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경주 팬션에서의 해프닝(2)

모놀로그 2011. 10. 8. 11:43

그 팬션은 방이 두개뿐이었다.

하긴 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방 겸 방과,

거실겸 방

단 두 개의 공간을 유리문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난 너무 졸려서 어딘가에 눕고 싶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다행히 우릴 초대한 청년이

거실에 있는 계단 위에

난간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쉬라고 했다.

그곳은 꽤 넓어서 몇 명은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는 되었는데,

난 그곳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실컷 자다가 깨보니

난 그 독방(?)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팀장의 잠자리로 준비된 곳이 아니었나 싶은데,

내가 깊이 잠든 걸 보고

팀장이 깨우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대신에 팀장님께선

다른 잠자리를 찾아 헤매고 다녔던 듯 하다.

아마 잠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듯

새벽에 남자들이 애를 써서 겨우 빈방 하나를

우찌우찌 구해서 들여보낸 모양이다.

이건 후에야 알게 된 일이고..

 

홀로 잠에서 깨어나

팬션 밖으로 나간 건

새벽이었다.

 

비는 그쳤고

여전히 공기는 차가왔지만 맑고 상쾌했다.

 

난 나의 상근이가 자기 저택에서 잘 자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

슬슬 걸어내려갔다.

 

헉;;

이게 웬일인가!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상근이가 아니라

내가 매달아준 끈조각이었다.

 

상근이는 내가 애써 매준 줄을 간단하게 끊어버리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잠시 아득해졌다.

몇백만원짜리 개쉐이가

나로 인해

사라진 것이다.

 

이 쉐이가

집에 들어가서 자라고 줄을 바꿔줬더니

그걸 끊어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허둥지둥 팬션을 뛰쳐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저 초록색 논밭만 눈에 들어올 뿐,

절망적이었다.

어디 가서 이 개쉐이를 찾는단 말인가!

 

그러나...잠시 후에

난 아득히 먼 반대편 숲속에서

개쉐이 한 마리가 기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저거..저거..

상근이 아냐?

아무래도 상근이 같지?

저눔이 집구석으로 기어들어가긴 커녕

날밤 새며

숲속을 헤매고 다녔구만;;;

 

그렇다면..

내가 상근이에게 일탈의 즐거움을 선사한거임?

 

난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상근이를 빨리 찾아다가

제자리로 돌려놔야했다.

 

그래서 아득히 먼 그곳을 향해

죽자고 달리기 시작했다.

 

팬션에서 보기에도 아득히 먼 그곳은.

실제론 더 아득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그야말로 마을을 뺑 돌아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동안 상근이가 얌전히 날 기다려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후딱 달리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내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면

끝장이다.

 

다행히 상근이는 밤새 에너지를 맘껏 발산한 듯

느릿하게 주변을 서성일뿐

어디론가 달려갈 태세는 아니었다.

 

위기에 몰리면

사람에겐 불가사의한 힘이 솟는 법이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난 그 높은 신발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달려서

기어이 상근이와 만날 수 있었다.

 

그놈의 목줄엔 내가 달아준 그 끈이

어설프게 매달려 있다.

웃음이 나왔다.

애초에 그런 끈으로 대형견을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정상이 아니었다.

 

어떻든 상근이를 만나자

너무 반가와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난 녀석의 목에 댕강 매달린 짧은 줄이나마 끌고

팬션으로 향했다.

 

상근이는 의외로 순순히 따라온다.

가끔은 나와 반대되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난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야했다.

 

그렇게 상근이와 나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힘겨루기를 하며

어떻든 팬션 가까이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지만 해낸 것이다.

ㅠㅠ

그때만해도 내가 아주 힘이 넘쳤나보다.

 

등치가 산더미만한 상근이를 끌고

그 먼길을 걸어서

팬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니

괴력 아닌가!

ㅋㅋ

 

그런데,

거의 팬션 가까이 와서

내가 안도의 땀을 닦기도 전에

갑자기 상근이가 배신을 때렸다.

 

이놈이 갑자기 날 뿌리치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흑;;;

 

난 다시금 그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상근이와 달리기를 해야했다.

새벽이어서

사람이 없기가 다행이지

그 꼬라지가 얼마나 웃겼을지..

 

이제 동정심이고 나발이고

그저 상근이라면 이가 갈릴 뿐이었다.

 

녀석을 쫓아 알지도 못하는 길을 여기저기 헤매다가

극적으로 찾아냈다.

 

다시금 녀석과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난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헐떡이며

이제야말로 상근이의 짧은 목줄에 내 생명을 걸고

죽자고 팬션으로 향했다.

 

죽어도 널 놓치지 않을거야

이 망할 넘의 개쉐이야

 

그런데,

예상치 않은 복병이 날 기다리고 있었으니,

 

도대체가 내가 나온 팬션이 어딘지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ㅠㅠㅠ

 

 

난 눈썰미가 매우 약하고

방향 감각이 없다.

그래서 운전도 못한다.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여럿 죽인다고 가족들이 말리는 것이다.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하기가 일쑤이니..

 

난 어두워진 후에야 팬션에 도착했고,

주변을 살필 틈도 전혀 없었는데다가

일대엔 그런 팬션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설사 대낮에 도착했다해도

비슷한 건물들 투성이에서

내가 머무는 팬션을 찾기 힘들었을 판이다.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팬션이라는 이름의

모텔은??

 

자꾸만 달아나려는 거대한 상근이를 끌고,

아니 내가 끌려다니는건가?
암튼

우리 팬션을 찾아서

다시 헤매야했다.

 

난 일대의 모든 팬션에 들어갔다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되풀이하며

하염없이 나의 팬션을 찾아 삼만리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나타나기 전에

난 그 개쉐이를

다시 제 자리에 데려다놔야하는 것이다.

 

우찌우찌하다가

겨우 찾아낸 우리 팬션을 보자

난 너무나 반가와서

그 팬션을 당장

신군 생파가 벌어진 팬션 수준으로 급을 올려주었다.

 

자,

상근이의 목줄에 대롱 매달린 저 줄을 풀고

다시 쇠줄을 감는 작업이 남았다.

 

식은 땀을 흘리며,

그 작업을 하느라

다시 몇십분을 소모했다.

 

상근이는

간밤에 뭔 짓을 했는지

꽤 피곤한 듯

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목털 깊숙히 파묻힌

목줄을 찾아내어

거기에 달린 줄을 떼어내고

다시 쇠줄을 거는 동안 귀찮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대업을 완성하고

땀투성이가 되어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없앨 무렵이 되자

날이 완전히 밝아오면서

사람들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다.

 

난 욕이 나오는 걸 참고

팬션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상근이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갑자기

아무데나 털썩 쓰러져

그야말로 편안하고 그윽한 얼굴로 꿈나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상근이는 줄이 짧아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니었던 것인가??

 

상근이는 그저 아무데나 쓰러지면

그곳이 침실이었던 것이란 말인가??

 

그넘이 울어댄 건

숲속으로 가고 싶어서였단 말인가??

 

난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과

솟구치는 웃음을 동시에 참으며

한참 동안

상근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상근이를 두고

경주에서 내가 벌인 삽질은 막을 내렸으며,

 

그러나

상근이와의 일막이

경주의 팬션에서

내가 그나마 건진 기억이다.

 

그것도 아주 보람찬 기억 말이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재밌는 추억을 준 상근이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