금했는데,
막방에 이르기까지 신채경이라는 캐릭터는 뭘 원하는 걸까 궁금해 해야하니
따분하기 그지 없다.
어째서 난 신채경과는 어떤 소통도 할 수가 없을까?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마카오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그걸 드러낸다.
대체 그녀에게 신군은 무엇일까?
어째서 그녀는
신군은 내팽개쳐두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부만 딥따 하고 싶다고
바로 그 신군 앞에서,
그것도 신군의 아내이고,
신군을 사랑한다는 설정 하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그동안 극을 위해 희생시켜온 신채경 캐릭터의 존엄성을 찾아주기 위해
이번엔 신군이라는 캐릭터를 밟아대는 것 같다.
마카오에서의 신군은
그저 채경이의 사랑을 구걸하기 위한 존재같다.
아니 그게 그의 인생의 목표같다.
그리고 자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채경에게 투덜대다가 얻어맞기까지 한다.
설사,
그렇게 온지구를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하겠다는,
불타오르는 학구열이
신군에게 걸맞는 그의 짝이 되겠다는
채경의 깊은 마음이 있는 거라고 이해하려고 해봐도
들어맞지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신군은 혼자 팽개쳐둬야하는건가?
그래야 신채경이 빛나는건가?
신군은 할마마마를 따라 다니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단다.
그럼 와이프가 세계 일주를 하며
공부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신군은 대학도 안가고
공부도 안하고
그저 할머니 따라다니며
봉사 활동만 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봉사 활동이 21세기 황족이 필히 해야할 덕목임이
분명하지만,
비궁은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공부나 하는 동안,
신군은 홀아비 생활을 하며
봉사 활동만 하면서
채경이가 언제쯤 날 불러주려나 기다리고 있게 만든
에필로그는
마지막까지 날 슬프게 한다.
그래서
에필로그는
더더욱 나의 궁이 아닌 것이다.
난 신채경과의 소통을 신군만큼이나 원해왔지만,
잠시 그것이 이뤄졌다고 믿는 순간
다시금 날 내동댕이치고
저 혼자 안들호로 날아가버리는
신채경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막방에서도 끄트머리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