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개이다
요즘 난 무척 약해졌다.
건강이 지속적으로 약해진 채로
몇 년을 지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물론, 타인에겐 여전히 못되게 굴지만,
특히 엄마에게;;
나 자신에겐 한없이 약해진 것이다.
그래서 날잡아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개라는 결론을 내린다.
기개에서의 '개'라 함은 물론,
절개를 뜻하리라 생각한다.
웬 절개?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절개란 꼭 나라나 군주, 혹은 배우자에게만 지키는 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지켜야한다.
그러니
자아에게 지켜주는 기개가 꼭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은 허접쓰레기일 것이다.
정신은 점점 헐렁해지고 나약해지고 멍해진다.
기개가 살아 있다면
그 어떤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도 이겨낼 수가 있다.
특히 이런 시대에서 기개를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난 일찌기 '루이제 린저'의 소설에서 읽었던 귀절
'생이란 스스로 정신속에서 구원하지 않으면 정말 끔찍한 거야!'
를 모토로 삼고 살아 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육신에게 침범당하여 피폐해져가고 있다.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장 지름길은
바로 육신에게 정신이 잡아먹히는 것이라는 걸
익히 알고 경계해 왔음에도..
정신의 기개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다면
육신의 고통 쯤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난 문득,
어린 시절,
흠모했던 베에토벤을 비롯한
고전 음악의 천재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병약하고, 가난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육신에 지지 않았고,
불멸의 명곡을 남겼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난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모짜르트에게 인생이란,
자기가 음악을 만들기 위한
거대한 오선지일 따름이다.
그 이외의 시간은
그에겐 그저 작은 유흥이었다.
음악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의 충천일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네 소시민들은 일상 생활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먹고 자고 싸고
좋은 거 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옷을 입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난 천재의 특이한 생에 대한 마인드에 감탄했었다.
물론,
그것을 영화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는 가난과 질병 속에서,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악의 고통 속에서
그런 음악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베에토벤은 어떠한가!
늙고 병든 그는
최고로 불행했던 시절에
최고의 명작을 남겼다.
슈베르트도 마찬가지이고,
쇼팽도 그러했다.
그들은 기개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천재이고,
그들의 이름은 불멸이며
그들의 음악은 최고이다.
물론,
난 천재도 아니고
평범 이하이지만,
그러나
기개마저 잃는다면
내 영혼은 어찌될 것인가!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부터가
빨강불이 들어왔다는 신호이다.
전엔 늘 냉정했던 내가 말이다.
절대로,
나약해져선 안된다.
육체에게 져서도 안된다.
난 이제부터
내게 주문을 걸어야겠다.
기개를 찾아 길을 떠나자.
그걸 찾아서
꽉 움켜쥐자.
절대로 놓치 말자.
다른 건 다 놓아도
그것만은 놓지 말자.
지금의 나는 아주 내 마음에 안든다.
난 아무래도
날 '조율'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느님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 힘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