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21부- 신군의 얼음연못
연못이 아무리 얼어 있어도
그 안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얼음 왕자, 신군의 연못도 그랬다.
이를 악물고, 냉정을 잃지 않으며
감정은 최대한 절제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그 얼음 아래에서 맑은 물이 연연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이 마침내 얼음을 깨고
신군의 볼 위를 흐른다.
그의 얼음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텁지 않았나보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그 얼음을 깨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왜 그랬을까?
신군 역시 잘 모를 것이다.
왜 자신이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채경이가 쫓기듯 정체모를 불안에 시달려왔듯이,
신군도 그랬다.
신군 말대로
아무도 신군은 안중에도 없다.
그도 인간이고,
그에게도 감정이 있고,
그도 19세의 어린 청춘이고,
그도 상처받을 수 있고,
그도 뭔가를 느끼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알려고 들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채경이마저 그랬다.
그는 그저 상징적인 물체같다.
궁궐 안.
저 깊숙한 곳에
있는지 없는지 차츰 잊혀져간,
작은 연못,
일년 열두달 햇빛이 들지 않아
어느해 겨울,혹독한 추위에 얼어붙은 이후로
다시 녹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연못처럼..
신군을 살아 있는 생명체요, 남자요,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저 순간의 신군의 얼음을 깨고 흘러나오는 눈물도
너무나 고독하다.
그 눈물의 의미를 누가 알까?
앞에 서서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어쩌다보니 그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이젠 그녀가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게 되버린 마음을
무심하게 밟아버린 채경이가 알까?
얼음을 잠시 녹인 건 그러한 아픔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아들로 취급해주지 않은 부모처럼,
아내조차 그렇게 이신이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것!
그러니 다시 얼어붙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그 얼음은 두께가 조금 두터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신군이 그 얼음 연못을 지키고
행여 빛이 연못까지 닿을까봐 지키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한번 얼음을 비집고 나와 세상을 본
맑은 물은 이제 그만 화사한 빛을 받으며
끝없이 노래하고 싶을 것이다.
비록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일지라도..