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들의 평민과의 결혼과 드라마 궁의 황태자비
내가 어렸을 땐,
영국 왕실에 대한 갖가지 가십 기사가
신문 한 귀퉁이에 꼭 실렸던 것 같다.
지금은 당췌 신문이란 걸 읽지 않고,
뭐 굳이 읽지 않아도
인터넷만 열면
각종 헤드라인 기사의 제목이나,
검색어만 대충 봐도
뭐가 문제이고,
지금 이슈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윌리엄 왕자가 결혼한다는 것도
인터넷 검색어에서 알았을 정도이니..
이번 결혼식을 보면서
난 문득 세상이 달라졌구나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한 나라의 왕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왕실이 변하고 있다면
정말 세상은 많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아직도 왕실을 보존하고 있는 영국을 비롯한,
북유렵의 몇몇 입헌군주제의 국가들
하다못해 일본까지,
점점 왕자나 공주들은 물론, 왕통을 이어갈 후계자들이
더는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는 평민들과, 그것도 오랜 기간 지지고볶는
우리네같이 서민적인 연애를 하다가
힙겹게 결혼을 한다.
상대가 왕자라는, 그것도 서열이 높은 왕자라는 신분이면
평민과 연애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니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되풀이하리라.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별볼일없던 남자가 이렇다할 학벌이나, 미래가 보장되는,
혹은 보장된다고 믿는 신분을 획득하면
연애하다가도 결혼은 애정보단 조건을 택하고 있지만,
그거야 남자쪽에서 그런 배경이 필요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전형적으로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한국형 서민적 발상이다.
하지만
왕족들은 그런 의미에선 순수할지도 모르겠다.
왕족이 사업가도 아니요, 출세하기 위해 몸부림칠 일도 없으니
굳이 명문대가의 규수나,
돈많은 집 규수와 어거지로 결혼할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아니,
전엔 그런 정략결혼에 어거지로 따랐을지 모르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귀족이나 재벌의 딸과 연애를 한다면 왕실의 어른들 입장에선
제일 좋을 것이다.
기왕이면 평민보단 귀족 계급과 혼인하여
혈통을 보존하고 싶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 더이상 그런 마인드를 거부하는 21세기의 왕자, 공주님들은
기꺼이 평민을 택하는데,
귀족이나 재벌의 따님이나 아드님들 중에
자기네들 취향이나 가치관에 맞는 인물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 뻔하니
그런 배우자를 선택하기 시작하는 추세는
역시 가문이나 재력보단, 인간을 보기 시작했고,
결혼은 귀족계급과 해놓고,
연애는 보다 솔직하고 매력있는 평민들과 하면 된다던
구시대적 발상도 사라져가고 있나보다.
영국 왕실에서 거듭해서 평민들과 혼인을 하고 있다.
어쩌면, 촬스 황태자의 다이애나와의 혼인이
정략 결혼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번 윌리엄 왕자의 결혼을 지켜보면서
영국 왕실처럼 마지막 남은 보수적 집단조차
이젠 달라지고 있구나 절실하게 느낀다.
어쩌면 다음 대의 영국 국왕이 될지도 모를
윌리엄이 십년이나 연애를 하던 평민 여자와 결혼하였고,
그 여자는 당당하게 자기가 주체가 되어
결혼을 이끌었다.
왕실의 눈치를 보면서 그쪽에서 하라는대로 따르는 대신에
자기 취향과 가치관에 맞는 자기의 결혼식을 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드라마 궁을 떠올리고,
채경을 떠올렸다.
21세기의 최초의 평민 황태자비였던 신채경이
궁이 견디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걸 보면서,
물론 만화이고, 드라마이며,
어린 소녀이고,
정략 결혼을 한 인물이긴해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결혼을 이끌어가는 힘이
부족하여
그저 도망칠 궁리만 하는 채경이가 새삼 딱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민 출신 태자비들이 훨씬 더
왕실을 잘 이끌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민들의 아픔을 아니까.
또 특별 계급들의 오만한 테두리에서 성장하기 않았기에
왕실을 정말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집단으로 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에서,
추구했던 것이 결국은 저런 것이었다고 들었는데,
왜 질질 짜면서
오해와 갈등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21세기의 소녀로
변질시켰는지,
왜 한국의 황실은
인간들이 숨쉬기 힘든 공간으로 정체시켰는지,
왜 채경이가 황후가 되어
누구나 숨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을 못했는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그리하여
속출하는 평민 출신의 미래 왕비들의 당찬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되는 채경의 모습이
어쩐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