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2011. 6. 6. 23:44

난 몇 년이나 같은 길을 산책한다.

내 산책로는 정해져있다.

벌써 몇 년을 걸었다.

 

 

그 몇 년을 걷는 동안

그 길을 걷는 내 모습은

마치 전혀 달력을 넘기지 않은 양

그대로인데,

 

그 길도 그대로인데

그 길을 걸으며 듣는 음악도 여전한데

 

그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얼굴들도 변함이 없는데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바로 걷고 있는 내 마음이다.

 

그리움도, 꿈도 없다.

원망도 희망도 없다.

기억은 있지만 추억은 없다.

 

난 길바닥에 하나씩 버리면서

걷는다.

 

 

뭔가가 빠져나가고

하나씩 비워진다.

 

이제 남은 게 별로 없다.

버린만큼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내게 뭐가 남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그리고

그 빈자리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을 때

 

난 어떻게 될까?

 

같은 산책길을

다시 몇 년을 더 걸을텐데

 

텅 빈 허깨비같은 모습으로

걷고 또 걷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길바닥에 버려진 것들 위로

시간이 쌓이고

낙엽이 쌓이고

눈이 쌓이고

먼지가 쌓인다.

 

아마 몇 년이 더 흐르면

난 내가 버린 것들을 길에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