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20부-정태성에게 남겨진 사람들
정태성은 죽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강오수는 한방에 편하게 갔지만,
정태성은 너무나 죄가 커서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을 겪어야했다고 한다.
그것도 하나의 견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난 누가 더 죄가 크고,
누가 더 편하게 죽어가는가
따위보단,
죽어가는 오승하가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에 더 관심이 있다.
그는 뜻밖에도 형과 엄마가 아니라,
해인과 오수를 생각하고 있다.
전에도 말했듯,
그의 새로운 가족이다.
굳이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해도
정태성이라는 이름을 버린 후에
잠시 머물렀던 삶에서 그가 가장 깊은 인간 관계를 맺고,
그의 의식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사람은,
해인과 강오수였던 것이다.
아니 형과 엄마의 죽음이 땅에 떨어진 씨앗이라면,
해인과 강오수는 그로 인해 싹튼 새로운 인연이다.
형과 엄마가 그의 과거라면,
해인과 강오수는 그의 현실이었다.
미래로는 발전할 수 없는 인연이기에
더더욱, 해인과 오수에게 자기도 모르게
집착해왔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일찌기 세상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이후,
진심으로 먹을수도, 잠들수도 없었을지 모를
정태성이,
잠시 자신의 모든 업보를 내려놓고
남들처럼 웃을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 바로 이때였음을
우리도 알고 있다.
이 장면을 떠올리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의 어이없는 삶에 저런 순간이나마 있었다는 건
인색하기 그지 없는 축복이고,
그런 순간을 선물한 해인은 과연
빛의 여인이었다.
난 일찌기 '오수의 미소'라는 글에서
위의 장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저 장면은,
내가 처음 마왕을 봤을 때, 이미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마왕의 숱한 명장면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가슴에 남는 장면이었다.
사실 드라마에서 캐릭터와 심리적으로 일체감을 느끼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난 그런 체험을 하였다. 그건 색다른 체험이다.
난 이 순간에 내가 오승하가 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강오수의 뒷모습에서
지친 듯한 외로움을 오승하는 똑똑하게 본다.
난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오승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것으로
누구보다 연민과 이해를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오승하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오승하는 그때 처음으로 강오수를 안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떤 인간이던,
안에서 바라보면
역시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이다.
하지만 오승하는 흔들리려는 마음을 뿌리친다.
그리고 어거지로 강오수에 대한 증오심으로 연민을 가려버리고자 한다.
그러나,
죽어가는 정태성이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것이
다름아닌 이 모습이다.
강오수는,
마치 정태성이 그랬듯
지친 어깨에 잔뜩 외로움을 실은 채로
비틀거리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했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때 이미 오늘 이 순간
바로 자기 곁에서 최후를 함께 할 유일한 친구라는 걸
감지했었음을
정태성은 깨닫는 것 같다.
아니
이제야 겸허하게 그 느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리라.
굳이 정태성에게 보다 쉬운 최후를 허용치 않는다면
이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에게도 강오수처럼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태성처럼 어떤 의미에서 정태훈 사건의 가장 큰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굳이 이 순간의 강오수를 떠올리는 건,
강오수도 바로 그 사건에서
자기와 별 다를 바 없는 희생자였음을
깨닫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태성의 그런 깨달음을 위해
굳이 강오수의 죽음이 필요했다면
그 역시 정태성에게나 강오수에게나
가혹한 일이다.
나란히 누워 있는 그들은,
그래서 마치 거대한 사회가 뿜어내는 비정함에
항거하는 순교자같은 느낌도 준다.
깊이 잠든 두 사람이
마치 천사같은 느낌을 주는 것에서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