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18부- 손수건의 잔상
해인이 오수가 가져온 손수건에서
잔상을 읽어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이 찾고 있었던 배후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다.
그때까지 배후 인물과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던 두 사람은
그러나, 이제 각기 다른 이유로
자기가 그 문제의 인물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대도 그 인물이 누군지 알아냈다는 걸 짐작하는
묘한 상황이다.
그 누군가는, 막상 찾아내고보니
그 두 사람에겐 참 아픈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배후 인물이지만,
그것을 알아냈다는 것이
조금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두 사람에게 큰 짐이 되고 말았다.
해인은 오수가
단서로 들고 온 손수건에 매달린다.
그 안에서 오승하를 구원할 실마리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오수는 배후 인물이 밝혀진만큼
이제 잔상을 읽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부터 읽혀지는 잔상이야말로
오수에겐 무서운 진실이다.
해인은,
'지금까지 읽은 잔상과는 달라요"
라고 외치지만,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손수건에는 오승하가 의도적으로 심은 잔상이 아니라,
강희수가 남긴 생생한 사건의 현장의 잔상이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해인이 뜻하지 않게 읽어낸 잔상은
오수를 혼란에 빠트린다.
비로소 자신이 모르는 제3의 인물이 현장에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 인물과 문제의 사진이
순기 사건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순기와 석진이 기를 쓰고 자기에게 숨겼던
그 문제의 사진 속의 남녀가
순기 살인사건의 열쇠인 것이다.
다름 아닌 그 여자,
사진 속의 여자가 사건의 키를 쥐고 있다.
대체 그 여자는 누구이며,
왜 석진은 그 여자를 감싸고 있고
순기는 그 사진을
자신에게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순기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바로 그 사진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해인의 싸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이
12년 전 정태훈 사건의 현장을 보는 것으로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해인과 강오수의 인연도
참 비극적이다.
결국 해인의 능력은
죄로 물든 권력층의 무서운 횡포의 한 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참 무섭지만, 한편으론 단순한 세계이다.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위해선 태연하게 누군가를 짓밟을 수 있는
정말 단순한 세계이다.
악이란 것은 진실 못지 않게 단순한 것 같다.
오승하가 해인에게 기대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인의 능력은 결국 그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해보려던
오수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악몽같은 폐차장으로 이끌었던 해인의 능력이
이제 고인물처럼 죄에 물들어 썩어 있는
강의원 일가에게 철퇴를 내려칠 참이다.
그 외곽 지역에서
바로 자기 자신을 심판해야하는 지점을 향해
안개 속을 더듬듯 비틀거리며 다가가는
오수가 딱하기 그지 없다.
그 안개 속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심판을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