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21부-주지훈의 신군, 혼자 안들호로 가버리다

모놀로그 2011. 4. 22. 01:59

마왕 리뷰를 연재로 시청자 게시판에 썼던 분의 글을

내 블로그에 펌한 적이 있다.

 

거기서 그분은 주지훈을 일컬어,

 

'연기의 간극이 첫회에 비해서 갈수록 그렇게 큰 배우는 처음 본다'

 

뭐 이런 식으로 평가한다.

 

다시 말해서, 주지훈의 연기는

첫회보단 2회가, 그리고 2회보단 5회가..

그리고 마지막엔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이런 식으로 횟수가 흐를수록 점점 더 발전한다는 뜻이겠다.

그리고 이건 사실 주지훈 연기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는 궁이나 마왕에서,

한 드라마에서 연기가 어떻게 발전해가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배우이다.

 

아마 그때만해도 신인이기에 그랬겠지만,

물론 처음부터 주구장창 못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

 

그분은 마왕에서의 주지훈의 연기를 분석하며,

찬탄하고 있다.

 

또한 우리 주팬들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연기의 매력과 특성을

제3자로서 놀라움을 가지고 서술한다.

 

마왕은 그렇다치고,

궁에선 특히 연기의 간극이 두드러진다.

 

어언 21부에 이르러,

난 이제 주지훈이 또래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할 땐,

더이상 그들과는 호흡이 맞지 않을만큼

훌쩍 자라버린 걸 느낀다.

그 바람에

그가 혼자 나오거나, 기존 연기자들과 겨룰 때가 차라리

마음이 놓일 지경이다.

 

동궁전에서의 일막처럼 그것이 두드러진 경우도 드물 것이다.

 

우선 채경이를 연기한 윤은혜라는 배우는,

귀엽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할 땐 그럭저럭 사랑스럽고 그것이 어울렸다.

초반의 채경이를 싫어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적어도 궁팬이라면

누구나 채경이를 좋아했으리라.

 

대개의 싸가지 왕자에 나오는 여주들은

채경이처럼 밝고 귀엽고 그런가하면 당돌하고 씩씩해서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황태자의 싸가지가 맘에 안든다고 손을 덥썩 깨무는가 하면,

황태자가 눈 한번 굴리면 깨갱하다가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대들거나 브이자를 날리는 그녀의 천진한 밝음에

미소짓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그건 특별한 연기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윤은혜라는 배우의 표정이나 분위기에 어울린다.

 

순진순수하면서도 씩씩하고, 다소는 무심하면서

속은 깊다.

 

또한 일상이 매우 분주하고 산만하다.

 

그것이 캐릭터에겐 매력으로 다가오고,

궁이라는  무거운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채경이 캐릭터에게 필수적으로 있어야할 요소이기도하다.

 

이제 그녀는 그녀와 상반된 분위기의 궁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경박한 밝음과 순진하고 무대뽀적이면서도

귀여운 면모를 과시해야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황태자 신군을 함락시킬 무기이니까.

 

하지만 횟수가 흐르면서

궁에선 가벼운 요소들은 사라져간다.

그건 채경이가 무거워지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채경이가 변하는 만큼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도

그 무거움에 합당한 변신을 해줘야한다.

 

이 시대의 고딩스런 경박하고 빠르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은어를 섞어가며 마구마구 내뱉거나 고함을 지를 땐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지만,

 

이제,

한 여자로, 고뇌하는 인간상으로 진화하면서

배우도 그만큼 진화해야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배우는 캐릭터가 진화하는 만큼

(혹은 퇴보하는 만큼?)

행보를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군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선 잘 어울렸지만,

이제 심각한 장면이나,

진지한 연기를 해야하는 장면에선

너무나 동떨어진 두 배우를 발견하게 된다.

 

동궁전에서의 일막이

그 심각성과 무게에 비해

함량이 매우 딸리는 이유는,

 

채경이라는 캐릭터의 타당성 부족과 그것을 땜빵한답시고

늘어놓는 횡설수설도 있지만,

 

그보단 애초에 그런 횡설수설조차 그럴듯하게 들리게끔하는

배우의 연기력 부족이 제일 크다.

 

그래서

그런 채경역의 배우를 상대하는

신군 역의 주지훈의 연기까지 갉아먹는다.

 

 

 아니,

두 사람에게서 어떤 종류의 절실함도 느낄 수가 없다.

 

왜냐면 연기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의 조화이다.

주지훈의 액션에 대응하는 채경역 배우의 리액션이 심히

부족한 관계로,

그들은 이제 또래 배우로서 더이상 호흡이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신군이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며

자신의 얼음 연못을 깨고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들려줄 때,

 

그 소리를 듣는 채경의 표정을 보라!

 

이건 당췌

어른과 애가 마주 서 있는 것 같다.

 

아니 더 심하게 말하면,

나 어떻게 해?

나 이 장면을 어떻게 해야 해?

나 도저히 못하겠어..

이런 난감한 표정으로 막대기처럼 서서

절절매고 있는 게 너무나 눈에 보인다.

 

표정도 대사도 영 장면에 걸맞지 않다.

 

여전히 혀짧은 소리를 해대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듬대는

유치원생과,

어엿한 성인 남자가

마주 서서 사랑과 인생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출발점은 같았지만,

횟수가 거듭되면서

 

주지훈 혼자 안들호로 가버린 것이다.

 

그가 떠난 안들호에는

신인급 배우들이 없다.

 

혜정전이나, 황제 정도가 이제 그의 상대역이다.

 

혜정전이나 황제와 명선당을 두고

겨루던 그의 연기를 보라.

 

혜정전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짓던 표정을 보라.

그 살벌하고 거만한 눈빛과,

서늘할 정도의 미소를 보라.

 

방송에서 너무나 의연하고 바위처럼 움직임이 없는

황태자 신군을 연기하는 주지훈을 보라.

 

그리고

이어지는 동궁전에서,

단 둘이 마주서야 하는 장면을 보라.

 

그 장면은 완성도가 심히 부족하다.

 

채경 캐릭터의 말도 안되는 대사들도 문제지만

그런 진지하고 무거운 연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여배우의 문제가 제일 크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궁에서

점점 더 존재가 무거워지는 신군은

혼자 앞서 나가기 시작하며

출발 선상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또래 배우들을 돌아보다가 지쳐서

혼자 안들호로 가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어디선가 채경이역의 배우가 그런 말을 하는 걸 읽기도 했다.

 

즉 뒤로 가면서

자기가 주지훈의 연기를 받쳐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는 말이다.

 

그러고보면,

혼자 훌쩍 커버려서 이만큼 벌어진 간극을

따라잡지 못한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후의 궁은 그렇듯

홀로 안들호로 떠나버린 주지훈이

이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의 갈등을 위해 지나치게 억지스런 역할을 모조리

짊어져야했던 여배우는

가뜩이나 힘이 딸리는 게 역력한데다가

그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무리까지 감당해야했으니

오죽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