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23부- 혜정전의 '신군의 질투설'

모놀로그 2011. 8. 3. 22:08

전각에 불을 질러

막대한 손실을 나라에 입히고

황실의 위상을 다시금 땅밑으로 쑤셔박은

혜정전은,

 

해맑은 얼굴로 병원에 누워 있다.

알아서 죽지 않을만큼,

그리고 미모에 손상이 가지 않을만큼의 상처는 입었다는 것이다.

 

하긴

가채머리에

요란한 차림새로 눈을 희번덕거리거나 입술을 씰룩거릴 때보단

이쁘긴 하더만;;;

 

그런데,

율군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난 다시금 정신이 사나와진다.

 

신군이 궁에 불을 지를 이유가 전혀!없다는 것과,

성격적으로 궁에 불을 지를 인간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율군이

속아 넘어갈 리가 없다.

 

율군은 항상 사태를 잘 파악하고 있다.

결국 모든 사건, 사고의 배후엔 자신의 어미가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방화껀도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래서 슬쩍 떠보는데,

혜정전은 난데 없는 말을 한다.

 

즉, 신군이 전각에 불을 지른 이유가

질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난 하마터면 웃다가 뒤질뻔했다.

 

대본이 아무리 이랬다 저랬다한다고쳐도,

(가끔은 또 꽤 깊은 대사빨도 날려주시니...)

 

쌩뚱맞게 웬 질투타령이란 말인가!

 

대체 신군이 누굴 질투해서

전각에 불을 지른단 말인가!

 

설마 율군을 질투한다는 뜻인가?

그런데 신군이 왜 율군을 질투한단 말인가?

 

황위를 두고 종친들의 알력 때문에 율군에게 밀리는 것 때문에?

아니면 채경이 때문에??

 

그렇다면

혜정전은

신군이 황제가 되고 싶어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믿고 있는건가?

혹은 채경이도 율군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대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만,

신군에 대해서 두 모자는 어쩌면 그다지도 아는 것이 없단 말인가?

 

상대를 제압하려면 적어도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

공부라도 좀 해야하지 않나?

 

신군이 황제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고 믿는걸까?

아니면 채경이가 율군을 좋아해서

신군 눈이 뒤집혔다는걸까?

 

방화의 이유로 내세우는

 

'신군의 질투썰'

은 정말 우습기 짝이 없다.

 

삽질의 명수인 두 모자는

엄숙한 얼굴로 마주앉아

늘 엉뚱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웃으면서 열받는 나지만,

이건 좀 이상하다.

 

혜정전의 문제는 도무지가 사태 파악을 못한다는 것에 있다.

만일 좀더 영리하고 그야말로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여자였다면

지금까지 해온 치졸한 짓은 안했을 것이지만,

 

차라리

신군을 찾아가서

황제 자리는 율이에게 양보하라고 정면대결을 하는 편이

혼자 별별 궁리를 다 하느라

생고생을 하면서

별로 얻는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거나,

괜한 짓을 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냔 말이다.

 

궁에서 제일 형편 없는 캐릭터가

혜정전인데,

바로 저런 이유이다.

 

늘 뭔가 음모를 꾸미긴 하는데

별 소득이 없다.

 

비장의 카드로 꺼낸 방화껀은 제법 그럴 듯 했지만

아들에게 거짓말을 한답시고

 

나름 깊이 있게 사고하는 듯한 음성으로

신군의 질투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런데,

문제는 율군이다.

 

율군은 신군이 질투할 이유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황제껀이나 채경이 문제에 있어서도

얄미우리만큼 질투할 이유가 너무 없어서 탈이다.

아니, 오히려 질투에 눈이 멀 지경인 인간은 바로 자신이다.

 

폐비가 되면 다신 율군을 만나지 않겠다고 이미 채경이는 못박았다.

뿐이랴!

2500만년 후에라도 자기가 사랑할 사람은 오로지 신군뿐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대체 신군이 왜 무엇을 질투를 하여 전각을 불태우기까지 하겠는가?

 

 

어머니의 황당한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율군은

 

'우리 아들은 이제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는 마무리에 표정이 약간 달라진다.

 

솔직히 이 대목에선 난 율군역의 배우의 표정을 잘 파악하기가 힘들다.

도무지가 기뻐하는건지

탄식하는건지

안도하는건지

일말의 기대를 거는건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율이는 나름 다른 채널로 사태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상했던대로

어머니의 짓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황제 자리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여

방화를 하고

그것을 신군에게 뒤집어씌우는 행위에 대해서

율군은 적어도 뭔가 한 마디 해야한다.

 

한 마디가 하기 싫으면

뭔가 한 행동이라도 해야한다.

 

궁금하다.

대체 그는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가!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별 움직임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설마,

 

신군이 방화범으로 몰려서 폐위가 되고

채경과도 헤어지게 된 후에라도

 

자기가 황제가 되면

새로운 국면이 벌어질 가능성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왜 신군이 방화범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걸까?

 

며칠 있다가 하려나?

 

어떻든 장황하게 신군의 질투에 대해서

조곤조곤 썰을 푸는 혜정전의 대사들은

내겐 별로 보고 싶지 않은 희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